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36주차 산모가 임신중절 수술을 한 혐의로 살인죄로 기소됐다가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산모에게 수술을 한 혐의로 함께 살인죄로 기소된 의사들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진관)는 4일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20대 산모 권모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고 이와 함께 200시간의 사회봉사도 명령했다.
또 재판부는 병원장 80대 윤모씨에게 징역 6년과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수술을 한 의사 60대 심모씨는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의료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브로커 2명은 각각 징역 1년과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권씨는 윤씨 등과 공모해 피해자를 살해했고 미필적으로 고의 있었다고 인정할 수 있다"며 "임신하고 있던 태아가 모체 밖으로 나가면 생존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의료진이 어떤 방법으로든 살아있는 사람을 사망하게 할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태아가 죽을 것을 알고 용인하는 의사가 있었다"면서 살인죄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어 "36주차 산모인 권씨는 곧 자연적으로 분만에 이르게 될 상황으로 태아는 특별한 이상 없고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며 "권씨는 진료 받으면서 이러한 사정에 대해 알고 있었는데도 임신 주수 때문에 중절 수술 불가능하다고 듣자 수술이 가능한 의원을 찾아내 건강 상태가 문제없다고 하고 수술했다"면서 살인죄 유죄를 인정했다.
또 "권씨는 임신 사실 알게 되자마자 지우고 싶다는 취지로 말했고, 수술비가 자신이 마련할 수 있는 돈보다 많아 수술비를 할인해달라고 한 후 결국 수술했다"면서 "권씨가 본인은 수술을 받지 못했다면 미혼모 시설에 가려고 했다고 하나 입양 절차를 알아봤다는 등의 자료가 없다"고 설명했다.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를 선고한 후 낙태죄가 현재 입법 공백 상태에 있는 것과 관련해 재판부는 "낙태죄는 태아를 인위적으로 모체 밖으로 배출하거나 모체 안에서 죽임으로 성립하는데, 태아가 생존 가능한 경우에 인공적으로 배출돼 살아있는 존재가 되면 그때부터는 낙태죄와 상관없다"고 판단했다.
양형 이유를 설명하며 재판부는 "낙태죄의 입법 공백이 범죄 성립 여부를 좌우하지는 않지만 참작할 여지는 있다"면서 "이들의 형을 정함에 있어 책임을 온전히 이들에게만 물을 수 없다"면서 산모들의 현실적 어려움에 대해 공감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며 모든 인간은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이고 이는 태어나자마자 인정된다"면서 "태아가 태어난 이상 하나의 사람으로서 보호돼야 하는데 피해자는 숨 한 번 제대로 쉬어보지 못한 채 냉장고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면서 생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권씨에 대해 재판부는 "동영상을 올려 이로 인해 우리 사회가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도 "산모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상황을 고려할 때 임신과 출산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며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판결 후 권씨의 변호인은 "재판 결과에 대해 예상하지 못했다"며 유죄 판결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편 사건은 권씨가 '총 수술비용 900만원, 지옥 같던 120시간'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게시하며 시작됐다. 병원장 윤씨와 집도의 심씨는 2024년 6월 임신 36주차인 권씨의 제왕절개 수술을 진행한 후 태아를 미리 준비한 사각포로 덮고 냉동고에 넣어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윤씨는 권씨의 진료기록부에 건강 상태를 '출혈 및 복통 있음'이라고 허위 기재하고 태아가 사산한 것처럼 가장한 혐의도 받았다. 권씨가 이런 사실에 대해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자 윤씨는 태아의 사산 증명서를 허위로 발급하기도 했다.
검찰 조사 결과 윤씨는 병원 경영에 어려움을 겪자, 낙태 수술을 통해 수입을 얻기로 마음먹고 범행을 벌인 것으로 파악됐다. 심씨는 건당 수십만원의 사례를 받고 수술을 했다. 윤씨는 이 기간에 브로커들에게 환자 527명을 소개받아 총 14억6000만원을 취득한 혐의도 받았다. 윤씨에게 환자를 알선한 브로커 2명도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