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제 없는 재택치료의 역설, 비대면 진료 도입 촉매될까

이창섭 기자
2021.12.23 15:25

[MT리포트]④치료 공백 두 달, 시험대 선 K-의료

[편집자주] 무책임하게 시작된 일상회복으로 초유의 '치료공백' 위기가 빚어졌다. 당국의 예상을 벗어난 확진자와 중환자 급증에 이미 병상은 포화상태지만 내년 1월 중순에야 6944병상이 추가된다. 이 같은 병상 부족에 전체 확진자의 60% 이상이 재택치료중이지만 집에서 바이러스를 치료할 경구용 치료제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 연내 도입되더라도 물량이 대량으로 풀려 방역 효과를 기대할 만한 시점은 내년 2월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앞으로 한두달은 방역의 3대 축인 조사·진단·치료 중 치료의 공백을 피하기 어려운 셈이다. 다만, 이 같은 공백기에 의료기관에서 정맥 주사방식으로 처방되는 국산 항체 치료제가 경구용 치료제의 빈 자리를 채울 가능성도 있다. 공백기를 잘 넘기면 의료체계 개선의 뜨거운 감자인 원격의료 논의에 물꼬가 트일 수도 있다. 보건의료 전반이 중요한 변곡점에 선 셈이다.
(고양=뉴스1) 조태형 기자 =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으로 4,000명대를 넘어선 24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명지병원 재택치료지원센터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환자를 대상 원격 치료 상담을 하고 있다. 이날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서 김부겸 국무총리는

"코로나19 때문에 아이 데리고 병원가기 걱정이었는데 비대면으로 편하게 했어요."

"사후피임약, 부작용 등 친절하게 설명해주셨어요."

원격 의료(비대면 진료) 애플리케이션 '닥터나우' 사용자가 남긴 이용 후기다. 닥터나우는 지난달 누적 이용자 수 50만명을 돌파했다. 다운로드 횟수는 35만회를 넘겼다. 서비스를 시작한 지 10개월 만에 이룬 성과다.

코로나19(COVID-19) 사태로 한시적 비대면 진료가 가능해지면서 관련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다. 이제는 코로나19 환자 열명 중 여섯 이상이 집에서 치료와 관리를 받는다. 전염병 사태가 의료계의 해묵은 논쟁인 '비대면 진료' 논의를 진전시킬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비대면 진료 수요가 커지는 상황에서 더는 도입을 미룰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료계는 코로나19 재택치료 문제점을 지적하며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누적 비대면 진료 청구 328만건… "비대면 진료 잠재력 무궁무진"

22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2월24일부터 이번 달 5일까지 누적된 비대면 진료 청구 건수는 328만3790건이다. 청구된 진료 비용은 약 511억원이다. 지금까지 1만2851개의 의료기관이 참여했다.

정부는 지난해 2월24일부터 전화로 비대면 진료를 받는 걸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그해 12월에는 '심각 단계 이상의 감염병 위기 경보가 발령됐을 때 비대면 진단, 상담, 처방할 수 있다'는 내용의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만들어져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임경호 닥터나우 부대표는 "코로나19 이후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비대면으로도 이룰 수 있는 분야와 산업을 고찰하고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대한민국 비대면 의료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국민 인식도 나쁘지 않다. 서울대학교병원 공공보건의료진흥원이 지난 2월 발표한 '의료서비스 이용 및 태도와 주요 의료 정책에 대한 대국민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 도입 찬성률은 57.1%였다. 비대면 진료 이용 의향은 70.3%로 나타났다.

의료계 "코로나19 재택치료도 잘 안 되는데…"

의료 전문가는 비대면 진료의 본격적인 도입과 확산이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특히 코로나19 환자의 재택치료가 현재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경구용 치료제 공백은 재택치료를 사실상 재택'관리'로 만들었다. 의사가 원격으로 할 수 있는 건 코로나19 환자 상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것뿐이다. 의료계는 확진자 재택관리조차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비대면 진료를 확대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최재욱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과 교수는 "현장에서 코로나19 재택치료가 잘 안되고 있다"며 "원격으로는 환자를 제대로 모니터링을 못 한다. 파악이 안 돼 환자가 금방 중증으로 빠진다"고 지적했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재택치료를 하려면 검사할 수 있는 부가적인 장치들이 갖춰져야 한다. 화면만 보고 대응하는 건 사람 관상만 보는 것과 똑같다"며 "정부가 재택치료 준비를 하나도 안 하고 시작했다. 이것으로 비대면 진료 기초를 삼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대통령 후보 공약으로 언급… 정부도 "제도화 방안 마련한다"
(서울=뉴스1) 국회사진취재단 =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일 서울 중구 시그니처타워에서 열린 스타트업 정책토크에서 참석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1.12.2/뉴스1

현재 비대면 진료는 일시적으로 허용된 상태다. 감염병 위기 경보가 해제되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한시적 허용 이전까지 국내에서는 격·오지나 군부대, 원양 선박 등 극히 제한적인 곳에서만 비대면 진료가 가능했었다.

박수현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지금은 재난 시기이기 때문에 의료 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서라도 비대면 진료가 필요하다"면서도 "예외적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지 환자에게 비대면 진료가 최선이라든가, 앞으로 우리가 가야할 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임경호 닥터나우 부대표는 "비대면 진료가 전면 철회되면 대한민국에는 앞으로 비대면 진료란 없을 것"이라며 "글로벌에 비해 의료 산업적으로 매우 퇴보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임 대표는 "코로나19 이후에도 치명률과 전염성이 높은 질병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며 "전염병 사태의 한시적인 수단뿐만 아니라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차원에서도 비대면 진료는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논의 시동이 켜졌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는 2일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원격·비대면 진료는 피할 수 없는,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라며 차기 정부 집권 시 비대면 진료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의료계도 논의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 최 교수는 "제도적으로 보완하거나 검토할 부분이 있다. 정부와 의료계에서 협의가 덜 된 부분이 있다"며 "정부, 의료계와 산업계 논의가 잘 진행이 안 돼 혼란이 야기되면 안 된다. 정부가 리더십을 잘 발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향후 비대면 의료 정착에 "보건 의료 정책적 관점에서 국민 건강증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의료계와 충분한 논의를 거쳐 제도화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