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히어로
평범한 일상 속 보이지 않는 영웅들이 있습니다. 각자 분야에서 선행을 실천하며 더 나은 우리동네를 위해 뜁니다. 이곳저곳에서 활약하는 우리동네 히어로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평범한 일상 속 보이지 않는 영웅들이 있습니다. 각자 분야에서 선행을 실천하며 더 나은 우리동네를 위해 뜁니다. 이곳저곳에서 활약하는 우리동네 히어로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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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자생한방병원 한의사 한진석씨(33)는 매년 여름·겨울 방학 기간이면 전남 완도군 생일도로 향한다. 휴가를 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서울에서 꼬박 9시간이 걸리는 거리지만 군 복무 기간과 코로나19(COVID-19) 기간 때를 제외하곤 빼먹지 않았다. 어느덧 올해로 13년째다. 한씨가 생일도를 처음 찾은 건 2013년이다. 교육봉사할 곳을 찾기 위한 답사 차원이었으나 열악한 교육 환경을 실감하면서 2014년부터 봉사를 시작했다. 생일도엔 고등학교가 없어 중학교를 졸업하면 가족이 섬을 떠나거나 아이만 육지로 보내야 했다. 다문화 가정이 많아 언어 교육도 필요한 상황이었다. 경희대 한의대에 진학한 2019년부터는 주변 의대·한의대생들과 봉사 모임을 꾸려 함께 생일도를 방문하고 있다. 섬에 내려가기 두 달 전부터 센터 복지사와 교육 커리큘럼을 논의한다. 한 달 전엔 봉사자 인원을 확정하고 학생별로 맞춤형 수업 계획을 세운다. 국어·영어·수학 등 기초과목을 중심으로 가르치고 진로 교육도 진행한다.
"홀로 외치더라도,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바뀌는 게 없으니까요. " 지난 2일 전남 나주시의 한 반려견 놀이터. 정명균씨(37)는 최근 입양한 유기견 '울프'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태어나 처음으로 눈을 맞은 울프는 신이 난 듯 눈밭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정씨는 3년 전 나주시청 내 '동물복지팀'을 만들어 낸 주역이다. 그는 2022년 6월 지방선거 당시 윤병태 나주시장 후보를 수차례 찾아가 동물복지팀 신설을 제안했다. 문제의식에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이듬해 1월 전담팀이 공식 출범했다. 정씨는 "당시 축산과에서 관련 업무를 같이 하면서 과부하에 걸린 상태였다"라며 "동물복지를 전담팀 설치가 시급해보여 행동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정씨의 본업은 따로 있다. 그는 KISA(한국인터넷진흥원)에서 일한다. 하지만 퇴근 이후와 주말엔 '동물복지'에 매달린다. 정씨의 두 번째 직업은 '나주시 명예동물보호관'이다. 명예동물보호관은 시민이 직접 동물학대를 감시하고 보호하는 등 동물복지 전반을 지원하는 일을 한다. 물불 가리지 않는 정씨의 동물사랑은 전담 조직 신설은 물론 제도 개선으로도 이어졌다.
지난 29일 오후 서울 송파구 거여역 3번 출구 인근. 지나는 사람들을 향해 "가래떡 1. 2㎏ 팝니다", "다들 하나씩 사 들고 가세요"라는 목소리가 연신 울렸다. 사회적협동조합 '기부천사'가 연 연말 자선바자회 현장이다. 부스 한켠에는 강정과 떡국떡, 가래떡, 젓갈이 가지런히 놓였다. 강정은 5000원, 가래떡은 5000원, 떡국떡과 젓갈은 각각 1만원. 판매에 나선 4명은 모두 기부천사 회원들이다. 오는 31일까지 바자회를 진행한다. 이날 바자회에서 생긴 수익은 전액 기부천사 후원금으로 적립된다. 후원금은 지역 내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장학금 지원을 비롯해 화재 피해 복구, 국가유공자 주거 개선 등 봉사 활동에 쓰인다. 기부천사는 매년 신정과 구정 무렵, 1년에 두 차례 이런 자선바자회를 열어왔다. 올해로 바자회만 10년째다. ━기부천사 도움으로 13명 고교 졸업 "후원하려면 더 열심히 일"━ 기부천사를 이끄는 김순규 회장(72)은 2013년 11월 단체를 만들었다. 송파구 지역 소상공인들이 모인 사회적협동조합이다.
