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 또 나와도 상관없어요. 저는 이길 자신이 있습니다."
최근 팀 간 활발한 FA 이동으로 흥미를 더한 KT 위즈와 한화 이글스 맞대결에 또 하나의 볼거리가 자리 잡았다. 유신고 삼형제 중 맏형 박정현(25·한화)과 박영현(23·KT)의 매치업 덕분이다.
두 사람은 지난달 31일과 8월 1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이틀 연속 맞붙었다. 한화가 경기 막판 박정현을 대타로 내보내고, KT 마무리 박영현이 형을 상대하는 장면이 연이어 만들어졌다.
지난달 31일에는 동생이 웃었다. KT가 5-3으로 앞선 9회초 2사 1루에서 한화가 박정현을 대타로 내보냈다. 박영현의 변화구는 연거푸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났고 볼카운트는 2B1S가 됐다. 폭투로 1루 주자가 2루까지 진루했다. 그러나 박정현의 타구가 우익수 뜬공으로 잡히면서 승부는 동생의 승리로 끝났다. 세이브를 확정한 박영현의 입가에는 미소가 맴돌았다.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박영현은 "무조건 (박)정현이 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도윤 형에게 안타를 맞지 않았다면 나오지 않았을 것 같다. 정현이 형이 저번 맞대결에서 나를 상대로 잘 쳤기 때문에 대타로 내신 것 같다"고 돌아봤다.
이어 "무조건 잡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어떤 상황이 만들어질지는 몰랐지만, 저번은 저번이고 오늘(7월 31일)은 오늘이었다"며 "경기 전에 형에게 '이제 절대 안 맞겠다'고도 했다. 막고 나서는 '이겼다. 드디어 이겼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속 웃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루 뒤인 1일에도 형제가 다시 만났다. KT가 7-4로 앞선 9회초 2사에서 한화가 또 박정현을 대타로 내보냈다. 이번에는 어느 쪽의 승리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결과가 나왔다. 박정현이 바깥쪽 슬라이더를 건드려 땅볼을 만들었고, 유격수 장준원이 타구를 한 번에 처리하지 못하면서 출루가 이뤄졌다. 뒤이어 이진영의 중전 안타까지 나오며 1, 2루가 됐지만, 박영현은 한지윤을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2경기 연속 세이브를 올렸다.
최근 맞대결이 더욱 주목받은 데는 한 달 전 형이 동생에게 안긴 강렬한 한 방이 있었다. 지난달 1일 대전 KT전에서 박정현은 박영현의 시속 148㎞ 직구를 통타해 비거리 130m의 중월 솔로 홈런으로 연결했다. KBO 리그 형제 투·타 맞대결에서 나온 역대 최초의 홈런이었다. 형에게 리그 최초 기록의 주인공이 되는 굴욕을 당했던 박영현으로서는 한 달 만에 찾아온 설욕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최근 KBO 리그에서 서서히 주목받고 있는 형제 야구인이다. 형제의 프로 무대 도전은 첫째 박정현부터 시작됐다. 박정현은 2020 KBO 신인드래프트 2차 8라운드 전체 78순위로 한화에 입단했다. 2년 뒤인 2022년에는 박영현이 KT의 1차 지명을 받았고, 막내 박지현(17)은 내년 신인드래프트를 목표로 하고 있다.
형제간 첫 맞대결은 2022년 5월 27일이었다. KBO 리그 역대 네 번째 형제 투·타 맞대결이었다. 첫 승부에서는 동생이 웃었다. 박영현이 시속 142㎞ 직구로 박정현을 헛스윙 삼진 처리했다. 두 번째 맞대결에서는 형이 빚을 갚았다. 같은 해 8월 5일 수원 경기에서 KT가 5-0으로 앞선 9회초 2사 2루, 박정현이 박영현의 커터를 공략해 좌전 1타점 적시타를 쳤다. 한화의 영봉패를 막는 안타이기도 했다.
이후 한동안 두 사람의 맞대결은 보기 어려웠다. 동생 박영현이 국가대표 마무리 투수로 성장하는 동안 박정현은 1군에서 확실한 자리를 잡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박정현은 국군체육부대(상무)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상무에서 보낸 마지막 시즌 16홈런을 기록했고, 퓨처스리그에서 3년 연속 3할 타율을 올리며 장타력을 갖춘 차세대 내야수로 다시 기대를 받았다. 올해 차츰 1군 출전 기회를 얻으면서 자연스럽게 형제의 맞대결도 다시 시작됐다.
초·중·고교를 함께 다니며 벌써 20년 가까이 함께한 형제다. 서로의 강점과 약점은 물론이고 승부 성향까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면서도 프로 무대에서의 맞대결에서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박영현은 "(박)정현이 형이 직구 타이밍이 워낙 좋다. 직구를 파울로 만든 타구도 있었는데, 조금만 잘못 던졌다면 홈런이 됐을 것 같다. 정말 타이밍이 좋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실 (7월 31일 경기에서도) 볼카운트 2B1S에서 포수는 직구 사인을 냈는데, 내가 슬라이더를 던지겠다고 했다"라며 "만약 직구를 던졌다면 또 안타를 맞았을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서로에게만큼은 절대 지고 싶지 않은 형제의 승부욕이 두 사람의 맞대결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이제는 그라운드 밖에서도 수 싸움이 이어질 예정이다. 박영현은 "앞으로는 형에게 심리전을 걸어야 할 것 같다. 평소 전화할 때나 사적인 자리에서도 심리전을 걸 생각"이라며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을 때도 계속 놀릴 것"이라고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