[르포] 소년원 출원 앞두고 제주 한바퀴…"함께 가는 법 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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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6 09:05

법무부, 올레길 하이킹 프로그램…한국판 '쇠이유'
교사·사회 멘토와 함께 4박5일간 234㎞ 완주 일정

(서울=뉴스1) 이유지 기자 =

2018년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소년원학교 올레길 자전거 하이킹 프로그램에 참여한 고봉중·고등학교(서울소년원) 학생 및 교사·멘토들. (법무부 제공). © News1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멀리갈 수 있다.'

사춘기 시절 친구의 죽음을 희화화 한 후배에게 폭행·공갈을 하고 불법적인 일에 연루되는 등 비행에 빠져 소년원에 입원하게 된 전모군(17)의 좌우명이다.

고봉중·고등학교(서울소년원) 제주 올레길 자전거 하이킹 3일차인 25일. 1년 만에 사회에 나와 바깥 바람을 쐤다는 전군은 "과거를 돌아보게 됐고 이번 기회로 좌우명이 바뀌었다"고 감회를 드러냈다.

2018년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소년원학교 올레길 자전거 하이킹 프로그램에 참여한 고봉중·고등학교(서울소년원) 학생 및 교사·멘토들. (법무부 제공). © News1

◇비바람 뚫고 제주도 한바퀴…규칙·성취 배우는 234㎞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국장 강호성)은 지난 23일부터 27일까지 4박5일간 서울소년원 남학생 10명과 교감 격인 교무과장을 포함해 교사·자원봉사자 등 총 28명이 참여하는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체험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13년부터 삼성에스원(대표이사 육현표)의 후원으로 시작된 심신수련 성장캠프로, 서울소년원 대상으로는 매년 제주 외에도 동해안·낙동강 코스 등을 일주했다. 직원들과도 멘토·멘티를 연계해 팀빌딩 등 교감 프로그램을 실시해왔다.

오는 30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는 강호성 범죄예방정책국장이 참여하는 가운데,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안양소년원)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제주 올레길 2차 하이킹도 진행할 계획이다.

이같은 체험활동 프로그램 참여자는 교정성적이 양호하고 보호관찰소로의 임시퇴원 기간이 임박한 학생들 중 신청을 받아 보호자의 허락을 거친 후 선정된다. 이번 서울소년원의 경우 10호 처분(24개월 이내)을 받은 학생 9명과 9호 처분(6개월 이내)을 받은 학생 1명이 선정됐다.

25일 오전 고봉중·고등학교(서울소년원) 올레길 자전거 하이킹 참가 학생 및 교사·멘토 등이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 2018.4.25/뉴스1 © News1 이유지 기자

올해는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등이 참여해 제주도 올레길과 환상 자전거 도로 234㎞를 달리는 하이킹 코스로 구성됐다. 2일차까지 비가 내리고 맞바람이 부는 등 자전거를 타기에는 녹록지 않은 날씨였지만 소년들을 이기진 못 했다.

25일 오전 8시30분. 가이드의 지도 아래 교사·멘토와 함께 20분간 준비운동을 마친 학생들은 제각각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완주하자''고생 끝에 낙이 온다''포기를 한다면 성공의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최선을 다하자' 등의 각오를 새긴 자전거와 함께 제주의 자연 속으로 뛰어들었다.

힘들다고 투덜대다가도 교사·멘토의 관심과 격려에 툭툭 털어 일어나고, 쉬는 시간엔 동기들에게 장난을 치며 서로 간식을 건네기도 하는 소년원 학생들은 격한 사춘기를 겪었다는 것 빼고는 여느 또래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하이킹 초반에는 대열이 맞지 않거나 뒤처지는 학생이 생겨 일정이 지연되기도 했지만, 규칙을 익혀 수신호를 주고 받으며 서로를 살피고 일렬로 페달을 밟는 과정에서 점차 안정감이 생겼다. 누군가 잠시 뒤처질지라도 서로 다독이며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지나가던 도민들은 학생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25일 오전 고봉중·고등학교(서울소년원) 올레길 자전거 하이킹 참가 학생들이 작성한 각오 문구. 2018.4.25/뉴스1 © News1 이유지 기자

◇소년원 학교 학생들 "끈기 생긴 것 같아…혼자였으면 못 갔을 것"

제주도를 반바퀴 돌았을 무렵, 소년원 학교에서 검정고시를 마치고 오는 30일 출원을 앞둔 김모군(16)은 이번 프로그램에 대해 "사회에 나가 적응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며 "평소 못해본 경험인데 끈기도 생긴 것 같다"고 중간평가를 했다.

