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 이사장은 명예보다 책임이 막대한 자리다. '자본시장 수장'이라는 타이틀이 붙지만, 사실 이면에는 밤낮없는 전투를 치러야 하는 야전 사령관 역할을 할 때가 대부분이다. 시장이 혼란스러울 때도 어렵지만, 최근처럼 호황일 때는 난이도가 더 올라간다.
주가급등과 거래량 폭증이 겹치는 과정에서 거래체결 시스템 과부하 문제부터 투자자 보호와 제도개선까지 처리해야할 업무가 산더미같이 늘어난다. 과열된 시장을 연착륙시킬 방안을 요구받고 쇄도하는 기업공개(IPO) 신청과 함께 상장폐지 기준도 들여다봐야 한다.
특히 이번에는 코로나19(COVID-19)라는 변수까지 겹쳤다. 대면회의는 물론 방역을 위해 교대 근무 시스템까지 돌릴 정도로 어려움이 컸는데, 주식 양도차익 과세부터 국민청원에 올라간 공매도 이슈같은 뜨거운 감자 무더기까지 더해졌다.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지난해 12월 취임하면서 맞은 상황이었다.
손 이사장은 "금융투자업계 종사자들이 꼽은 최고의 자본시장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으며 등판했으나, 현안이 워낙 많았던 터라 업무파악에 시간이 다소 걸릴 수 있다는 걱정도 나왔다. 그러나 역시는 역시였다.
취임 6개월 만에 공매도를 비롯한 각종 현안을 매끄럽게 풀어내는 모습으로 준비된 이사장의 면모를 보였다. 여기에 급증한 개인투자자를 위한 제도개선과 ESG(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 국내증시 상장 메리트 강화와 공모주까지 다양한 이슈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올해 안에 스몰캡(중소형주) 투자정보를 제공하는 전문 리서치센터와 ESG 정보 공유 플랫폼을 개설할 계획이다. 개인투자자들의 '묻지마 투자'를 막고 건전한 투자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취지다. 국내 증권사 보고서 80% 이상이 시가총액 5000억원 이상 대형주에 쏠려있다. 소형주 보고서가 없으니 뜬 소문이나 리딩방에 의존하는 투자자들이 많은 실정이다. EGS지수 밑 작업도 진행중이다.
지난 4일 한국거래소 서울사옥에서 손 이사장을 만나 근황을 들어봤다.
-증시 개인 투자자 비중이 크게 늘었다.
▶테마주를 쫓는 등 단타 위주였던 예전과 달리 건전한 투자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다만 개인 투자자들은 아직 조급함이 있는데 그럼 기대한 만큼 성과를 내기 어렵다. 장기투자 경향이 생긴 것은 바람직하지만 빚을 내서 투자하는 방식은 시장을 이기기 어렵다.
-개인 투자자들이 공모주 청약에서 차별받고 있다는 불만도 있는데.
▶개인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이 상승장에서는 좋지만 하락장에서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제도를 일관성 있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때마다 손질할 경우 번거롭고 왜곡이 생길 수도 있다. 어느 정도 절충이 필요할 것 같다.
-개인투자자 교육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 있다면.
▶스몰캡 전문 리서치센터를 만들고 있다. 보통 개인투자자들이 더 많이 관심을 갖는 중·소형주를 다룬 보고서는 별로 없다. 공익 차원에서 한국증권금융, 한국예탁결제원 등 유관기관과 협의하려고 한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정보 공유 플랫폼(ESG 포털)도 만들 계획이다. 상장기업의 ESG 정보공개를 원활하게 뒷받침하기 위한 방법이다. 투자자들은 ESG와 관련된 각종 보고서와 정보를 통해 투자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둘 다 올해 안으로 출범할 계획이다.
-ESG 지수 개발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ESG와 투자 성과를 연동한 지표를 만들어보려고 한다. 우선 환경 쪽에서 배출권, 기후변화와 관련된 지수 3개 정도를 내려고 한다.
사회 쪽에서는 여성 인력의 사회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성평등지수, 즉 위민지수(women)를 개발하고 있다. 임원 비율, 임금수준, 신규 채용 비율 등 다양한 요소를 평가하기 위해 국내외 ESG 평가기관과 협업하고 있다.
-ESG 활성화를 위한 정보공개 속도가 느리다는 지적도 있다.
▶ESG 정보공개 초기 단계에서 상장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과 위험도 고려해야 한다. 외국에는 지속가능보고서 공시가 의무가 아니더라도 잘 운영되는 곳도 많다. 우선 자율적으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이후 의무공시로 전환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공매도 부분 재개 후 한 달을 돌아본다면.
