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노원구 주양교회 표세철 목사(사진·63)는 1년에 3번씩 마장동 축산물시장을 찾는다. 소의 비장인 지라를 사기 위해서다. 지라는 철분이 풍부한 부위로 빈혈 개선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표 목사가 지라를 주기적으로 챙겨 먹는 이유는 헌혈을 위해서다.
47년간 690회. '헌혈 영웅' 표 목사의 헌혈 횟수다. 그는 신장과 간 일부를 기증하기도 했다. 지난 11일 주양교회에서 만난 표 목사는 "가진 게 건강한 몸뿐이라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이라고 덤덤히 말했다. 표 목사는 지난해 보건복지부와 대한적십자사로부터 '헌혈유공자의 집' 팻말을 받았다. 400회 넘게 헌혈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 표창이다.
헌혈 영웅의 첫 헌혈은 우연한 기회에 이뤄졌다. 학창 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표 목사는 중학생 때부터 신문 배달을 하며 돈을 벌었다. 고교 1학년생이던 1978년 신문 배달을 마치고 라면을 사러 가던 중 헌혈버스에서 헌혈과 인연을 맺었다.
표 목사는 "어린 시절부터 기독교인으로서 이웃을 사랑해야한다고 배웠지만 실천하는 방법을 몰랐다"며 "헌혈을 처음 하고 나서 이것이 내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본격적으로 헌혈을 한 때는 1987년. 여동생 3명과 어머니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해병대 부사관에 지원한 뒤 5년이 넘는 군 복무를 끝냈을 때였다. 처음엔 2개월에 한 번씩 전혈 헌혈을 했다. 성분 헌혈(혈장, 혈소판 등)은 전혈 헌혈보다 더 자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2주에 한 번씩 성분 헌혈을 했다.
혈소판 수치가 낮아 혈소판 헌혈 때 80분이 넘게 걸리기도 했다. 그런데도 백혈병 환자들에게 혈소판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들으면 헌혈하러 달려갔다. 헌혈을 위한 몸을 만들기 위해 기름진 음식이나 카페인 섭취도 피했다.
표 목사가 헌혈을 중단한 시절도 있었다. 1988년 12월 화물차 기사일을 할 때였다. 마장동 도살장, 안산 반월공단, 방배동 신학교, 남양주 자택을 하루 만에 오가는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다가 과로로 쓰러졌다. 결핵성 늑막염 진단을 받았다. 표 목사는 6개월쯤 뒤 기적적으로 완치 판정을 받았다.
표 목사는 1990년부터 다시 헌혈을 시작하고, 1991년엔 신장을 기증했다. 표 목사의 신장을 기증받았던 여고생은 이제 고등학생 자녀를 둔 어머니가 됐다. 당시 여고생의 어머니가 또 다른 환자를 위해 신장을 기증하며 국내 최초 릴레이 신장이식 사례가 탄생했다. 표 목사는 2002년 생면부지에게 간 일부도 기증했다.
그는 "죽을 수도 있는 병이었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살아났다"며 "다시 살게 된 만큼 남을 위해 사는 것이 신의 뜻이라고 생각해 장기기증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표 목사는 헌혈뿐 아니라 노인, 어린이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을 위해 차량 운행을, 노인들에게는 반찬 배달·김장 지원 등을 제공한다. 구청에 아동복지기관으로 등록된 주양교회에선 기초생활수급자 등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방과후 돌봄 서비스를 하고 있다.
표 목사의 목표는 헌혈 정년인 만 69세까지 800번의 헌혈을 하는 것이다. 앞으로 남은 약 6년 동안 110회의 헌혈을 하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표 목사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헌혈을 할 것"이라며 "헌혈과 장기기증은 결국 나의 가족을 살리는 일이다. 내가 직접 혜택을 받지 못하더라도 사회의 누군가가 꼭 필요한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