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인연이 참 신기해요. '너 나랑 이렇게 만날 줄 몰랐지?'하고 물어보니 웃더라고요."
얼마 전 KT 위즈 이강철(60) 감독이 문득 지난해 일을 떠올리며 한 말이다.
지난해 상대 팀인데도 꼬박꼬박 KT 더그아웃을 방문해 이강철 감독을 미소 짓게 한 기특한 외국인 투수가 있었다. KT 구단 관계자도 "확실히 매번 찾아와 인사하고 가는 외국인 선수는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연은 인연"이라고 떠올릴 정도. 그로부터 몇 개월 뒤 그 투수는 케일럽 보쉴리(33)의 부상 대체 선수로 6주 계약을 맺고 KT로 왔다. 지난해 NC 다이노스에서 활약했던 로건 앨런(29)이었다.
지난해 로건은 NC 소속으로 32경기 7승 12패 평균자책점 4.53, 173이닝 149탈삼진으로 평범한 성적을 남기고 재계약에 실패했다. 하지만 LA 다저스를 거쳐 KBO 리그에 다시 돌아왔을 땐 달라져 있었다. 꾸준히 시속 147~148㎞의 묵직한 직구를 던지면서 단숨에 KT 마운드에 안정을 가져왔다.
16일 잠실 LG 트윈스전도 마찬가지였다. 로건은 까다로운 LG 타자를 상대로 5이닝 5피안타(1피홈런) 1볼넷 7탈삼진 1실점으로 버텨내며 시즌 첫 승을 거뒀다. NC 시절인 2025년 9월 29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 이후 290일 만의 KBO 리그 승리였다. 수비 실책과 빗맞은 타구에 위기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삼진을 잡아내며 4전 5기 끝에 첫 승을 따냈다.
경기 후 이강철 감독은 "투구 수는 많았지만, 좋은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하며 자기 역할을 다했다"고 칭찬했다. 로건 역시 "팀 승리에 도움 돼 기쁘다. 내가 나갔을 때 이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공을 던졌는데 야수와 불펜이 공·수에서 잘 도와줬다. 상대가 리그 최고의 팀인 LG였는데 좋은 모습으로 내려올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로써 로건의 성적은 5경기 1승 1패 평균자책점 3.33, 27이닝 20탈삼진. 여느 1선발 못지않은 성적이다. 상대 팀 사령탑들의 눈에도 그 변화가 보였다. 경기 전 이강철 감독은 "구속이 지난해보다 6~7㎞ 올랐다고 하더라. 몸무게도 10㎏ 이상 빠졌고 팔 각도도 많이 올라갔다. 다저스 트리플A에서 많이 배웠다고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스타전 때도 다른 팀 감독들이 로건 왜 이렇게 달라졌냐고 그러더라. 예전에는 직구 평균 구속이 시속 145㎞ 정도밖에 안 나왔는데, 지금은 평균 147~148㎞가 나오니까. 마인드도 좋아졌고 이야기해보니 여기서 계속 뛰고 싶어 한다"고 미소 지었다.
그렇게 되면서 KT도 고민에 빠졌다. 로건의 계약이 오는 7월 21일까지다. 그런데 기존 외인 보쉴리의 복귀가 불투명하다. 보쉴리는 올해 처음 KBO 리그 무대를 밟았음에도 11경기 7승 3패 평균자책점 3.16, 62⅔이닝 56탈삼진으로 에이스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난달 2일 불펜 피칭 도중 오른쪽 어깨에 통증을 느끼면서 아직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날 승리로 4연승을 질주한 KT는 48승 1무 35패로 1위 삼성을 3.5경기, 2위 LG를 2.5경기 차로 추격하는 3위가 됐다. 가을야구가 유력한 가운데, 포스트시즌에 쓸 수 있는 외국인 선수 등록일은 8월 15일이다. 더욱이 KT는 9월 약 3주간 열릴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 소형준(25), 오원석(25), 박영현(23) 등 투수들만 차출돼 마운드 공백이 크게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강철 감독은 로건의 거취에 "내일모레쯤 결정 날 것 같다. 로건이 오늘(16일) 던지고 21일이 마지막일 텐데 정리가 필요하다. 들리는 말로는 공백 없이 바로 쓸 수 있어 (로건을) 노리는 팀이 많다고 한다"고 고민을 드러냈다.
계약 연장을 위한 마지막 모의고사마저 성공적으로 치른 로건은 다시 한 번 KT 잔류에 대한 의지를 나타냈다. 로건은 "아직 계약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하지만 기간 내 마지막 등판에서 이겼고 KT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KT는 높은 수준의 팀이고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팀원과 가족들도 내가 잘 적응하고 집중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준다. 지난해보다 컨디션도 좋기 때문에 직구 스피드도 올라간 것 같다. 계속 몸 관리 잘해서 지금 컨디션 유지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