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4월 1일 오후 5시 50분쯤. 서울시 성동구 광장동에서 강동구 천호동 방면으로 가던 시내버스가 천호대교 남단 200m 지점에서 난간을 들이받고 한강으로 추락했다.
당시 버스는 승객 54명을 태우고 있었는데 이중 19명이 사망하고 35명이 부상을 입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이날 수도교통(현 송파상운) 572번 시내버스는 천호동 방면으로 운행하던 중 앞서 달리던 차를 추월해 1차선을 시속 약 100km로 달렸다.
이때 갑자기 왼쪽 앞바퀴가 터지면서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다가 중앙선을 넘었다. 운전기사가 핸들을 놓치면서 제동하지 못했고 다리 난간 8개를 부수고 약 20m 아래 강물로 떨어졌다.
버스가 수심 2~3m의 강바닥에 곤두박질치면서 차체 앞 부분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됐고 이때 승객 여러 명이 사망했다. 또 이 충격으로 일부는 튕겨져 나갔고 남은 승객들 다수는 의식을 잃은 채로 버스 안에서 뒤엉켜 익사했다.
사망자가 대거 발생하면서 사고 후 밤 늦은 시간까지 한강에서 생존자 구조와 시신 인양 작업이 진행됐다.
당시 버스에 있었던 한 학생은 "난간 밑으로 떨어지다가 몇 바퀴 돌고 나서 물 속으로 빠졌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운전기사 전모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갑자기 '펑'하고 타이어가 펑크났고 차가 분리대를 넘어간 후 다리가 부러지면서 브레이크도 잡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사고가 일어난 시간대가 하굣길이라 사상자들 중 다수가 학생들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차체가 훼손될 정도로 큰 사고였기 때문에 구조 당시 중상을 입고 사투를 벌이다 사망한 안타까운 경우도 있었다.
사고의 원인으로는 앞 바퀴의 펑크와 운전기사의 무리한 과속 난폭 운전이 지목됐다.
펑크가 났던 타이어는 재생 타이어였다. 기사들의 반발에도 비용 절감을 이유로 낡고 값싼 재생 타이어를 쓴 것이다.
재생 타이어는 이미 수명이 다 된 타이어의 접지면을 가공해 새로운 패턴의 고무를 덧붙여 압착시키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정상적인 신품 타이어보다 가격이 저렴하지만 내구성이 현저히 떨어져 사고 위험이 크다. 사고 이후 서울 시내버스의 45%가량은 앞 바퀴에 재생 타이어를 사용해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또 운전기사는 당시 배차 시간에 쫓겨 앞차를 추월하며 과속 난폭운전을 했다.
해당 버스는 비교적 한가한 시간대인 오후 2시 25분 시발점을 떠나 변두리부터 막히기 시작했고 마장동, 신설동, 종로, 광화문을 거치면서 각각 3~4분씩 늦어졌다. 운전기사는 배차 시간에 쫓기자 추월 7번, 신호 위반 3번을 했는데도 예정 시간보다 9분 늦게 반환점에 도착했다. 배차 시간에 쫓긴 운전기사가 사고 지점에서 100km로 달린 탓에 왼쪽 앞 바퀴가 터진 후에도 속도가 줄어들지 않아 다리 아래로 추락했다.
사고 후 운전기사 전모씨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가 적용돼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노후된 재생 타이어가 사고 원인이라 피고인의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며 전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운전기사의 과속과 차선위반 행위는 인정되지만, 이것이 추락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봤다.
항소심도 전씨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고 검찰은 상고했지만 1992년 1월 대법원은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전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수도교통 측은 사고 후 "유가족과 부상자 가족 여러분, 그리고 심려하시는 시민 여러분께 깊은 사죄를 드린다. 임직원 일동은 사고에 깊은 책임을 통감하며, 앞으로는 이러한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 운행에 진력하고 피해자 여러분을 위해 사후 수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사과했다.
승객의 안전을 무시한 직권남용, 부실한 회사 운영 등 혐의로 수도교통 대표자와 경영진 다수가 구속기소됐으며 회사는 경영진 다수를 교체하고 송파상운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사건 이후 정부는 버스 앞 바퀴에 재생 타이어의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