▶다소 우려가 과했던 것 같다. 공매도 재개 이후 주가지수를 비롯해 시장 지표는 정상 범위에 움직였다. 공매도 규모는 하루 평균 거래대금의 2.8% 수준이었다. 공매도로 인한 이상징후가 발견되지 않아 공매도가 원활하게 안착한 것으로 생각한다.
개인투자자들의 우려가 상당하다는 점도 느꼈다. 정치권에서 너무 민감하게 반응해서 당혹스럽기도 했다. 제도는 차가운 머리로 설계해야 하는데, 다들 머리와 가슴이 모두 뜨거워 문제였다. 어느 정도 억울한 것은 이해하지만 정책 결정은 냉철하게 이뤄져야 한다.
-공매도는 언제쯤 완전 재개되는 것이 바람직할까.
▶앞으로 상황을 봐서 공매도를 정상화한다고 하지만 의사 결정이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이미 정상화됐다고 볼 수도 있고, 아직은 부족하다고 볼 수도 있다.
정책당국의 큰 목표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면 부분 재개 상태로 계속 갈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금융중심지인 홍콩도 그렇게 가고 있다.
-국내 기업의 해외 상장 사례가 늘고 있다.
▶우선 집토끼를 잘 잡으려고 한다. 쿠팡의 미국 상장 사례는 우리 IPO(기업공개) 시장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특히 유니콘 기업 상장 시에는 기업 가치를 얼마나 잘 평가받는지가 가장 중요한 고려 요인이다. 최근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돌파하는 등 한국 증시의 밸류에이션이 개선되는 추세다.
쿠팡 주가는 한때 100% 이상 상승했지만 현재 공모가 수준에 머물고 있다. 미국에 상장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주가가 많이 빠질 경우 팔로업 투자를 받기 어려워 후회할 수도 있다.
크래프톤이나 카카오 계열 기업도 속속 국내 상장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상장 가능성이 높은 유니콘 기업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여는 등 적극적으로 상장 유치에 나설 계획이다.
-코스닥 설립 25년 만에 상장사 1500곳 시대를 맞았다. 앞으로 시장운영 방향은.
▶당초 취지를 살려서 기술 위주의 혁신 기업이 모이는 시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코스피 이전 상장을 생각하지 않도록 인센티브를 줘야 하는데 마땅치 않다는 게 고민이다.
코스닥 대표종목이 남을 수 있도록 내부에서 구역을 나눠 대접을 달리하자는 아이디어도 있다. 이미지에 따라 반감이 생길 수 있어 조심스럽지만 그쪽 방향이 맞다고 생각한다.
-액티브 ETF(상장지수펀드)를 향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크다.
▶공모펀드 시장이 축소되고 직접 투자가 늘어나는 환경에서 액티브 ETF가 대안이 될 수 있다.
현재 주식형 액티브 ETF는 11종목이 상장돼 있다. 올해 하반기 중 ETF 운용 성과와 업계 의견을 수렴해 상관 계수(0.7이상) 기준 변경을 검토할 예정이다. PDF(납입자산구성내역) 지연 공개제도 도입 역시 논의한다. 또 상장 심사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불만도 있어 상장 절차를 완화하고 있다.
-국내 비트코인 ETF 출시 가능성은
▶가상자산이 제도권에 편입되고 투자자 보호 장치가 충분히 마련된 이후 관련 상품 출시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내에서는 아직 규제받지 않는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고, 변동성도 높아 ETF 출시를 고려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한국거래소가 기업에 대해서는 성장성 등을 판단해 상장을 결정할 수 있지만, 코인에는 전문성이 없다. 투자자들에게 안심하고 투자해도 된다고 말할 수 없다는 얘기다. 금융과 비금융 사이의 애매한 경계선에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코인이 가치가 인정되는 투자자산이라고 도장을 찍어주는 역할은 할 수 없다.
-2017~2018년 코인 열풍 때와 달라진 점은.
▶3년 동안 정부 스탠스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정치 특성상 법안을 논의할 때 주로 피해자 보호 중심의 논의가 이뤄진다. 결국 기술 발전보다는 규제와 관련된 법안이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 법체계는 영미법과 달리 모든 것을 법안에 담고 싶어한다. 만일의 상황에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할지 미리 하나하나 대비하다 보니 결국 일반화가 되고 규제도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