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교육계 '학력 올림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 2025 결과가 발표됐다. 성적표는 올해도 눈부시다. 대한민국 만 15세 학생들은 OECD 38개국 중 수학 1~2위, 과학 1~3위, 읽기 1~9위를 휩쓸며 최상위권을 지켜냈다. 처음 도입된 '디지털 세계에서의 학습'에서도 2~5위에 올랐다. 비회원국 53개국을 포함해도 선두권을 놓치지 않았다. 부모의 배경이 학력에 미치는 영향도 작은 것으로 나타나 교육의 '공정성'과 '포용성' 지표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화려한 순위 이면에는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가장 어두운 그림자는 문해력의 추락이다. 한국 학생들의 읽기 평균 점수는 2022년 515점에서 501점으로 14점 급락했다. 상위수준(5수준 이상) 학생 비율은 13.3%에서 10.3%로 줄었다. 영상과 쇼츠, 파편화된 디지털 정보에 둘러싸여 호흡이 긴 글을 읽으며 사유하는 능력이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환경이 부른 문해력의 약화는 비단 우리 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가 함께 마주한 도전이기도 하다.
지금은 읽는 능력의 가치가 귀해진 시대다. 그래서 문해력 하락이 더 뼈아프다. 인류가 축적한 지식을 집대성한 AI(인공지능)가 일상화되면서 경쟁력의 축은 지식을 머릿속에 저장하는 능력에서, 외화된 지능인 AI로부터 지식을 끄집어내는 질문 능력으로 옮겨 갔다. 이제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상은 명확한 질문과 지시(프롬프트)로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는 호모 프롬프투스(Homo Promptus)다. AI라는 방대한 지식의 보고를 여는 질문은 오직 깊이 읽고 오래 숙고한 사람만이 던질 수 있다. 문해력이 무너진다는 것은 시험 점수의 하락에 그치지 않고, 질문의 원천이 마르고 있다는 위험 신호다.
수학에서 감지된 양극화 현상도 가볍지 않다. 상위수준 학생이 22.9%에서 23.2%로 소폭 늘어나는 사이 하위수준 학생은 16.2%에서 18.6%로 늘었다. 특히 여학생의 하위수준 비율이 14.6%에서 18.3%로 크게 늘었다. 중간층이 얇아지고 '수포자'에 해당하는 하위수준이 두터워지는 현상이 객관적 지표로 확인된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지점은 수학 영역별 불균형이다. 한국 학생들은 '공간과 모양', '변화와 관계'에서는 강세를 보였으나, 확률과 통계를 다루는 '불확실성과 자료'에서는 약세를 드러냈다. 수업이 실생활 맥락과 유리된 공식 암기와 정형화된 계산에 머물다 보니, 데이터를 수집하고 해석하며 그 속에 내재된 변이성(variability)을 다루는 경험이 부족한 탓이다.
이런 편향은 '디지털 세계에서의 학습'에서도 되풀이된다. 우리 학생들은 알고리즘을 짜고 코드를 조합하는 '프로그래밍'에서는 높은 기량을 보였지만, 변인 간 관계를 파악해 시스템의 변화를 예측하는 '모델링'에서는 상대적으로 약했다. 기능을 익히는 교육을 넘어 현상의 구조를 발견하고 설명하는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PISA 2025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AI가 답을 쏟아내는 시대에 필요한 역량은 정답을 빠르고 정확하게 맞히는 기술이 아니다. 맥락을 꿰뚫는 문해력, 쏟아지는 데이터와 답 속에서 불확실성을 읽어내는 통계적 소양, 그리고 복잡한 상황을 구조화해 본질적인 질문을 만들어내는 힘이다. 더 좋은 질문을 던지려면 읽고, 생각하고, 의심하고, 연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정답을 맞히는 데 최적화된 교실을 질문하고 사유하는 교실로 바꾸어야 하는 이유다. PISA에서 지켜야 할 것은 순위가 아니라 그 순위를 가능하게 했던 우리 학생들의 생각하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