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원대 부실 펀드를 판매하고 환매를 중단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1·2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장하원 전 디스커버리자산운용 대표(현 고문)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검찰이 법률자문자료를 압수한 것은 위법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침해돼선 안 된다는 취지다.
법조계와 정치권에서 변호사와 의뢰인의 비밀보호권을 골자로 한 ACP 제도 도입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법원이 사실상 ACP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3일 머니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남부지법 형사11단독 정성화 판사는 지난달 23일 장 전 대표 측이 제기한 준항고 신청을 일부 받아들였다. 준항고는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등 처분에 불복해 법원에 이의를 제기하는 제도다. 법원이 압수수색에서 확보된 압수물에 대한 준항고를 인용할 경우 해당 압수물은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서울남부지검은 지난해 7월6일 장 전 대표 등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수사 과정에서 디스커버리운용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고 장 전 대표와 임직원의 휴대전화 2대, 서버 외장하드, 노트북에 저장된 전자정보 등을 압수했다.
장 대표 측은 "펀드환매중단 사건 대응 과정에서 변호인인 법무법인 A측과 주고받은 문서, 메시지 등을 검찰이 무차별적으로 입수했는데 변호인과 교신한 자료는 비밀로 보호돼야 하는 만큼 압수처분이 위법하다"며 준항고를 신청했다.
정 판사는 이와 관련, "변호인의 조력을 충분히 받기 위해서는 변호인과의 사이에 비밀보장이라는 신뢰가 전제돼야 하고 법률자문을 받을 목적으로 이뤄진 의사교환에 대해 변호인이나 의뢰인이 공개를 거부할 수 있다"며 "압수물품 중 법무법인 A 소속 변호사가 수신인 또는 발신인인 메시지나 전자메일, A 소속 변호사가 작성한 문서는 헌법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검찰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본질적으로 침해할 자료는 증거로 사용하지 않아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정 판사는 이에 대해서도 "압수 대상이 된 전자정보의 범위를 넘어서는 전자정보를 영장 없이 압수한 셈이어서 위법함을 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정 판사는 검찰이 법무법인 A가 영장 범죄사실 범행 일부를 방조 내지 공모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검찰이 제출한 자료만으로 소명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정 판사는 다만 펀드환매중단 사건 관련 항소심 재판이 진행되는 중에 압수수색이 이뤄져 위법하고 검찰이 포괄적 키워드를 활용해 압수물을 압수하면서 이번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증거까지 압수됐다는 장 전 대표 측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남부지검 관계자는 이번 판결에 대해 "결정문을 검토한 뒤 재항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는 2022년 7월 대출채권 대부분이 부실해 손실을 예상했는데도 이런 사실을 숨겨 370여명의 투자자에게 1348억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힌 혐의로 구속 기소됐지만 같은 해 12월 1심과 올해 2월 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검찰이 상고하면서 현재 대법원 심리가 진행 중이다. 장 대표는 허위 투자제안서로 1000억원대 펀드 투자금을 불법으로 모으고 불법운용한 혐의로도 지난해 12월 불구속 기소돼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대형로펌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어지면서 법조계에서는 ACP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행 변호사법은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선 안 된다는 '변호사의 비밀유지의무'는 규정하지만 변호사가 수사기관 등 제3자에 대해 비밀을 공개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
법조계 한 인사는 이번 판결은 헌법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적극적으로 해석해 사실상 ACP를 인정하는 취지의 법원 판결로 볼 수 있다"며 "국회에 발의된 ACP 도입 관련 변호사법 개정안이 시급하게 처리돼 논란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