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계약 만료로 퇴거를 앞둔 장기전세 임차인들이 "우리도 피해자"라며 퇴거를 거부하고 있다. 임차인 단체 대표는 "20년 후 정부가 무언가 조치를 해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광훈 서울특별시 공공임대주택 임차인 권익증진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2일과 18일 두차례에 걸쳐 SBS '뉴스헌터스'에 출연해 "편하게 살았으니 계약 조건대로 나가야 하는 거 아니냐, 원론적으로 맞다. 그런데 우리도 피해자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2007년 입주할 당시 임차인들에게는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당시에 집 살 기회가 있음에도 다 포기하고 여기 들어왔다. 공공분양 아파트 받은 사람들은 수십억원대 자산가가 되지 않았냐. 우리는 똑같은 입장이었는데 지금 아파트값은 다시 태어나도 살 수 없을 정도로 올랐다"고 강조했다.
이어 "2007년에는 주택담보대출도 잘 되지 않았냐. 개인적으로 과감하지 못하고 배포가 없었던 것 같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아서 이자를 내는 게 좀 부담스러웠다"고 밝혔다.
'다음 세대에게 기회를 줘야 하지 않냐'는 질문에는 "초과 세수가 100조를 상향할 거라고 하지 않냐.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집을 사서 젊은이들에게 여유 있게 줘라. 초과 세수 중 일부분을 과감하게 투자하라고 제안한다"고 대답했다.
'20년간 저축할 기회가 있지 않았냐'는 물음에는 "소득이나 자산 한도가 있어 일정 소득이 넘어가면 퇴거해야 한다. 저희는 솔직히 좀 어리석게도 20년 후 정부가 뭔가 조치를 해줄 것이라는 아주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20년 살았는데 갑자기 쫓아내진 않겠지'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이 위원장은 또 "20년 만기 계약은 원칙적으로 지켜야 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계약이 애매하다. 공공임대주택 특별법령상 20년이라는 것은 임대사업자의 의무 기간이고, 20년 후는 정책 결정권자의 재량 사항이다. 문구상으로는 저희에게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계약 당시 20년 만기 내용을 몰랐냐'는 질문에는 "모르지는 않았다. 그런데 계약서상에 명기된 건 최근으로 알고 있다. 정책 결정권자가 또 다른 정책 시행을 위해 20년을 강조하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이어 "당시 오세훈 시장이 '주택은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고 강조하면서 시프트(장기전세)가 중산층의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할 거라고 했다. 서울시에서 우리가 '20년 계약'이라고 주장할 거라면, 우리가 계약을 이행할 수 있는 여건(집값 안정이라든가)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우리보다 선진화됐고 주택 문제로 인한 몸살을 먼저 겪은 서구의 공공임대는 대부분이 무기한 계약이다. 공동임대주택 비율도 총 주택수의 20~36% 정도로, 우리나라(8%)보다 월등히 높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기존 임차인들에게 무기한 계약을 해주고 정부에서 빨리 공공임대를 마련해 대기하고 있는 분들을 입주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20년 장기주택은 2~10년 단위로 이사를 하며 주거 불안을 겪는 서민들에게 중장기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시간을 주자는 취지로 설계됐다. 좋은 취지로 출발하긴 했지만, 중장기적으로 너무 안정되다 보니 오히려 안주하고 아예 주택 매수를 포기해버리는 부작용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불가피하게 병에 걸리고 사고가 터질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와중에도 어떻게든 살아남은 거다. 장기전세 입주민들은 주거가 안정됐기에 그 돈으로 다른 데 먼저 쓸 수 있었다"면서 "내가 계속 여기 있게 되면 새롭게 들어올 수 있는 사람들이 못 들어오지 않나. 임차인들도 그런 측면에서 봐야 한다. 정부가 5000만 국민 주거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장기전세주택은 무주택 시민이 주변 시세의 80% 이하 수준인 보증금을 내고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해 최장 20년간 거주를 보장하는 서울시의 공공주택 제도다. 지금까지 총 3만7000여 가구가 공급됐으며, 내년부터 최장 거주 기간이 끝나기 시작해 앞으로 5년간 9500여 가구가 만기를 맞는다. 현재까지 서울시는 계약 연장은 어렵다는 입장으로, 계약이 끝난 주택은 신혼부부 등에 공급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