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선고된 법원 판결에서는 2개월만에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가 주목을 받았다. 노사합의로 파국은 막았지만 법원이 노사 합의에 앞서 파업 가처분을 결정한 것도 이례적이어서 관심을 모았다.
대법원은 지난 21일 전합 선고를 진행했다. 지난 3월19일 이후 2개월만에 전합 선고였다. 보통 기존 판례를 바꾸거나 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을 대법관 전원이 모여서 판결한다.
이번 대상은 크게 2가지 사건이다. 하나는 HD현대중공업 하청노조가 원청인 HD현대중공업과 직접 교섭하게 해달라며 낸 소송이고 다른 하나는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미용 목적의 문신을 하는 행위를 의료법 위반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우선 하청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교섭해달라고 요구한 소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일명 '노란봉투법' 시행이 되기 전 사건에는 예전 노동조합법이 적용되기 때문에 원청과 하청 노동자 사이에 근로계약 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이상 원청이 하청노조와 단체교섭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노란봉투법을 소급해서 적용할 순 없다고 본 것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는 2016년 4월부터 5월까지 HD현대중공업에 총 5차례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HD현대중공업은 자신들이 사내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근로계약상 사용자가 아니어서 단체교섭 상대방인 사용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교섭을 거부했다. 그러자 노조는 2017년 1월 HD현대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원고 패소로 판단했다. 하청업체들이 자체 설비와 인력을 갖추고 있었고 소속 노동자들의 근태 관리와 징계권 등을 독자적으로 행사했다고 봤다. 또 하청업체 현장대리인이 작업장에 상주하면서 소속 노동자들을 직접 지휘·감독했다는 점도 판단 근거가 됐다.
대법원도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2016년 단체교섭 거부를 문제 삼은 사건이기 때문에 일명 '노란봉투법'이라 불리는 개정 노동조합법이 아니라 2016년 당시의 옛 노동조합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봤다.
옛 노동조합법 아래에서는 단체교섭 의무를 지는 사용자를 원칙적으로 근로자와 명시적이거나 묵시적인 근로계약 관계를 맺은 사람으로 본다. 근로자를 지휘·감독하고 근로를 제공받으며, 그 대가로 임금을 지급하는 관계가 있어야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로 본다는 것이다.
반면 지난 3월부터 시행된 개정 노동조합법에서는 근로계약을 직접 맺지 않았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도 사용자로 보게 했다.
대법원은 "옛 노동조합법이 적용되는 사안에서 종전 법리는 여전히 타당하다고 판단하면서 이 법리를 전제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판결을 수긍한다"고 밝혔다. 이어 "원청회사가 사내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노동조합에 대해 지배·개입하지 않을 의무 등 소극적 의무를 부담하는 것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단체협약의 체결을 위해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까지 부담한다고 해석하는 것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만 오경미·이흥구·신숙희·마용주 대법관 등 4명은 "노동3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서는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는 경우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한다고 봐야 한다"며 "수급근로자의 노동조합이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원청과 직접 교섭할 수 있어야 노동3권이 실효적으로 보장된다"고 밝혔다.
대법 전합은 34년만에 기존 판례도 바꿨다.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미용 목적의 문신을 하는 행위를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봤다. 1992년 눈썹 문신을 의료 행위로 보고 처벌했던 판례를 바꾼 것이다.
대법원은 "문신 행위는 전문적인 의학지식을 갖춘 의료인이 등장하기 전부터 광범위하게 이뤄졌다"며 "통상적인 레터링·미용 문신은 대부분 질병의 예방 또는 치료와 직접적 관련이 없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문신 시술은 문신과 관련된 미적인 지식과 기능, 경험 등이 요구되는 영역으로 반드시 의료인에 버금가는 의학적 전문지식과 경험이 있어야만 성공적인 문신 시술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문신의 사회적 의미가 과거와 달라졌다는 점도 거론했다. 대법원은 "문신은 더 이상 일부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인이 자연스레 접할 수 있는 문화로 자리잡았다"며 "문신은 신분 지위 및 소속감 표현·예술성 발현·추억 소장·의지 각인 등 다양한 사회, 문화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런 의미에서) 피시술자는 문신을 잘하는 사람에게 받고 싶을 수 있다"며 "피시술자가 원하는 수준의 경험·창작성은 의료인이라고 반드시 갖춘 게 아니다"라고 했다.
