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정치인이 아닌 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하면서 유명해진 책이 있다. 세계적인 경영학자 짐 콜린스가 쓴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 얘기다. 당시 안 전 대표는 '어려울 때 해야 할 일'을 언급하면서 이 책에 나온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를 인용했다. 제임스 스톡데일은 베트남 전쟁 때 하노이 포로수용소에 8년간 수감됐던 미국의 최고위 장교였다. 곧 풀려날 것이라고 낙관만하던 포로들은 상실감에 먼저 죽고, 전쟁이 끝날 것이란 희망을 품되 냉철한 현실 인식으로 더 큰 위험에 대비하던 포로들은 수용소에서 나갈 때까지 살아남았다는 그의 경험담에서 나온 말이 '스톡데일 패러독스'다. 이를 두고 콜린스는 좋은 기업을 넘어선 위대한 기업의 특징을 '스톡데일 패러독스'로 요약했다. 궁극적으론 성공할 것이란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눈앞의 냉혹한 현실을 직시한 기업만이 위대한 기업으로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포로수용소에 갇힌 '스톡데일'의 상황은 위기와 기회가 상존하는 국내 자산운용업계가 처한 현실과도 맞닿아있다. 올 들어 자산운용업계는 대내외적인 불확실성 확대로 증시 변동성이 커지면서 전반적으로 펀드의 성과가 부진한 힘든 한해를 보냈다. 매년 혜성처럼 등장해 투자자들의 자금이 쏠렸던 스타 펀드도 나오지 않았고 수익률 1%를 끌어올리기 위한 펀드매니저들의 악전고투도 눈물겨웠다. 그러다보니 연초이후 시작된 투자자들의 환매 행진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실제로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빠져 나간 자금이 7조원을 넘어섰다. 업계 안팎에서 '펀드의 위기'라는 우려감이 고조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반면 시장의 잠재력도 여전하다. 금융투자협회 내부 자료에 따르면 고령화에 따른 연금자산 증가 등으로 자산운용시장은 매년 10%씩 성장하면서 현재 900조원 안팎인 운용자산이 2030년에 4300조원으로 급증할 것이란 전망이다. 금융산업 내 유일한 성장산업으로 자산운용업계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기회를 위기로 만드는 것은 온전히 자산운용사들의 몫이다.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희망의 역설'이 주는 교훈을 떠올려야 할 시점인 것이다. 시장이 커질 것이란 낙관론에 기대 현실에 안주하는 자산운용사들은 당연히 위대한 기업이 될 가능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이와 달리 성공에 대한 확신은 갖되 눈앞에 놓인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새로운 성장의 유전자(DNA)를 찾아 치열하게 고민하는 자산운용사만이 '4300조원'이 가져다줄 달콤한 과실을 따먹을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안 전 대표는 최근 콜린스의 또다른 저서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를 인용해 기업의 흥망성쇠 과정을 5단계로 설명했다. 첫 단계는 성공으로 자만심이 생기는 단계, 두번째는 원칙이 없이 더 많은 욕심을 내는 단계, 세번째는 위험과 위기 가능성을 부정하는 시기로 외부 지표는 사상 최대로 좋은 내부적 모순이 쌓여가는 단계, 네번째는 바깥에서 보기에도 추락하는 단계, 다섯번째가 망하는 단계다.
이제부턴 어느 단계에 와있는지 냉정하게 진단해보고 어떻게 가야할지 방향을 정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