#레이저가 살갗에 닿자 '타닥타닥' 기계음과 함께 피부 위 문신이 서서히 옅어졌다. 10대 청소년은 "으악!" 소리를 내면서도 시술을 버텨냈다. 충동적으로 새겨 넣은 팔의 문신이 조금씩 사라졌다. 명함 크기 문신을 지우려면 100만원이 넘는 비용이 든다. 문신을 지우고 싶은 청소년들이 선뜻 실행하지 못하는 이유다. 피부과 전문의 송병한씨(43)가 운영 중인 병원에서는 청소년 문신을 무료로 지워준다. 필요한 건 조금 아픈 시술을 견딜 수 있는 인내심과 10번 넘게 꾸준히 병원을 찾는 의지다. 송씨는 경찰청-대한피부과학회가 공동 진행하는 청소년 대상 무료 문신 제거 사업 '사랑의 지우개'에 올해로 4년째 참여하고 있다. 송씨 병원에서 시술을 받은 청소년은 20명 정도다. 대한피부과학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송씨 병원이 문신 제거 봉사에 가장 많이 참여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지난달 14일 송씨 병원을 찾아 '당신의 열정과 수고,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적힌 감사패를 전달했다. 송씨는 매년 200건이 넘는 문신 제거 시술을 하는 베테랑이다.
'봉사활동 1만7434시간, 헌혈 296회. ' 봉사계의 전설로 불리는 박노영씨(67)는 2001년부터 25년간 매년 평균 697시간 봉사활동을 펼쳤다.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가 발급하는 봉사활동 확인서에 포함되지 않은 1980년대부터 2000년까지 봉사활동을 포함하면 휠씬 더 길다. 그의 하루는 봉사로 시작해 봉사로 끝난다. 스케쥴표에는 각종 봉사활동 일정이 가득하다. 평일은 아침 8시부터 2~3시간 봉사하고, 오후에도 가능한 기관에서 봉사활동을 이어간다. 늦은 밤에는 야간방범 순찰을, 주말에는 세종호수지킴이 소속으로 외래종 포획에 나선다. 기자가 만난 날에는 세종시 중촌종합사회복지관 자원순환 가게에서 봉사를 진행했다. 푸른 복지관 조끼를 입고, 옷걸이에 걸린 옷을 살피면서 정리를 시작했다. 새로 들어왔거나 판매 물품 관련 기록도 세심하게 정리했다. 자원순환 가게는 기부 물품을 지역주민에게 판매하는 장소다. 수익금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쓰인다. 박씨는 보통 하루 4시간 가게에서 근무한다. 박씨는 주요 재난·재해 현장에 빠지지 않고 달려갔다.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역 인근의 한 미용실에 휠체어를 탄 손님이 방문했다. 50여년 경력의 미용사 조은선씨(66)는 환하게 웃으며 경사로를 따라 올라온 그를 자리로 안내했다. 조씨는 30년 동안 사용한 가위를 꺼내 들더니 숙달된 가위질로 머리카락을 잘라냈다. 금세 깔끔하고 단정한 스타일의 머리가 완성됐다. 조씨가 장애인 친화 미용실로 탈바꿈한 가게 문을 처음 연 날이다. 지난 6월 동대문구청과 업무협약을 맺은 뒤 꿈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그는 "죽기 전 사정이 어려운 어르신이나 중증장애인이 편히 찾아올 수 있는 미용실을 운영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씨는 기존의 경사로를 튼튼한 것으로 바꾸고는 장애인 친화 미용실이라고 적힌 현판도 작게 달았다. 조씨가 참여한 장애인 친화 미용실은 장애인들이 가까운 미용실에서도 불편 없이 미용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추진된 사업이다. 동대문구는 △엘리베이터 유무 △경사로 설치 가능 여부 △봉사 의지 등
# 서울 노원구 주양교회 표세철 목사(사진·63)는 1년에 3번씩 마장동 축산물시장을 찾는다. 소의 비장인 지라를 사기 위해서다. 지라는 철분이 풍부한 부위로 빈혈 개선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표 목사가 지라를 주기적으로 챙겨 먹는 이유는 헌혈을 위해서다. 47년간 690회. '헌혈 영웅' 표 목사의 헌혈 횟수다. 그는 신장과 간 일부를 기증하기도 했다. 지난 11일 주양교회에서 만난 표 목사는 "가진 게 건강한 몸뿐이라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이라고 덤덤히 말했다. 표 목사는 지난해 보건복지부와 대한적십자사로부터 '헌혈유공자의 집' 팻말을 받았다. 400회 넘게 헌혈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 표창이다. 헌혈 영웅의 첫 헌혈은 우연한 기회에 이뤄졌다. 학창 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표 목사는 중학생 때부터 신문 배달을 하며 돈을 벌었다. 고교 1학년생이던 1978년 신문 배달을 마치고 라면을 사러 가던 중 헌혈버스에서 헌혈과 인연을 맺었다. 표 목사는 "어린 시절부터 기독교인으로서 이웃을 사랑해야한다고 배웠지만 실천하는 방법을 몰랐다"며 "헌혈을 처음 하고 나서 이것이 내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998년 겨울밤 서울의 한 농산물시장. 한 외국인이 낡은 리어카를 끌고 시장을 돌며 상인들에게 팔다 남은 채소가 있는지 물었다. 그를 노숙인이나 도둑으로 생각한 일부 상인들은 욕설을 퍼붓거나 손찌검까지 했다. 리어카에 아무것도 채우지 못한 채 돌아오기 일쑤였다. 경기 성남에 위치한 무료 급식소 '안나의 집'을 약 30년간 운영 중인 김하종(빈센조 보르도·68) 신부가 겪었던 일이다. 33세에 이탈리아에서 한국으로 와 갖은 수모를 겪었던 청년 신부는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김 신부가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건 1990년이다. 그는 성남 신흥동성당의 배영섭 주임신부에게 "성남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많다"는 말을 듣고 곧장 낯선 한국으로 향했다. 김 신부는 성남을 중심으로 무료급식, 교육, 빈민 선교 등 활동을 펼쳤다. 현재 안나의 집에선 매일 900명이 넘는 이들이 찾아와 식사를 해결한다. 노숙인, 독거노인, 위기 청소년 등이 안나의 집의 식구다. 배식을 시작하기 전 김 신부는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넨다.