대법원은 마지막으로 "의료인 면허 취득을 위해 큰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는 게 현실이기 때문에 일반인에게 문신 시술에 있어서 의료인 자격을 취득하게 하는 건 사실상 '비의료인 문신 행위 금지'나 다름없다"며 "문신을 직업으로 선택할 기본권을 향유할 기회를 봉쇄하게 된다"고도 설명했다.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을 허용하는 '문신사법'이 지난해 9월 국회를 통과한 점도 이번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문신사법은 면허를 받으면 합법적으로 문신 시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골자다. 내년 10월 말 시행 예정이다. 다만 대법원 판단이 34년만에 달라지면서 현장에서는 혼란도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법 전합과 별도로 지난 18일 수원지법 민사합의31부(부장판사 신우정) 결정도 화제였다. 삼성전자가 노동조합의 위법한 쟁의 행위를 금지해 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대거 인용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채무자들(노조)은 쟁의 행위 기간 중 안전보호시설이 평상시(평일 또는 주말·휴일)와 동일한 정도의 인력, 가동 시간, 가동 규모, 주의의무로써 유지·운영되는 것을 정지·폐지 또는 방해하거나 소속 조합원들에게 그와 같은 행위를 하게 해선 안된다"고 밝혔다.
이어 "채권자(삼성전자)가 보안 작업으로 주장하는 작업시설 손상 방지 작업, 웨이퍼 변질 방지 작업 등이 쟁의 행위 전 평상시와 동일한 정도의 인력, 가동 시간, 가동 규모, 주의의무로써 수행되는 것을 방해하거나 소속 조합원들에게 그와 같은 행위를 하게 해선 안된다"고 했다.
초기업노조와 최승호 지부장이 시설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점거하는 행위와 시설에 잠금장치를 설치하거나 근로자의 출입을 방해하는 행위도 금지했다. 노조가 법원 결정을 위반하면 노조는 1일당 각 1억원씩을, 최 지부장과 우하경 전국삼성전자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은 1일당 각 1000만원씩을 삼성전자에 지급하도록 했다.
재판부는 다만 노조의 쟁의 행위에 참가를 호소하거나 설득하기 위해 협박을 사용하는 행위, 삼성전자 소속 근로자들과 임직원에 대한 방해 금지, 전국삼성노조 및 우 위원장 직무대행에 대한 시설 점거 금지 등에 대한 신청은 기각했다.
이번 가처분 신청 일부 인용은 사실상 삼성전자 측 주장을 대거 받아들인 결과라는 것이 법조계 중론이다. 법원 관계자는 "평시 수준을 유지하도록 한다는 취지는 평시와 동일한 수준의 인력을 가동하고, 업무를 방해해선 안 된다는 것"이라며 "사실상 쟁의 행위가 어렵다는 결정"이라고 밝혔다.
보통 법원은 파업 가처분의 경우 임박해서 결정을 내리곤 한다. 파업 이전까지 노사가 협의를 지속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삼성전자 노사가 오전 10시부터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와 2차 사후조정에 들어간 상태에서 가처분 결정이 나왔다.
법원 결정에도 노조 측은 쟁의 행위를 강행하겠다고 했고 법원 가처분 결정에 따라 파업을 벌이면 피해가 커질 것이란 예상도 나왔다. 다행히 파업 직전에 노사가 합의함으로써 이례적으로 빠른 가처분 결정이 소용이 없어졌지만 법원도 국가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는데에는 빠르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실제로 재판부는 가처분 결정을 내리면서 "반도체 제조공정은 24시간 연속운전을 전제로 설계된 것으로 일시적인 가동중단조차 수율 저하, 웨이퍼 손실, 설비 재가동 비용 등 막대한 직접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내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 등을 고려할 때 시설 손상 및 원료·제품의 변질 내지 부패로 인한 생산차질은 자동차·가전·정보통신 등 관련 산업의 생산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국내 산업 전반의 생산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는 사후적인 금전배상 등을 통해 회복될 수 없는 현저한 손해 내지 급박한 위험에 해당한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