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익지도 않은 벼가 있는 논을 미리 사는 것을 일컫는 한자 성어가 있다. '입도선매(立稻先買)'. 미래의 수확을 기대하며 미리 투자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장기적 안목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검증되지 않은 미래에 돈을 거는 위험한 선택이기도 하다.
스포츠 방송 중계권 시장은 이 입도선매의 전형적인 사례다. 올림픽이나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 같은 메가 이벤트는 대회 개최 7~8년, 빠르면 10여 년 전부터 미래 거래가 이뤄진다. 미래의 정치·경제 상황, 스타 선수의 부상 여부, 국가대표팀의 성적, 시청 환경 변화 등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지만 방송사들은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막대한 금액을 지불한다. 성공하면 큰 이익을 얻지만 실패하면 치명적인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프랑스 방송사 TF1의 선택은 그 위험성을 보여준다. TF1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자국 대표팀이 우승한 기억을 믿고 막대한 금액을 투자했다. 그러나 대회 직전 '간판스타' 지네딘 지단의 부상과 함께 프랑스 대표팀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면서, 결승까지 예상했던 자국 대표팀의 월드컵을 단 세 경기만 중계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결과적으로 TF1은 약 1800만 유로(약 303억원)의 막대한 손실을 입으며 도산 위기까지 몰렸다. 선수 부상이라는 예기치 못한 변수와 함께 미래를 낙관적으로 예측한 데 따른 뼈아픈 대가였다.
반대로 예상치 못한 행운도 있다. 지난 2013년 한국의 '피겨 여왕' 김연아가 부상 복귀전을 치르기 위해 선택한 대회는 국제빙상연맹(ISU) 공식 대회가 아닌 크로아티아에서 열린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라는 작은 국제대회였다. 원래라면 중계권 가격이 1만 달러(약 1429만원) 남짓한 대회인데, '김연아'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졌다. 한국 방송사들이 경쟁에 뛰어들었고 가격은 20배 넘게 치솟았다. 한 크로아티아 방송 관계자는 "한국 덕분에 뜻밖의 수익을 올렸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처럼 스포츠 중계권의 가치는 경기력뿐 아니라 스타성, 서사, 그리고 사회적 관심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요소에 크게 좌우된다.
최근 국내 상황 역시 이러한 입도선매의 위험성을 다시 보여준다. JTBC는 이번 달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을 독점 중계했지만, 지상파 방송의 중계 불참 속에 시청 접근성을 제한하고 스포츠의 사회적 공유를 약화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흥행에도 실패했고 수익도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오는 6월 개막하는 북중미 월드컵이 또 다른 시험대가 되고 있다.
문제는 가격이다. 공식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JTBC는 이번 월드컵에 중계권료와 제작비를 포함해 최소 2000억 원 이상을 투자했을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에 온라인 중계권을 판매했지만, 현재 한국 광고 시장 규모를 고려하면 수익 구조가 결코 쉽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한국 대표팀의 성적이 8강 또는 4강 이상이라는 '흥행 시나리오'가 현실화하지 않는다면 투자 회수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JTBC는 손실을 줄이기 위해 지상파 3사와 재판매 협상을 진행하고 있지만 난항을 겪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 역시 고민이 크다. 국민적 관심이 높은 월드컵을 중계하는 것은 공익적 의미가 크지만, 수백억 원의 막대한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참여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지에 대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정부와 규제 기관이 보편적 시청권을 강조하며 참여를 유도하고 있지만, 시장 논리를 무시한 강제적 참여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결국 지금의 상황은 입도선매가 가져온 후폭풍이다. JTBC가 미래를 낙관하며 높은 가격을 지불했지만, 그 위험을 시장 전체가 나눠 떠안기에는 구조적으로 무리가 있다. 독점 중계로는 스포츠 축제의 열기를 만들기 어렵고, 그렇다고 다른 방송사에게 손실을 감수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중계권 비즈니스는 결국 균형의 문제다. 적정 가격, 리스크 관리, 그리고 협력 구조가 함께 맞물려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가 이기고 지느냐가 아니라, 스포츠의 공익성과 방송 산업의 현실 사이에서 현명한 해법을 찾는 일이다. 밀라노 동계올림픽에서 드러난 시행 착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방송사와 정부, 유관기관 모두가 냉정하면서도 유연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안타깝다. 이번에도 또 팬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미래를 미리 사는 일, 그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다만 그 미래가 누구에게 부담이 되고, 누구에게 기회가 되는지를 끝까지 계산하는 것이 진짜 투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