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Q 167' 최연소 교수→테러범으로...17년간 미국 떨게 한 '폭탄 공포'[뉴스속오늘]

박다영 기자
2026.05.04 06:00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1998년 5월 4일 일명 '유나바머'(Unabomber)라고 불렸던 미국의 연쇄 폭탄 테러범 시어도어 카진스키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사진=뉴스1

1998년 5월4일. 일명 '유나바머'(Unabomber)라고 불렸던 미국의 연쇄 폭탄 테러범 시어도어 카진스키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도 전혀 반성의 빛을 보이지 않는다"며 그의 혐의 4가지에 대해 각각 종신형을 선고했으며 추가로 징역 30년 형을 선고했다.

소포가 '펑' 폭탄 테러로 3명 사망…대학교·항공사만 노려

그는 1978년부터 우편물 폭탄 테러를 벌이기 시작했다. 타깃은 주로 대학 연구소와 공항이었다.

1978년 5월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버클리 크리스트 교수가 발신인에 자신의 이름이 적힌 소포를 받았다. 크리스트 교수는 수상하게 여겨 경찰을 불렀고 소포를 조사해달라고 요청한 순간 엄청난 굉음을 일으키며 소포가 폭발했다. 시어도어가 벌인 첫 테러였다.

약 1년 뒤인 1979년 5월에는 노스 웨스턴 대학교 대학원생 존 해리스가 소포를 개봉하다가 부상을 당했다. 같은 해 11월 시카고에서 출발해 워싱턴 DC로 향하는 아메리칸 에어라인 보잉444기로 카스키 우편물이 배달되는 중 폭발해 12명의 승객이 부상을 입었다.

이 사건으로 FBI가 수사에 착수하자 유나바머는 유나이티드 항공의 사장 퍼시 우드에게 폭발물을 보냈다. 수취인이었던 퍼시 우드는 큰 화상을 입었다.

FBI는 대학교(university)와 항공사(airline)에 테러를 일으킨다며 두 단어의 앞 글자와 폭탄테러범(bomber)을 합쳐 신원 미상 범인을 '유나바머'(Unabomber)로 불렀다.

반복된 테러에 1985년 12월 첫 사망자가 나왔다. 컴퓨터 가게를 운영하던 38살 휴 스크러턴이었다. 이어 1993년에는 광고 회사 버슨&마스텔라 중역 토마스 모서, 1995년에는 길버트 머레이 목재산업 로비협회 회장이 폭탄 테러로 숨졌다.

유나바머는 1978년부터 1995년까지 17년 동안 16번의 폭탄 테러를 저질렀고 3명이 사망했고 29명이 부상을 입었다.

지문도 없는 폭탄…언론사에 "선언문 실어달라" 협박
1998년 5월 4일 일명 '유나바머'(Unabomber)라고 불렸던 미국의 연쇄 폭탄 테러범 시어도어 카진스키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사진=JTBC '세계 다크투어'

유나바머가 잇따라 범행을 저질렀으나 FBI는 어떠한 단서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폭발물 재료는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물건이었고 화약도 불꽃놀이에서 재활용한 재료였다. 지문도 없었다.

FBI는 역사상 가장 많은 인력과 비용을 들이고도 17년 간 범인을 잡지 못하자 100만달러(약 15억원)에 달하는 현상금을 걸었다.

이런 가운데 유나바머가 스스로 자신을 드러냈고 끝내 꼬리가 잡혔다. 그는 1995년 미국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 주요 언론사에 논문 한 편과 편지를 보내 자신의 선언문을 게재하지 않으면 테러를 계속하겠다고 협박했다.

FBI는 회의 끝에 그의 선언문 '산업사회와 그 미래'를 신문에 게재했다. 글에는 산업 혁명은 인류에게 재앙이라며 혁명을 통해 기존의 사회 질서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단서는 선언문에 있었다. 그의 동생인 데이비드 카진스키는 선언문을 읽다 평소 형만 쓰는 문체를 발견했고 범인이 자신의 형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동생 제보를 받은 경찰은 1996년 4월 몬태나주 강가 오두막집에서 유나바머를 붙잡았다. 당시 그의 나이 54세였다.

최연소 교수직 사임하고 은둔생활…감방에서 숨진 채 발견
1998년 5월 4일 일명 '유나바머'(Unabomber)라고 불렸던 미국의 연쇄 폭탄 테러범 시어도어 카진스키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사진=JTBC '세계 다크투어'

시어도어는 어린 시절 천부적 재능을 가진 인재였다. 1942년 시카고의 한 폴란드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때 IQ 167을 기록해 학교 내에서 천재로 통했다.

16세에는 하버드 대학교 수학과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으며 1964년 졸업 이후 미시간 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24세였던 1967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사상 최연소 수학 교수가 됐다. 그러나 2년 만에 갑작스럽게 교수직을 사임했고 산속으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시작했다.

시어도어는 전기도, 수도시설도 없는 숲속에 오두막을 짓고 문명을 등진 채 혼자 생활했다. 그런데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그의 오두막 주변 생태계가 파괴됐고 산업사회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됐다. 그가 언론사에 보냈던 선언문에서도 이러한 범행 동기가 잘 드러난다.

그는 오두막에서 계속 칩거하며 무정부주의나 사보타주에 대한 책을 탐독하면서 사회에 대한 분노를 계속 키워갔고 1978년부터는 사제 폭발물 제조법을 독학으로 익혔다.

시어도어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범행 일체를 인정했고 법원은 그에게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했다.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보안시설이 갖춰진 플로렌스 교도소에 수감됐으나 2023년 6월 감방에서 의식이 없는 채로 발견됐다. 그의 나이 81세였다. 현지 매체들은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