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옷 주워입고 청소, 쓰레기장서 쉬어도…"안 불편해"

정경훈 기자, 이해진 기자, 이동우 기자
2020.01.10 06:00

[분리수거된 노동자]②경찰서 청소노동자, 고령에 비정규직…'권리 주장' 꿈도 못 꾸는 현실

[편집자주] 어느 기관이나 회사가 겉보기에 '멀쩡'히 운영되는 과정에는 안 보이는 곳에서 궂은 일을 맡은 분들의 꾸준한 노동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같은 '숨은 노동'을 제공하는 분들일수록 처우역시 가려지는 일이 허다한데요. 머니투데이 사건팀은 가까운 곳부터 '숨은 노동자'의 공간을 점검해보려 합니다.

"큰 불편은 없대도";

지난해 말 서울 한 경찰서에서 만난 분리수거 노동자는 "쉴 곳은 여기뿐"이라며 분리수거장을 가리켰다. 경찰이 버린 바지를 주워다 작업복으로 입었다는 그는 퀴퀴한 쓰레기장 한켠에서 숨을 돌렸다. 컨테이너 벽으로 한기가 돌았다. "제대로 된 휴게실이 아닌 것 같다"고 하자 "불편함은 없다"며 연신 장갑 낀 손을 내저었다.

현장에서 머니투데이와 만난 분리수거 노동자 대부분은 휴게실 상황에 대해 말을 아꼈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적절한 환경도 그대로 설명하는 것을 꺼렸다.

고령에 비정규직으로 고용불안을 겪고 있는 이들이 노동환경에서 스스로 제 목소리를 내는 일은 쉽지 않다.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고령 노동자는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해본 경험이 부족하다"며 "국가기관이자 수사기관인 경찰 권위를 현 세대보다 크게 인식해 개선 요구를 잘 못 해왔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평균 나이 70살 기간제 근로자, 세전 연봉 2267만원

9일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 시내 31개 경찰서에 근무 중인 분리수거노동자 33명의 평균 나이는 69.24세로 평균 급여는 연간 2267만원이다. 여기서 4대보험 명목으로 나가는 세금을 떼면 실수령액은 약 2153만원으로 내려간다. 고용 형태별로는 1년 단위로 근로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기간제근로자가 26명, 무기계약직이 7명이다.

용역업체 소속이었던 이들 경찰서 청소노동자는 2018년 7월부터 하나둘씩 경찰에 직접 고용됐다.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라 정년이 지난 이들은 기간제근로자로, 정년이 남은 이들은 무기계약직으로 채용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은 60세 이상 고령자는 기관 판단에 따라 전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즉 평균나이 70세인 이들 분리수거 노동자들은 기관 임의대로 고용이 가능하다.

경찰관계자는 "청소노동자가 고령이고 직무 특성상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직종이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1년 단위 기간제 근로자에 대해서도 계약을 연장할 방침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계약 갱신 여부가 고용주에 달려 있는 이들이 처우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노동계의 지적이다.

"불편한 것 없어" 자리 피하는 노동자들…노조에도 못 알려
서울 성동경찰서 분리수거장 폐기물 보관함으로 쓰이는 컨테이너. 컨테이너 내부에 벽을 치고 만든 공간이 노동자의 유일한 휴게실이다. /사진=정경훈 기자

실제 현장에서 만난 노동자 대부분은 전문가들의 분석처럼 불합리한 대우에도 "불편한 것이 없다"며 자리를 피하기 일쑤였다. 일부 노동자들만 취재진이 지속적인 요청에 처우에 대한 불편을 호소했다.

서울의 한 경찰서 분리수거 노동자는 지난해 12월 기자와의 세 번째 만남에서 "경찰들은 여기 관심 없다"고 말했다. 야외에 휴게실이 마련된 다른 노동자도 "아무래도 휴게실이 건물 안에 있으면 좋다"면서도 경찰에 이런 요구를 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경찰 청소노동자들이 가입한 경찰청주무관노동조합에도 이 같은 민원은 접수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청 주무관노조는 2011년 2월 주무관에 대한 일방적 해고에 맞서 설립됐다. 현재 조합원은 2000여명이다.

경찰청주무관노조 관계자는 "한 지방 경찰서 청소 노동자는 화장실 변기 한 칸을 휴게실로 사용하고 있다"며 "청소노동자들이 권리 주장에 익숙하지 않아서 노조가 나서려 한다"고 말했다.

노조 관계자는 "경찰조직의 90%가 경찰이고 청소주무관은 규모가 적은 것도 관심을 못 받는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며 "같은 노동자인데 유령인지 공노비인지 헷갈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전문가들은 고용노동부 가이드라인처럼 사업주인 경찰이 노동자 의견 청취를 적극 파악해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앞서 청소노동자 휴게실이 문제가 된 서울시는 2014년부터 예산을 투입해 자치구 산하 59개 기관 350개 휴게실을 고치기 시작했다. 지난해 1평 남짓 휴게실에서 노동자가 휴식하다 사망한 서울대도 뒤늦게 환경 개선에 나섰다.

정혜선 가톨릭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분리수거 노동자를 동등한 사람으로 봤다면 있을 수 없는 휴게실 상태"라며 "경찰의 관심이 열악한 처우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 지적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도 "경찰이 직접 고용한 청소 노동자들의 쉴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것은 사용자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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