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은 판결이라도 났지만…추징금 죽거나 도망치면 답 없다

성시호 기자
2023.04.13 05:40

[MT리포트-미납추징금 31조, 숨기긴 쉽고 뺏긴 어렵다]④추징 못하는 범죄수익, '독립몰수제'가 해법 될까

[편집자주] 범죄수익 몰수·추징 제도가 유명무실하다. '감옥 갔다와도 남는 장사'라는 인식이 제2, 제3의 범죄로 이어진다. 범인이 은닉한 수익까지 회수하는 것이 형벌의 완성이자 범죄 예방의 첫걸음이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가 2019년 3월11일 5·18 민주화운동 관련 피고인으로 광주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스1

최근 추징금 문제가 불거진 전직 대통령 고(故) 전두환씨로부터 검찰이 환수한 비자금은 1282억원이다. 전체 추징금 2205억원의 58% 수준에 그친다. 전씨의 정치적 상징성 때문에 미납추징금 900여억원이 최근 부쩍 주목을 받지만 추징금 문제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국가가 범죄수익을 한 푼도 환수하지 못한 사례가 수두룩하다.

'건국 이래 최대 사기꾼'으로 불리는 조희팔이 대표적이다. 조씨는 의료기기 대여사업을 가장한 폰지 사기로 전국에서 수조원대 투자금을 긁어모은 뒤 2008년 해외로 밀항해 2011년 12월 중국에서 숨진 것으로 알려진다. 대구지검은 조씨에 대해 재수사에 돌입했지만 2016년 '공소권 없음' 처분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조씨가 기소조차 되지 않으면서 법원은 조씨의 범죄수익에 대한 추징·몰수를 선고하기는커녕 심리조차 하지 못했다.

현행법상 몰수·추징은 검찰이 피의자를 형사재판에 넘겨야 법원이 선고할 수 있다. 몰수·추징이 형법에 규정된 형벌의 일종인 탓이다. 그렇다면 피의자가 사망할 경우 어떻게 될까. 검찰의 기소부터 막히고 사망 직전 기소되더라도 법원이 결국 공소를 기각하게 된다.

이에 따라 법조계와 정치권에서 '독립몰수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독립몰수제는 피의자에 대한 기소와 별개로 검찰이 수사 도중 발견한 범죄수익을 놓고 법원에 몰수·추징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즉 몰수·추징을 현행 형사재판과 분리하는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민사사건처럼 원고인 검사가 피고인 피의자를 상대로 몰수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게 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통상 형사소송보다 입증이 수월한 편인 민사소송으로 범죄수익을 추징하자는 것이다.

독립몰수제 도입 법안은 18대 국회부터 수차례 발의됐다. 22대 국회 들어서도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범인이 사망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어도 요건을 갖춘 경우 몰수를 선고할 수 있게 하자"며 '전두환 추징3법'의 일환으로 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상태다.

검찰과 법무부는 이른바 '검은 돈'에 대한 환수가 쉬워질 것이라며 도입을 환영한다. 한편으로 형사사건에 대한 무죄추정 원칙이 허물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론도 제기된다. 검경과 혐의를 다퉈야 하는 피의자와 변호인이 수사와 동시에 재산 문제로도 소송전을 벌여야 하기 때문에 방어권을 행사하는 데 과중한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행 형사절차에선 피고인이 확정된 몰수·추징을 이행하지 않고 사망할 경우 집행이 중단되는데 민사절차로 몰수·추징이 이뤄지면 상속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독립몰수제 도입은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에서 이뤄지고 있는 부속서 권고사항 개정 논의로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현재 논의 중인 권고사항에는 독립몰수제를 의무화하고 범죄수익 몰수·추징시 입증책임 완화와 범죄수익 추정을 보장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앞서 이원석 검찰총장은 지난 3일 대검찰청에서 라자 쿠마 FATF 의장을 만나 독립몰수제 도입 필요성을 논의하기도 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