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7일. 선임 병사들이 후임 병사를 집단 구타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역대 최악의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대한민국 육군 제28보병사단 포병여단 977포병대대 의무대 소속 윤승주 일병은 한 달이 넘도록 이어진 집단 구타로 인해 향년 2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부검 당시 윤 일병은 종아리, 허벅지의 근육이 터지고 갈비뼈 24개 중 14개가 손상, 장기들은 피가 고이거나 터진 끔찍한 상태였다.
윤 일병은 자대 생활을 시작한 그해 3월3일부터 대답이 느리다는 이유로 폭행당했다. 평소 밝은 성격으로 대학교 과대까지 맡았던 윤 일병은 선임들의 윽박지름과 폭행에 말이 어눌해지고 표정이 어두워져 갔다. 그는 매일 같이 주먹 또는 마대자루로 맞아야 했다.
1시간이 넘는 인격모독이 담긴 폭언과 욕설은 기본이었다. 가해자들은 다친 부위를 더 여러 차례 폭행했다. 선임인 하사는 이를 방관하고 오히려 "폭력을 써서라도 군기를 잡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4월에 들어서는 가혹행위가 심해졌다. 가해자들은 대답을 똑바로 하지 못한다며 치약 한 통을 짜 먹이고 잠을 잤다는 이유로 뺨과 허벅지를 때렸다. 바닥에 가래침을 뱉고 핥아먹으라고 하거나 성기에 액체 안티푸라민을 바르는 등 고문 수준의 행위도 서슴없이 이뤄졌다.
주범인 이모병장(당시 25)은 윤 일병 등 다른 병사들에게 폭행 피해를 알릴 경우 "네 아버지 사업을 망하게 하고 어머니를 섬에 팔아버리겠다. 우리 아버지가 조직폭력배"라고 협박했다. 이는 모두 거짓이었으나 병사들은 알리가 없었다. 선임들까지 속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가 벌어진 4월6일 오후, 이 병장은 의무대 생활관에서 냉동 음식을 사와 다 같이 먹던 중 윤 일병을 또다시 폭행했다. 같이 있던 하모병장(22), 이모상병(22), 지모상병(20) 역시 함께 구타에 동참했다.
20분이 넘게 진행된 구타도중 윤 일병은 침을 흘리고 실금하며 쓰러졌다. 이 병장은 윤 일병의 숨이 멈춘 것도 모른 채 "꾀병 부린다"며 폭행을 멈추지 않았다.
이후 심각함을 깨달은 가해자들은 심폐소생술을 하며 앰뷸런스로 윤 일병을 병원에 이송했지만 윤 일병은 다음 날인 7일 사망했다.
가해자들은 자대 복귀 후 "윤 일병이 냉동식품을 먹다가 질식한 것"이라고 말을 맞췄다. 이들은 평소 윤 일병이 작성해오던 수첩을 찾아 자신들의 만행이 담긴 내용을 찢어 증거를 인멸하려 하기도 했다.
군 당국 역시 윤 일병의 사망에 대해 "음식물이 기도에 막혀 기도 폐색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사건 약 3개월 만인 그해 8월 선임병들의 구타와 고문에 의한 살인 정황이 드러났다.
부검 결과 윤 일병의 다리와 배 등 온몸에는 피멍이 가득했다. 갈비뼈는 무려 14곳이나 부러져 있었다. 위, 간, 폐, 심장 등 주요 장기에는 피가 고여 있었고 비장은 아예 터진 상태였다. 다리에선 흉터가 발견됐다. 상처가 아물어 흉터가 될 정도로 오랜 기간 구타당한 흔적이었다.
윤 일병의 부검 감정서를 분석한 유성호 서울대 법의학 교수는 "우리가 흔히 맞아 죽었다고 얘기하지 않나. 심한 구타가 특정 부분에 가해지면 부교감 신경이 자극되면서 심장이 멈춰버린다"고 쇼크사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너무 많은 갈비뼈가 부러졌다. 교통사고나 추락사에서 볼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라고 했다.
이후 윤 일병의 사인은 구타로 인한 '속발성 쇼크사'로 변경됐다.
주범인 이 병장은 상해치사, 폭행 및 공동폭행, 강요, 위력행사, 가혹행위, 의료법 위반,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하 병장, 이 상병, 지 상병, 유모하사(22) 등은 상해치사와 공동폭행 및 폭행 등으로 기소됐다.
윤 일병의 자대배치 직전까지 이 병장 등 다른 가해자들에게 물고문과 치약 고문 등을 당했던 이 일병(20)도 가해자 무리로 지목됐다. 다만 그는 폭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만 이뤄졌다.
가해자들은 폭행 이유가 이 병장의 지시와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병장은 지휘관인 유 하사의 묵인과 방조 탓이라고 책임을 돌렸다.
폭행 장면을 목격한 다른 병사들 역시 "간부가 보고도 아무 말을 안 해 신경 쓰지 않았다"고 했다. 엄격한 계급사회 안에서 맞은 병사가 또다시 후임병을 때리는 폭력 구조가 대물림된 것.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던 2015년 이 병장은 복역 중인 군 교도소에서도 가혹행위를 일삼아 추가로 기소됐다.
이 병장은 화장실에 동료 수감자를 꿇어앉힌 후 몸에 소변을 보는가 하면 자기 성기를 보여주며 성희롱하는 등 엽기적인 범행을 저질렀다. 내용물이 꽉 찬 1.5리터 페트병으로 때리거나 목을 조르고, 볼펜으로 찌르며 괴롭히기도 했다.
또 피해 수감자에게 "윤 일병 걔도 너처럼 대답을 잘 안 했는데 너도 걔 같다. 너도 당해볼래? 너도 걔처럼 해줄까? 걔가 죽어서 내가 지금 이렇게 됐다"며 윤 일병을 모욕하기도 했다.
이 병장의 군 교도소 사건은 2016년 파기환송심을 맡은 고등군사법원에서 함께 심리해 그에게 징역 40년, 공범들에게는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유 하사는 자신이 관리·감독하는 병사의 범행을 방조한 혐의 등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2016년 8월25일 대법원이 원심판결을 그대로 확정하면서 긴 재판이 마무리됐다.
지난 3월17일, 윤 일병 유족들의 진실 규명 요구 진정 관련 행정심판 청구 사건의 심리가 열렸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2015년 이 사건을 1년여간 직권조사하고 국방부 장관에게 윤 일병 사인 축소·은폐 의혹에 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권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유족은 2023년 4월 6일 육군의 사인 은폐·조작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 진정을 제출했다. 하지만 당시 군 인권보호관이었던 김용원 위원은 "진정의 원인이 된 사실이 발생한 날부터 1년 이상이 지났다"는 이유로 각하했다.
이에 유족은 2024년 1월 '인권위의 각하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행정심판을 청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월에는 육군 제5군단 지구배상심의회가 윤 일병 유족의 국가배상 신청에 대해 총 25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기로 결정해 유족이 재심을 신청하는 일도 있었다.
유족은 2025년 10월 재심 신청서에 "국가배상결정서 문서에 '군 복무 중 순직함'이라는 단 일곱글자만 기재됐다. 심지어 유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사과나 반성의 말 또한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적으며 분노를 표출했다.
유족들은 위자료 액수 역시 현저히 낮은 수준이라며 "국가배상법의 취지에 맞게 그에 합당한 위자료를 배상하고 앞으로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재발방지대책도 포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족들의 기나긴 싸움은 사건 10년이 지나도록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