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로 3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법률 전문가들은 유가족이나 피해자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안전 대책 마련을 부실하게 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참사가 일어난 장소 등을 고려했을 때 중대재해처벌법상 중대시민재해로 구분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라 국민의 생명·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관리체제를 확립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국가와 지자체가 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결론날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본다.
오시영 숭실대학교 법학과 교수(민법)는 "다중의 인파가 모일 것을 예상할 수 있었던 경우여서 대책을 수립하지 않은 것에 대해 공무원들의 책임이 있다"며 "공무원이 안전조치를 취해야 하는 법적 의무가 있음에도 계획을 세우지 않고 경찰력을 배치하지 않은 사고에 의한 책임을 져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도 "지자체나 경찰이 사전에 안전관리 대책을 세우고 관리를 했으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면, 이를 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과실이라고 보고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안전 관리 체제를 확립할 책임이 있는 국가(대한민국), 서울시, 용산구가 모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오 교수는 "대응을 미흡하게 했다며 경찰을 대상으로 소송을 걸 수도 있는데 이 경우에도 국가경찰을 관할하는 국가가 소송 상대방이 된다"고 말했다.
압사 사고 희생자 유족에게 지자체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해외사례도 있다. 2001년 일본 효고현 아카시시에서 열린 불꽃축제에서는 수천명이 100m 길이의 인도교에 몰리며 11명이 숨지고 183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효고현 경찰은 폭주족 대응 요원을 292명 배치했으나 혼잡 경비대책에는 36명만 투입했다. 유족들은 아카시시와 효고현 경찰 등을 사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승소해 2005년 6월 5억6800만엔의 배상을 받았다.
오 교수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서는 국가·서울시·용산구가 '부진정연대채무'를 질 수 있다"며 "여러 인원이 공모를 하지 않았으나 각자 주의 의무를 게을리한 책임으로 손해배상을 해야 할 때 책임자들이 함께 급부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는 중대재해처벌법상 중대시민재해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중대시민재해의 경우 공중이용시설 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어 최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상의 벌금형을 내릴 수 있지만 법 적용이 힘들다는 것이다.
이 같은 손배 책임과 별개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은 쉽지 않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중대시민재해로 인정되려면 사고가 발생한 장소가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이어야 한다. 또 시설 등의 설계·제조·설치·관리상 결함이 사고 원인이어야 한다.
이 가운데 1명 이상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결과를 불러와야 중대시민재해가 될 수 있다. 공중이용시설에 속하는 교통로의 종류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서 정하는데 준공 10년이 지난 도로교량(연장 20m 이상)·철도교량·도로터널 등이다.
압사가 발생한 해밀턴호텔 옆 골목은 이 법이 정한 공중이용시설에 들지 않는다. 권영국 변호사(중대재해전문가 네트워크 대표)는 "공중이용시설·공중교통수단 등에서 발생해야 한다"며 "이번 사고는 국어사전적 의미로는 시민재해가 맞지만 법률상의 중대시민재해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책임자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이태원 핼러윈 축제의 주최가 불분명해 골목 안전 관리 책임을 누가 지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공안 수사 경력이 있는 검찰 간부는 "중대시민재해는 관리상의 결함이 있어야 하는데 이 부분에 해당할 만한 요소가 없어 보인다'며 "구조물 관리 부실로 인한 파손, 도로 꺼짐 등 때문에 일어난 사고도 아니어서 법 적용이 힘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