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찌검 쉬쉬, 성과급 차별까지…나서기 싫어도 노조 만들 수밖에

김도엽 기자, 김도균 기자
2023.02.25 05:40

[MT리포트]새로운 바람 MZ노조① "회사 깜깜이 일처리에 노조 만들어, 교섭권 확보가 과제"

[편집자주] MZ세대가 노동운동에도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공정성을 기치로 내건 이들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기성 노조의 행보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지난 21일 오후 3시 서울 용산구 동자동 동자아트홀.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발대식에서 협의회 위원들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사진=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제공

LG전자에 입사한 유준환씨(32)는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던 학생이었다. 학교 다닐 때 학생회 활동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는 "학교든 공동체든 무슨 행동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말했다. 입사를 할 때는 노동조합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몰랐다고 한다.

그런 유씨는 현재 LG전자 직원들로 구성된 '사람중심 노조'를 이끌고 있다.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합한 말) 노조들의 연합체인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이하 협의회)의 의장이기도 하다.

사내의 불합리한 일처리를 보고 노조 설립을 결심했다. 그는 "입사 초기 동기가 상사에게 폭행을 당하고 가해자에 대한 조치가 없는 등 깜깜이 인사에 직원들의 불만이 많았다"고 말했다. 또 "회사가 1조원의 영업이익을 냈는데도 공개된 적 없는 '연초 목표치'보다 낮다는 이유로 TV부서 사무직에 성과급을 안 줘서 직원들의 불만이 폭발한 일도 있었다"고 밝혔다.

사무직 역차별은 '불공정'…MZ노조 설립 배경

MZ세대들이 노조를 만든 데 공통점이 있다. 기존 생산직 중심 노조에서 느낀 불공정함이다. 정치 투쟁 중심의 노동운동 역시 동의할 수 없었다. 이들은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개선해 목소리를 키우는 한편 민주적인 의사결정 방식을 확립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협의회 소속 개별 기업의 사무직 노조는 '공정'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생산직을 중심으로 대변하는 양대노총에서 소외된 사무직의 노동 환경, 연봉, 복지 등을 대변한다는 취지다.

이동훈 새로고침 위원(한국가스공사 더코가스 노조위원장)은 "2019년 주52시간제가 가스공사에 도입되며 교대 근무자(생산직)의 근로시간이 줄어 임금이 줄어야 하는 것을 통상 근무자(사무직)의 임금 인상률을 삭감하면서 메웠다"며 "회사가 민주노총 산하 1노조와 합의한 임금제도로 사무직이 피해를 보는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특히 투명하지 않은 성과급 기준과 임금 개선에 목소리를 내면서 호응을 얻었다. 2021년 상반기 코로나19(COVID-19) 사태에서 기업들이 꾸준한 이익을 냈음에도 노동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대기업 사무직 노조가 하나둘 생겨난 것이다.

유준환 의장은 "사무직 노조 설립 이후 회사가 성과급 기준을 만들어 공개했다"며 "공개된 기준에 따라 2021년과 2022년에 두차례 성과급이 지급되면서 사무직 직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고 말했다.

이 위원도 "사무직 노조 차원에서 바뀐 임금제도에 대해 계속 문제를 제기해서 2022년 보수규정안이 개편되며 사무직과 생산직 사이의 임금 격차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됐다"고 했다.

"정치투쟁은 노조가 할 일 아냐"...일하는 노동자 목소리 대변하겠다

협의회 소속 노조들은 기존 양대노총의 정치투쟁 노선을 비판한다. 정치투쟁이 노동자 권익을 대변하는 노조의 본질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대노총은 정치·노동 환경이 바뀐 상황에서도 정치적 구호와 불법·폭력 시위를 고집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노동과 관련 없는 양대노총의 구호와 반복되는 시위에 반감을 호소하는 노동자들도 나오고 있다.

송시영 협의회 부의장(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조 위원장)은 "정권 하야 운동, 이석기 석방운동, 주한미군 철수, 일본 불매는 노동조합이 할 일이 아니다"며 "일하는 노동자를 지키는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했다. 그는 "집회를 할지라도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시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며 "시대가 바뀐 만큼 다른 방법을 고민 중이다"고 했다.

이들은 기존 양대노총의 정치투쟁뿐만 아니라 노동자에게 특정 정치인 지지나 집회 참여를 강요하는 문화도 없애겠다고 공언했다. 이 위원은 "선거철만 되면 기존 노조로부터 특정 정치인에게 후원금을 낼 것을 강요받았다"며 "사무직 노조가 나서 정치적인 강요를 없애고 다른 회사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노조활동을 외면하는 MZ세대의 인식을 변화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송 부의장은 "노조는 반드시 필요한데 노조에 대한 인식이 안 좋다"며 "노조 인식개선 사업을 통해 더 많은 노조가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만들겠다"고 했다.

/삽화=이지혜 디자인기자
당면과제 '교섭권 확보'…의사 결정은 '민주적으로'

이들에게 당면 과제는 교섭권 확보다. 교섭창구 단일화를 규정한 노조법 때문에 대부분 회사에서는 1노조만이 교섭권을 갖고 있어 협의회 소속 대부분 노조에는 교섭권이 없다. 예외로 교섭권을 추가로 확보할 수는 있지만 기존 노조와는 작업 환경, 근로 형태, 직책 등 요소에서 별도로 교섭을 해야 할 만큼 조건이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기존 생산직 노조의 반발도 걸림돌이다. 전승원 협의회 위원(LG에너지솔루션 연구기술사무직 노조 위원장)은 "민주노총 소속 생산직 노조가 우리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며 "작년에 6가지 요구사항을 보냈는데 받아들여진 것은 노조 사무실과 사내 게시판 사용, 현수막 게시 허용이 전부였다"고 말했다.

생산직 노조가 동의해 교섭권을 추가로 획득하더라도 회사가 반발하는 경우도 있다. 금호타이어가 대표적이다.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조는 지난해 8월 전남 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에 생산직 노조와 따로 교섭을 할 수 있도록 요청해 지노위와 중앙노동위에서 교섭권 분리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사측이 중노위의 판정을 기각해달라며 지난달 11일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같은 달 20일에는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사측의 집행정지 신청은 지난 17일 기각됐지만 행정소송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유 의장은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어서 앞으로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위원장과 간부 중심이 아닌 민주적인 의사 결정을 통한 노조 활동을 확립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새로고침에는 의장이나 부의장 직책은 있지만 독단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사업장마다 상황이 다른 점을 충분히 고려해 모든 위원이 동등한 위치에서 의견을 낼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송 부의장은 "모든 의사는 민주적인 절차로 진행되며 자유로운 의사와 안건 게시를 통해 운영된다"며 "저도 의장도 특별한 권한 없이 모든 위원이 수평적이고 공정하게 운영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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