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뜰까 불안의 '새로고침'"…韓서 전쟁 치르는 우크라인 '눈물'

정세진 기자, 최지은 기자
2023.02.19 18:00

[MT리포트]우크라 전쟁 1년이 남긴 것

[편집자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곧 1년이다. 믿기 어려운 침략 전쟁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타격을 입은 세계 경제를 최악의 인플레이션으로 몰아넣었고, 서방국과 중국·러시아의 대립 등 신냉전 체제의 가속을 불렀다. 언제 또 전쟁이 발발할지 모른다는 공포는 전 세계 군비 경쟁에 불을 붙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바꿔 놓은 국제정세와 전망, 기업들과 한국이 직면한 과제를 짚어본다.
재한 우크라이나인 로만 야마노프씨(35·왼쪽 가운데)와 콘스탄틴씨(52·오른쪽 아래 남성)가 지난 16일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머니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정세진 기자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주 전에 한국에 온 할리나씨(26)에게는 전쟁 발발 이후 틈만 나면 인터넷 뉴스를 '새로고침'하는 습관이 생겼다. 우크라이나 현지에 있는 어머니와 친구들에게 매일 전화해 "괜찮냐"고 물어보는 것도 일상이 됐다. 할리나씨의 어머니는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 중남부에서 군인들을 돕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친구들 중에선 입대해 전장에 나간 이들도 있다. 할리나씨는 "할 수 있는 게 이런 일이라 하고 있지만 솔직히 지친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오는 24일이면 꼭 1년. 한국에 사는 우크라이나인들은 '전쟁 번아웃(신체적·정신적 탈진)'을 호소한다. 이들은 매일 아침 텔레그램과 페이스북, 외신을 확인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우크라이나에 있는 가족과 지인들이 지난밤을 안전하게 보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경기 화성에 정착한 지 15년째인 크리스티나 마이단츠크씨(36)의 지난 1년 일상도 그렇다. 마이단츠크씨는 지난 16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매일 아침 출근하기 전에 국제뉴스를 살피고 친구들에게 텔레그램으로 '괜찮냐'고 연락한다"고 말했다. 페이스북과 뉴스를 체크하고 지인들이 안전한 장소에 있는지 확인해야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고 한다.

1년을 반복한 일상이지만 이런 생활이 익숙해질 리는 없다. 인터넷으로 시시각각 전해지는 전황을 확인하느라 일상에 집중하기도 어렵다. 이들에겐 앞으로 얼마나 더 지인의 부고를 접할까 두려워하며 아침을 맞아야 할지 알 수 없다는 점이 더 무섭다.

서울 강서구에서 무역회사에 다니는 로만 야마노프씨(35)는 "어느 날엔가 페이스북을 확인하는데 우크라이나 외국어대 시절 가입한 페이스북 페이지에 한 친구의 사진이 너무 많이 올라와서 봤더니 입대 후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었다"며 "아주 가까운 친구는 아니었지만 한동안 고통스러울 정도로 슬펐다"고 말했다. 야마노프씨는 "아파트가 폭격당해 민간인이 사망하고 사람들이 집을 잃었다는 뉴스를 1년 동안 매일 보면 번아웃이 온다"고 밝혔다.

서울팝스오케스트라에서 트럼펫 연주자로 활동하는 콘스탄틴씨(52)도 "핸드폰을 확인하는 게 가장 힘들다"며 "일에 집중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고국에선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데 혼자 행복해도 되나 하는 생각도 끊임없이 이들을 괴롭힌다. 연세대 생명공학과에 재학 중인 흘립씨(21)는 "늘 불안하고 우울하다"며 "좋은 일이 있어도 마냥 기뻐할 수 없어 괴롭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23일 서울 중구 러시아대사관 인근에서 반전집회를 열고 있는 재한 우크라이나인들. /사진=페이스북 그룹 '한국의 우크라이나인들'(Ukrainians in Korea)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 아파트.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음. /사진=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공식 텔레그램 채널

이들이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것은 동포들 덕이다. 지난해 2월24일 전쟁 발발 이후 나흘만에 서울 중구 주한 러시아대사관 근처에서 시작된 반전집회가 이들과 세상을 잇는 연결고리다. 콘스탄틴씨는 "20년 넘게 한국에 살고 있지만 전쟁 전에는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다"며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람들이 모였다"고 말했다.

야마노프씨는 "힘들어도 인내심을 가지고 (반전집회에) 나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집회에 나와 울기도 하면서 공감하면 버틸 수 있는 힘이 된다"고 말했다.

전쟁 발발 1년이 다 돼가면서 반전집회에 대한 관심이 조금 뜸해진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첫 반전집회 당시엔 참가자가 300명에 달했지만 최근 집회엔 10~15명 정도가 나온다. 매주 열던 집회도 2주에 1번에서 1개월에 1번 정도로 줄었다.

콘스탄틴씨는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며 "적극적인 관심과 응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할리나씨는 "한국과 우크라이나는 거리가 멀지만 어디에 있든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내야 한다"고 밝혔다. 크리스티나씨는 "반전집회는 전쟁에 대한 정보를 알리고 사람들에게 상기시키기 위한 거의 유일한 창구"라고 전했다.

반전집회에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한국인들도 집회에 참여한다. 연세대 국제대학원을 다니는 김현재씨(29)는 "지난 1년간 우크라이나 지원활동에 전념했다"며 "한국전쟁을 겪은 우리의 아픔이 지금 우크라이나가 겪는 아픔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더 많은 한국인이 이해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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