같은 날 출원 예정인 최모군(17) 또한 "혼자였으면 절대 여기까지 못 왔을 것"이라며 "앞사람도 가는 모습을 보고 내가 포기하면 뒷사람에게 피해가 간다 생각했다"고 느낀점을 밝혔다.

학생들은 "스스로의 한계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오르막길을 다 오른 후 내려갈 때 뿌듯하고 성취감이 있었다", "나가서 부모님께 바뀐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임시퇴원을 짧게는 5일, 길게는 4달여 남긴 학생들은 소년원에서의 생활을 되새기고 스스로 각오를 다지며 사회에 나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홍모군(16)은 "밖에서부터 들어와서까지 사고를 많이 쳤는데 어느 순간 깨달아서 많이 차분해지고 생각도 큰 것 같다"며 "사회에 나가서도 이 마음 변치 않고 잘 살고 싶다"고 말했다.

최군은 "여기와서 부모님의 사랑을 가장 크게 느꼈다. 예전엔 아버지 말씀을 하나도 안듣고 하고 싶은대로 다 했는데 너무 죄송스럽다"며 "나가면 아버지 한번 안아드리고 돈도 벌어서 용돈도 챙겨드리려 한다"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25일 오전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의 강연을 듣는 고봉중·고등학교(서울소년원) 학생 및 교사·멘토들. (법무부 제공). © News1

◇소년원학교 올레길 하이킹…한국에도 '쇠이유' 바람부나

"여러분은 긴 인생 중 초반에 있다는 걸 기억하세요."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서 이사장이 '치유와 행복의 길을 상상하다'를 주제로 직접 강연에 나서기도 했다. 서 이사장은 소년원 학교 학생들이 올레길을 방문할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적극 교육 일정을 수락했다.

그는 자신의 동생이 한때 서귀포 일대에서 조직폭력배 두목으로 활동하다 실형을 살았지만, 이후 은퇴해 올레길 조성을 돕고 현재는 예술적 감수성을 발휘해 사진을 다루고 있다고 밝혔다.

서 이사장은 강연 후 기자와 만나 "처음 올레길을 낼 때 직장인이나 젊은 사람들의 힐링도 바랐지만 이른바 비행청소년, 한때 길을 잘못든 친구들이 자연 속에서 순화하고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길 바랐다"고 동기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프랑스에는 '쇠이유(Seuil)' 프로그램이 있는데, 자연에 노출되는 것만큼 사람을 정화하고 치유하는 게 없다"며 "아이들을 가둬놓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쇠이유는 '경계, 문턱'이란 뜻의 프랑스어로,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지난 2002년 만든 청소년 교정단체다. 비행청소년들을 말이 통하지 않는 다른 국적의 성인 멘토와 함께 3개월 동안 1800㎞를 걷게 한 뒤, 완주할 경우 귀가 및 형량 조정 등의 조치를 해주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프랑스 청소년 재범률이 85%에 달하는 반면, 쇠이유를 완주한 청소년의 재범률은 15%로 알려졌다.

이른바 '호통 판사'로 불리는 소년범죄 전문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53·사법연수원 26기) 또한 지난 2015년 쇠이유 프로그램의 취지를 이어 현직 판사와 비행청소년이 함께 걷는 '2인3각' 여행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날 멘토로 프로그램에 참여한 삼성에스원 사회봉사단의 김명수 과장은 "2013년부터 이 캠프와 함께 해왔는데 회사로 '한번씩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만 이 캠프를 생각하며 참고 있다, 살아가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는 한 여학생의 편지가 오기도 했다"며 "한두명이라도 마음을 열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어른들이 만든 결손가정 또는 작은 잘못에도 몰아붙여 물러설 수 없게 하는 사회환경이 선한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경우가 많다"며 "이런 다양한 교정·교화 프로그램이 많이 제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앞으로도 소년원 학생들의 사회적응력과 자아존중감을 높이기 위해 각 권역별로 특색있는 체험활동 프로그램을 발굴해 운영할 예정"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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