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여의도와 최순실

송선옥 기자
2016.12.06 14:29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최순실씨가 이곳저곳 개입한 곳이 많은데 주식시장에서는 왜 그 흔적이 발견되지 않을까요?”

얼마 전 한 모임에서 또 다시 최순실씨 얘기가 나왔다. 이날의 주제는 ‘왜 최씨는 증권가에 출몰하지 않았는가’로 흘러갔다. 대통령 연설문부터 재계 교육 문화 등 여러 곳에 손을 댄 정황이 포착된 최씨다. 그에 비해 증권가는 조용한 편이다. 이유가 뭘까. 여러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한 애널리스트의 추측이 눈길을 끌었다.

가설이지만 그의 분석은 이렇다. 주식시장에서 한방을 노리던 최씨. 그러나 어느날 주가조작 작전주에 휘말리면서 투자한 돈을 모두 잃고 만다. 그 다음부터는 증권하면 사기꾼이 난무하는, 시장 잡배들이 가득한 곳으로 인식하게 되고 주식시장에 발을 끊는다.

그가 이런 분석을 내놓은 데에는 2013년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여의도에 대대적인 사정 바람이 불었던 것과 맞물린다. 당시 정부는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 근절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전문수사팀인 증권범죄합수단을 조직하고 엄정한 수사잣대를 들이댔다.CJ E&M실적정보 유출사건, 증권사의 블록딜 비리 적발 등이 증권범죄합수단이 이뤄낸 성과다.

합수단이 컴플라이언스(내부통제),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과 관련한 감시, 감독을 강화하는 등 제도적 변화를 이끌어냈지만 초반에는 증권가 일각에서 과하다는 지적이 나왔던 것도 사실이다. 저성장 국면에서 시장 활성화를 위해 주식붐을 일으켜야 하는데 오히려 과도한 조치가 시장을 위축시킨다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필자가 만났던 증권맨 중엔 주식시장이 ‘자본주의 꽃’이건만 증권가에 근무하는 이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모는 현실에 자괴감을 느낀다는 이도 적지 않았다.

과거 이야기를 굳이 꺼내는 이유는 주식시장에 대한 최씨의 인식이 고스런히 박근혜 정부 초기의 프레임에 얹혀졌지 않았을까 하는 소설 같은 추측에서다. 작전주에 휘말려 돈을 잃은 최씨가 주식시장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됐고 이러한 인식이 박 대통령에게 전이돼 정권초 여의도 접수에 나섰다는 것이다.

모임은 사실에 따른 결론보다는 추측에 기반한 쓴웃음으로 끝났지만 입맛이 쓰다. 소설보다 더한 현실이 펼쳐지니 한바탕의 농을 곧이 곧대로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대한민국이 청와대 100m 앞에서 멈췄다. 가족들과, 친구들과 나누던 소박한 일상의 행복이 멈춰섰다. 2016년이 한달도 채 넘지 않았지만 올해를 보내는 아쉬움, 내년에 대한 희망과 기대보다는 분노와 좌절감이 차고 넘친다. 애널리스트의 분석이 단지 허무맹랑한 상상이기를 바랄 뿐이다.

허전했는지 며칠 전 읽은 시 한 구절이 자꾸 가슴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일상의 행복이 하루 빨리 다시 찾아 오기를 기대해 본다.

새는 울고 꽃은 핀다.

중요한 건 그것밖에 없다.

(정현종 시집 ‘나는 별아저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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