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17일 저녁 6시40분쯤.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의 대형재수학원 앞에 '수험서 산'이 만들어졌다. 이번 수능 시험을 치른 학생들이 주차장에 다시 볼 일 없는 책과 공책들을 쌓은 것이다. 주차 자리 세 칸을 차지한 책 무덤은 사람 키의 절반 높이까지 쌓였다.
이날 수능 시험이 끝나고 찾은 노량진 학원가는 수험생들이 빠져나가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쌀쌀한 날씨에 옷깃을 여미는 학생들이 간간이 보였지만 재수종합학원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학원가 한편에 일렬로 늘어선 포장마차도 평소보다 이른 시간인 저녁 8시쯤 문을 닫았다.
수능을 마치고 학원을 찾는 수험생들이 거의 없었던 탓이다. 노량진의 대형학원 관계자는 "내일부터 논술특강이 열려서 수능 직후 최저기준을 맞췄다며 논술 등록하러 온 학생이 한 명 있었다"며 "반대로 기준을 못 맞췄다며 환불받으러 온 학생도 몇 있었다"고 했다.
노량진의 또다른 대형학원 관계자는 "오늘 3명 정도 재수반에 등록하러 왔다"며 "다들 오늘 수능을 치르지 않고 내년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이었다. 고3 현역은 한 명도 없었고 검정고시 출신이거나 군대에 다녀와서 시험을 다시 보려는 늦깎이 수험생들"이라고 밝혔다.
간혹 수능을 마치고 짐을 정리하러 온 학생들이 조용히 학원을 드나들었다. 이날 재수학원을 찾은 수험생 A씨는 "대학에 다니다가 전공을 바꾸고 싶어 반수했다"며 "오늘 수능을 쳤는데 이제는 학원에 올 일이 없을 거 같아 짐을 챙기러 왔다. 후련하다기보다는 덤덤하다"고 말했다.
서울의 대표적인 학원가인 서울 강남구 대치동도 분위기가 비슷했다. 이날 대치동에 위치한 학원의 자습실은 공부하는 학생이 한 명도 없어 텅 빈 모습이었다. 책상 위에 책이나 필기구도 놓여있지 않았다. 대치동의 학원 관계자는 "오늘 상담하러 온 학생이나 학부모가 한 명도 없었다"고 했다.
수능 시험을 치르고 인사차 학원을 찾은 학생들이 드문드문 거리를 오갔다. 이날 수능 시험을 쳤다는 재수생 B씨(19)는 입시학원을 찾아 "원하는 만큼 점수가 나오지 않았다"며 선생님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에 선생님은 B씨를 달래주며 "집에 들어가서 푹 쉬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번 주말부터 시작되는 수시 전형 준비를 위해 학원을 찾는 학생들도 있다는 설명이다. 서울 송파구에서 입시컨설턴트로 일하는 이모씨는 "오늘 오후에도 수능을 망쳤다며 수시 면접을 대비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며 "당장 이번 주말부터 서울 주요 대학들의 면접시험이 예정돼 있어 지금부터가 또다른 시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