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사안으로 기소된 두 사람 재판이 따로 진행될 때, 한 명이 다른 사람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허위 증언을 했다면 모해위증죄로 처벌이 가능하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이 나왔다. 통상 피고인이 자신의 혐의에 대한 거짓말을 할 경우 처벌을 하지 않지만, 재판이 분리된 다른 공범 사건에서는 증인으로 취급되는 만큼 선서 후에 한 거짓말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대법원장 조희대)는 19일 모해위증 혐의로 기소된 노모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노씨는 과거 하수관거 정비공사 현장을 실질적으로 관리·감독하면서 설계 도면과 다르게 공사했는데도 마치 설계 도면대로 시공한 것처럼 현장 사진을 조작해 제출한 사건으로 회사 대표 A씨와 함께 수사를 받았다. 이후 두 사람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 공범으로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노씨와 A씨 재판은 따로 진행되게 됐다. 노씨는 A씨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A씨가 사진 조작을 지시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검찰은 노씨가 A씨를 형사처분 받게 할 목적으로 허위 증언을 했다고 보고 모해위증 혐의로 별도 기소했다.
1·2심은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원심은 노씨 진술이 수사 단계와 법정에서 여러 차례 바뀌었고, 현장 직원들과 감리단장 진술도 노씨 주장과 맞지 않는다고 봤다. 또 사진 조작은 오히려 노씨 지시에 따라 이뤄진 정황이 강하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에서 노씨는 A씨 재판의 증인인 동시에 A씨가 받는 혐의와 같은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이다. 통상 피고인이 자신의 혐의에 대해 한 진술을 위증죄로 처벌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논란이 있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재판이 분리된 공동피고인은 다른 공동피고인 사건에서는 원칙적으로 증인 자격이 인정되고, 선서한 뒤 허위로 진술했다면 위증 또는 모해위증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같은 사건 관련자라도 자신의 재판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이상 법정에서 한 거짓말까지 면책되지는 않는다고 본 것이다.
엄상필 대법관은 다수의견 설명에서 "마약 범죄나 전기통신금융사기처럼 여러 사람이 조직적으로 공모하는 사건은 객관적 물증 확보가 쉽지 않아 공범 진술의 중요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어 "적법절차에 따른 신속한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서는 공범 공동피고인에게 진실의무를 부과하고 위증의 경고 아래 선서한 뒤 다른 공동피고인의 반대신문을 받으며 진술하게 하는 증인신문 방식이 피고인신문 방식보다 더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오경미 대법관은 유일하게 반대의견을 냈다. 오 대법관은 "피고인의 진술거부권은 적법절차의 핵심이므로 실체적 진실 발견이나 재판 실무의 편의보다 우선 보호돼야 한다"며 "재판이 잠시 분리됐다는 이유만으로 공범 공동피고인을 완전히 제3자인 증인으로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이어 "자기 혐의와 관련한 질문에 답하게 하면서 허위 진술 시 위증죄로 처벌하는 것은 결국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며 "형사소송 절차에서 대법원의 진정한 의무는 국가적 이익보다 피고인의 진술거부권에 관한 적법절차의 원칙을 확고히 해 인간의 존엄성과 생존 가치를 보장하는 데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4명이 아닌 13명으로 선고를 진행했다. 노태악 전 대법관이 지난 3일 퇴임했으나 후임 대법관이 아직 정해지지 않아서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1월21일 4명의 대법관 후보자를 추천했지만 조희대 대법원장은 최종 후보자는 제청하지 않았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후보를 제청하면 대통령이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보내 인사청문회를 한 뒤 본회의 표결을 거쳐 임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