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잠들고 푹 자고 싶어서 얼마 전 수면용 귀마개를 구입했는데, 효과가 있는 거 같아 만족스러워요."
예민하고 잠귀가 밝은 편이라 평소 불면에 시달려온 30대 임모씨는 요즘 '슬립맥싱'(Sleepmaxxing)에 푹 빠졌다.
슬립 맥싱이란 수면(Sleep)과 극대화(Max)를 합성한 신조어로, 수면의 질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다양한 루틴과 제품, 기기 등을 활용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뜻한다. 더 빨리 잠들고, 더 오래, 깊이 자기 위한 모든 노력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미국 등 전 세계 Z세대(1990년 중반부터 2010년 초반 사이 태어난 세대)를 중심으로 자신만의 숙면 루틴을 '슬립맥싱'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SNS(소셜미디어)에 공유하는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마그네슘 등 수면 관련 영양제 섭취 △코로 숨을 쉬도록 하는 입 테이핑 △좁은 비강을 넓히는 코 확장기 △냉감 침구 활용 △수면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 듣기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수면 추적 기기·귀마개 사용, 오전에만 커피 마시기, 방 어둡게 하기 등 수면 환경과 생활 습관을 바꾸는 방법도 있다.
미국 CBS도 "젊은 세대가 더 나은 수면을 위한 팁을 공유하고 있으며, 수백만 명이 이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슬립맥싱 열풍을 조명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현지 전문가들은 장시간 노동과 과도한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만성적인 수면 부족으로 '번아웃'이 사회적 현상이 되면서 '회복'을 중시하는 문화가 확산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수면재단이 지난 6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약 50%가 수면 부족을 겪고 있으며, 약 70%는 잠을 깊이 자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성인 5명 중 1명은 쉽게 잠들지 못하는 등 수면 장애를 경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매트리스 업체 '템퍼페딕'이 수집한 1억9000만 건 이상의 수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다.
번아웃과 만성 수면 부족 문제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20·30대 청년들에게 더 두드러진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청년 삶의 질 2025'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청년(만 19세~34세)의 32.2%가 번아웃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청년층의 피로감이 일상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또 국가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수면 장애로 진료받은 환자는 2020년 약 104만 명에서 2025년 약 130만 명으로 증가했다.
최근 이어지는 기록적인 폭염과 열대야도 숙면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 2일 경남 양산은 기상 관측 122년 만의 최고기온인 42.5도를 기록했고, 지난 4일엔 서울에 첫 폭염중대경보가 발효되는 등 불볕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극한 폭염과 더불어 전국 곳곳에서 열대야도 이어지면서 불면을 호소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이에 숙면을 돕는 제품을 찾는 소비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온라인 플랫폼 '지그재그'에 따르면 '숙면' 키워드 상품 거래액은 7월 한 달 기준 전년 동기 대비 약 4배 이상(346%) 증가했다. 마그네슘과 수면안대 거래액도 각각 약 2배(81%, 83%) 늘었다.
숙면에 관심이 많다는 30대 직장인 이모씨는 "최근 여름용 냉감 이불로 싹 바꿨다. 선풍기 소리 때문에 잘 때 귀마개를 끼거나 수면 ASMR을 듣는다. 스마트워치를 차고 자면 얼마나 깊게 잤는지 알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어 "오래 불면증에 시달린 아버지께 얼마 전 알약 형태의 멜라토닌을 사드렸는데, 제법 효과가 있다고 하셔서 뿌듯했다"고 덧붙였다.
슬립맥싱이 모두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일부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경우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화제가 된 '입 테이핑'은 코골이 유발, 불안·질식 유발 가능성 등으로 오히려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수면무호흡증·비염·불안 장애 환자에겐 더 위험하다.
수면 보조제로 알려진 멜라토닌은 주로 잠들기가 어렵거나 생체리듬이 깨진 경우 효과적이다. 교대 근무자나 시차 적응이 필요한 사람, 불규칙한 수면 패턴을 가진 사람에게 특히 유용하다고 한다.
마그네슘은 긴장을 완화하며 스트레스 신호와 근육 긴장을 낮춰 잠에서 쉽게 깨는 등 깊은 잠을 자지 못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다. 멜라토닌은 취침 30분~1시간 전에, 마그네슘은 취침 약 2시간 전에 복용하는 것이 권장된다.
그러나 슬립맥싱에 몰입해 지나치게 수면을 통제하기보다는 잠들기 좋은 환경과 생활 습관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정석훈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수면에 적당한 온도는 18~22도"라며 "여름철에 이 수준의 실내 온도를 유지하려 에어컨을 틀어두면 너무 추울 수 있다. 실내 온도는 24~26도로 유지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냉감 이불이나 가벼운 잠옷을 활용하는 것도 숙면에 도움이 된다.
다만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밤새 틀어 습도가 지나치게 떨어지면 호흡기가 건조해지고 감기에 취약해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정 교수는 "소음과 빛은 최소화해야 한다"며 "잠이 오지 않는 상태가 지속되면 차라리 잠자리에서 나와 컴컴한 거실 같은 곳에 앉아있으면서 조금이라도 잠이 올 때 다시 잠자리에 드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또 "뇌 속 생체 시계를 정상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일정한 시간에 기상하고 활동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하루 30분 정도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낮 시간을 활동적으로 보내는 것도 숙면에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늦은 저녁 시간 운동하거나 커피·녹차·콜라 등 카페인이 함유된 음료와 장시간의 영상 시청, 흡연은 각성을 유지해 수면을 방해한다"며 "술은 잠들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지만 수면 뇌파를 변화시켜 깊은 잠을 못 자게 한다"고 피할 것을 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