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강압의혹 화성8차사건' 경찰 관련 기록 검찰에 제출 안해…경찰 "내사 중"

이정현 기자
2019.11.30 06:00

[the L]재심 관련 서류, 경찰 '미적미적'에

11월13일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20년간 옥살이를 했던 윤모씨가 이주희 변호사, 박준영 변호사, 김칠준 변호사와 함께 재심청구서를 제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사진=뉴스1

검찰이 일명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을 위해 관련 기록을 검토에 나선 가운데 경찰이 당시 담당 경찰관들의 강압수사 의혹 관련 기록은 검찰에 넘기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정당국에 따르면 수원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전준철)는 재심 개시 여부 의견서 작성을 위해 경찰로부터 사건 관련 기록을 넘겨받아 검토 중이다. 경찰은 검찰의 기록제출 요청에 따라 과거 검찰 송치기록 및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 등을 검찰에 제출했다. 하지만 당시 담당 경찰관의 강압수사 의혹에 대한 수사기록은 제출하지 않았다.

앞서 이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윤모씨는 진범이 밝혀졌고 새로운 진술이 나왔으니 다시 사건을 심사해 달라며 수원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윤씨는 과거 경찰 수사에서 허위진술과 자백을 강요받는 등 강압 수사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윤씨는 형사소송법이 규정하는 재심사유 중 △새로운 명백한 증거가 발견된 경우 △수사기관의 직무상 범죄가 드러난 경우 두 가지 사유로 재심을 청구했다.

윤씨의 재심 청구를 접수한 수원지법은 수원지검에 의견을 요청했다. 현행 형소법은 재심 청구에 대해 상대방의 의견을 듣도록 규정하고 있다.

검찰은 법원이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의견서를 제출하기 위해 경찰로부터 관련 기록을 넘겨받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당시 담당 경찰관의 허위자백 강요 및 허위진술 요구 등 부당수사 의혹과 관련된 수사기록은 넘겨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당시 수사 담당자들의 강압수사 의혹 등에 대해 아직 내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해당 부분 기록은 제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경찰이 내사 중인 사안에 대해선 검찰 요청에 따라 기록을 제출할 의무는 없다.

경기남부청 관계자는 "8차 사건 관련해서 내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과거 검찰에 송치했던 기록이라던지 이번에 새롭게 확보한 진술 등은 검찰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8차 사건의 진범을 이춘재씨로 잠정 결론 내렸지만 강압수사 등 당시 수사상황에 대한 내사가 아직 진행 중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검찰은 조금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수원지검 관계자는 "의견서를 작성하기 위해선 재심 청구 사유를 검토하고 그에 맞게 관련 기록을 검토해야 한다"면서 "재심 청구 사유에 당시 수사기관의 직무상 범죄 부분이 있는데 이에 대한 관련기록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은 의견서 작성에 해당 기록이 꼭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면 경찰과 최대한 협조해 검토를 해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경찰이 자신들의 수사가 끝나기 전에 비위의혹이 퍼져나가는 것을 막으려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경찰이 내사 중인 사건이라 하더라도 검찰에 임의제출 형식으로 관련 기록을 제출해 협조할 수는 있다"면서 "이번 사건은 아무래도 경찰이 조직 내부 비위를 수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결과를 발표하기 전 검찰에서 의견서를 작성하며 비위 부분을 확정적으로 명시할까 경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은 지난 1988년 9월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이다. 당시 13살 박모양이 자신의 집에서 성폭행을 당한 뒤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인근에 살던 농기계수리공 윤모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윤씨로부터 자백과 진술서를 받은 경찰은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고 윤씨는 재판에 넘겨졌다. 윤씨는 1심에서 범행을 인정했지만, 2·3심을 거치면서 고문을 당해 허위자백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후 20년간 복역한 윤씨는 지난 2009년 가석방돼 충북 청주시에 거주해 왔다.

윤씨의 이같은 사연은 최근 부산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이춘재씨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되면서 8차 사건 또한 자신의 소행이라고 자백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씨는 화성에서 일어난 총 10건의 연쇄살인 중 5건에서 DNA가 발견되며 진범으로 지목됐다. 이씨는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는 태도를 보이다가 결국 나머지 사건들도 자신의 소행이라고 자백했다. 이후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8차 사건 등에 대한 재수사를 진행했고 이씨의 진술이 윤씨의 진술보다 신빙성이 높다며 이씨를 진범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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