"저요! 제가 맞출래요!" 인구 4만명이 채 안 되는 충북 증평군에 위치한 벧엘기둥교회에서는 영어 수업이 한창이었다. 안민혁 목사(41)가 '아이 머스트 고 홈(I must go home)'이라는 문장을 한 단어씩 말할 때마다 아이들은 큰 목소리로 단어를 따라 읽었다. 아이들은 영어단어 'theater'(극장)을 배우면서 'th' 발음이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수업을 들은 지 30분이 지나자 아이들은 점점 몸을 배배 꼬거나 책상에 엎드렸는데, 잠시 뒤 퀴즈 시간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을 반짝이며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2015년부터 안 목사는 영어 공부가 필요한 학생을 위해 무료로 강의를 하고 있다. 지인 추천으로 청주시 북이면 초등학교 돌봄교실에서 2~3개월간 아이들 대상 무료 영어 강의를 펼친 게 계기였다. 지금은 교회에서 무료 수업을 열었고 노인층까지 대상을 넓혔다. 교회 수업에 교인만 참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교회 2층 스터디룸은 지역 주민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정민수(가명·14)군도 같은 학교 김유민(가명·14) 군을 따라 교회엔 다니지 않지만 1년째 수업을 듣고 있다.
102톤(t). 전장원 대표(사진·50)가 이끄는 플로빙 코리아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지난 3년 6개월 동안 제주 바다에서 수거한 해양 쓰레기의 무게다. 1. 5t 트럭 70대 분량이다. 해안가에 밀려온 쓰레기뿐 아니라 깊은 바다에 가라앉은 쓰레기까지 포함됐다. 전 대표는 10여년 전부터 '플로빙'을 시작했다. 플로빙은 스웨덴어 '이삭을 줍는다(plokka up)'와 '프리다이빙(freediving)'을 합친 말로, 다이빙을 통해 해양 쓰레기를 줍는 환경 레포츠다. 일본, 홍콩 등 해외 생활을 마치고 제주에 터를 잡은 전 대표는 평소 취미였던 프리다이빙을 즐기면서 바다 오염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일부 제주 바다는 미역, 감태 등 해조류가 사라지고 녹조와 해양 쓰레기로 뒤덮여 있었다. 제주시 한림읍에서 다이빙샵을 운영하던 전 대표가 2021년 플로빙 단체를 결성한 이유다. 전 대표는 매년 여름 20~40명, 겨울 10~15명 정도 봉사자들과 제주 전역을 돌며 플로빙 활동을 한다. 참가자들은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지난 2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수서동 수서역 1번, 2번 출구 사이 공터에서 작은 바이올린 콘서트가 열렸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빛날윤미씨(33)가 능숙하게 악보 받침대를 설치한 뒤 바이올린을 들고 연주를 시작했다. 바이올린 선율은 수서역 거리로 울려 퍼졌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클래식 감성에 잠겼다. 김씨는 올해부터 매주 월요일 수서역에서 버스킹 공연을 펼치고 있다. 모금함 없는 완전한 무료 공연이다. 수서역을 공연 장소로 택한 이유는 인근 종합병원에 오가는 암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작은 위로와 희망을 주고 싶어서다. 수서역은 종합병원 셔틀버스 정류장이 위치해 전국 각지에서 온 암 환자와 보호자들이 들르는 곳이다. 김씨를 수서역으로 이끈 사람은 간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다. 10여년 전 김씨는 아버지가 입원한 요양병원에서 환자들을 대상으로 연주를 펼쳤다. 6년 넘게 간암 투병 중이던 아버지는 "네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길 꿈꿨는데, 이렇게 죽어가는 한 영혼을 위한 연주가 훨씬 더 값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