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 수가 없다" 손으로 노 저어 탈북한 형제…北 "납치" 반발[뉴스속오늘]

김소영 기자
2026.06.11 05:33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2011년 6월11일 북한 주민 9명이 전마선을 타고 인천 강화군 서도면 말도리 해상으로 내려와 귀순 의사를 밝혔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연평도 어선 참고 사진. /사진=머니투데이DB

15년 전인 2011년 6월11일 오전 6시쯤, 북한 주민 9명이 전마선(소형선박)을 타고 서해 우도 인근 해상으로 내려왔다. 이들은 우리 군 함정이 다가가자 손을 흔들며 "쏘지 마라. 우린 넘어온 사람들"이라며 귀순 의사를 밝혔다.

성인 남자 3명과 성인 여자 2명, 어린이 4명으로 구성된 귀순자들은 황해남도 연안에 거주하던 형제의 가족으로, 두 가족이 손으로 노를 젓는 전마선 2척을 나눠 타고 남쪽으로 내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주민 9명의 귀순 소식은 나흘 만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자 북한 측은 이들 송환을 요구하는 전통문을 판문점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보내왔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주민들 자유의사에 따라 송환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사실상 거부했고, 9명은 거듭 귀순 의지를 내비친 끝에 한국에 정착하게 됐다.

국가정보원과 합동참모본부, 국군기무사령부(국군방첩사령부), 경찰 등으로 구성된 합동신문조가 9명을 상대로 월남 동기와 경로 등을 조사한 결과 이들은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계획적으로 탈북한 것으로 파악됐다.

탈북을 주도한 김영철씨는 추후 유튜브 채널에서 "북한에서 살기 위해 무슨 일이든 했는데 도저히 먹고 살 수 없어 형님 가족과 함께 한국에 왔다"며 "10년간 군 복무해 당증(조선노동당원증)을 얻은 처남도 데려왔다"고 밝혔다.

연평도 포격도발 1주기를 이틀 앞뒀던 2011년 11월21일 오전 인천 옹진군 연평도 망향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남도 강령군의 모습. /사진=뉴스1

실제 당시 북한은 김정일 후계자로 김정은을 공식화하는 과정에서 1·2차 핵실험을 강행해 국제사회 제재를 받고 있었다. 또 직전년도 연평도 사건 이후 우리 정부의 대북 제재(5.24 조치)에 따라 경제 사정이 여의찮은 상황이었다.

해외공관에 구걸할 만큼 만성적인 식량 부족 상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외부로부터 자금 유입까지 차단되자 식량난이 더 악화했고 북한 주민들은 당국의 서슬 퍼런 감시와 통제 아래에서도 목숨을 건 탈북을 감행했다.

앞서 그해 2월엔 북한 주민 31명(남 11명·여 20명)이 연평도 동북쪽 해상을 통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오기도 했다. 다만 당시 귀순 의사를 밝힌 4명(남2·여2)을 제외한 27명은 자유의사에 따라 3월27일 북측으로 돌아갔다.

당시 북한은 주민들의 남하가 "남측의 납치"라고 주장했고, 귀순 의사를 밝힌 4명에 대해서도 "남측 귀순 공작에 넘어간 것"이라며 "지금 그들 가족은 그들이 하루빨리 무사히 돌아오길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고 반발했다.

같은 해 10월엔 5t급 목선을 탄 북한 주민 21명이 인천 옹진군 대청도 인근으로 내려와 귀순 의사를 밝혔다. 일가족으로 구성된 이들은 조업하는 중국 어선 무리에 섞여 남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에도 소규모 선박을 이용해 탈북하는 이른바 '보트 피플' 사례는 1년에 한두 차례꼴로 이어졌다. 2023년 5월엔 황해남도에 거주하던 김이혁씨가 가족 8명과 함께 어선을 타고 NLL을 넘어 귀순하기도 했다.

김이혁씨는 이후 각종 방송 프로그램 출연과 외신 인터뷰를 통해 북한 정권 부조리와 김정은 체제 문제점을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섰지만 탈북 1년 6개월여 만에 잠수 사고로 사망해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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