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사태에 '유죄 전 몰수' 제도 부상…"신속 구제" vs "부작용'

양윤우 기자, 오석진 기자
2025.10.23 16:12
정성호 법무부 장관 /사진=뉴스1

캄보디아 등 해외에 거점을 둔 보이스피싱 사기 사건 등에서 피해자의 빠른 구제를 위해 '독립몰수제'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범죄수익 환수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유죄 확정 전 범죄수익을 몰수하는 방법인데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과 충돌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23일 법조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대책 회의 독립몰수제 관련 입법을 신속히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전날 한국인을 납치·감금해 사기에 가담시킨 캄보디아 사태를 언급하며 "현행 형사 제도에서는 신속하게 범죄수익을 몰수해 피해자에게 돌려주는 데 큰 한계가 있다"며 독립몰수제 입법을 촉구했다.

독립몰수제는 피고인에 대한 유죄 판결 없이도 특정 재산이 범죄수익임이 법원에 의해 인정되면 국가가 몰수·환수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현행법상 몰수는 형벌에 부가되는 형사제재로 규정돼 있다. 따라서 피고인이 유죄 확정판결을 받아야만 집행할 수 있다. 만약 피의자가 도주·사망했거나 공소시효가 지나면 범죄수익을 몰수할 수 없다.

정 장관이 "수사를 통해 범죄수익이 특정되더라도 범죄자가 확인되지 않거나 해외로 도피해 기소할 수 없는 경우 이들이 취득한 이익을 몰수할 수 없는 구조적 제약이 있다"며 "이들을 체포해 국내로 송환하고 유죄 선고가 나올 때까지 범죄수익 몰수와 피해자 일상 회복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유엔 부패방지협약(UNCAC)과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등은 각 국가에 유죄 판결 없이도 불법 수익을 박탈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미국 등 영미법 국가는 형사 재판과 별개로 진행되는 민사몰수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민사몰수는 특정 재산이 범죄로부터 얻어진 수익임을 입증하면 사람이 아닌 재산 자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국가가 소유권을 박탈하는 처분이다.

법조계에서도 독립몰수제가 범죄수익 환수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내 대기업 소속 국제변호사는 "해외에서 벌어지는 사기 범죄는 범죄수익이 빠르게 흩어지기 때문에 속도가 생명이다. 불법 이익만큼은 별도 몰수 제도로 신속히 환수해야 피해자 구제와 정의 실현이 가능하다"며 "또 범죄자들이 국내로 송환된다 해도 유죄 확정판결이 나오기까지 4~5년씩 걸리기 때문에 피해 복구가 상당히 느리다"고 했다.

한 현직 판사도 "유죄 가능성이 매우 높고 예외적 필요성이 인정될 때 한정해 선제적 몰수는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다만 조건은 엄격하게 설정해야 한다"며 "국회가 요건을 추상적으로 정해도 법원이 세부 요건을 엄격히 법리로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헌법상 무죄추정 원칙과 충돌된다는 우려가 많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아무리 시급해도 유죄 확정 전 재산을 박탈하면 사실상 벌금형과 유사한 효과가 난다. 형벌적 성격의 몰수라면 정식 선고와 그 이유가 제시된 뒤에 이뤄져야 한다"며 "긴급성이 있다면 가압류·가처분 등 보전처분으로 먼저 묶고 법원의 정식 판단 절차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고 밝혔다. 정식 재판에서 유죄로 확정되기 전에 국가가 재산을 박탈하는 것은 피의자에게 형벌을 미리 부과하는 것과 다름없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취지다.

재산권 침해 소지도 거론된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범죄와의 관련성이 완벽히 입증되지 않은 재산을 몰수했다가 추후 무죄로 밝혀지거나 오판이 있었을 경우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게 된다"며 "또 피고인이 아닌 제3자가 그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 무고한 제3자의 재산권까지 침해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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