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넘어간 아프간 소년이 시총 15조원 CEO되자 한 일

반준환 기자
2026.03.08 13:55

[반준환의 미국 스몰캡⑭ ]에어로바이런먼트(AVAV) CEO 와히드 나와비(4/5)

[편집자주] 숫자 뒤 스토리를 읽어야 진짜 투자가 보입니다. 한국주식도 미국 스몰캡 생태계를 알면 α를 낼 수 있습니다. 기술의 언어를 투자의 언어로 풀어내는 전문기자와 글로벌 특화분석 원리서치의 투자 나침반으로 여러분을 안내하겠습니다. 반보(半步)만 앞서면 남들이 모르는 길이 보일겁니다. 난해한 기술주 투자, 이제 쉽고 재미있게 즐겨보세요.
에어로바이런먼트의 드론/사진=에어로바이런먼트 홈페이지

지난 2022년 러시아는 카멀라 해리스 당시 미국 부통령,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와 함께 와히드 나와비 에어로바이런먼트 CEO를 입국 금지 제재 명단에 올렸다.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에어로바이런먼트의 스위치블레이드가 주목받던 시기와 맞물린 조치였다. 러시아가 소셜미디어 황제, 미국 부통령과 나란히 나와비를 리스트에 올린 이유는 하나다.

아바브의 전투드론이 우크라이나 전장에 배치, 러시아 전차를 무차별 파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는 나와비가 과거 러시아 때문에 조국을 떠나 미국에 난민으로 입국했다는 것이다.

나와비는 1969년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석유공학자이자 친미성향의 고위 관료였다. 카불은 당시 '아시아의 파리'로 불리던 도시였다. 여성들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카불대학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나와비의 아버지는 소련 점령 정부에 협력하길 거부했다.

결국 위험에 처한 나와비 가족은 카불을 떠나기로 했다. 1982년 14살의 나와비는 세 여동생과 함께 카불을 떠났다. 부모는 먼저 인도로 빠져나간 상태였다. 48일간 버스를 타고 걷고 산길을 넘고 검문소를 피하고, 낯선 이들의 집에서 잤다. 기차와 노새를 번갈아 타면서 나와비는 세 여동생의 손을 잡고 탈출에 성공했다. 뉴델리에서 재회한 부모와 가족은 미국 난민 프로그램에 선발돼 미국에 정착했다.

아프간 난민에서 15조 시가총액 방산업체의 CEO까지
와히드 나와비 에어로바이런먼트 CEO/사진=에어로바이런먼트 홈페이지

나와비가 아프간에서 마지막으로 본 장면은 그의 진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소련의 공격헬기가 마을 위를 지나던 순간, 아프간 민병대원이 소형 미사일을 발사해 헬기를 격추한 것이다. 이후 나와비는 "한 명의 병사가 어깨에 지고 쏠 수 있는 무기 하나가 초강대국의 공군력을 무력화시켰다. 그때 나는 기술이 전장의 비대칭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회고했다.

40년 뒤, 나와비가 이끄는 에어로바이런먼트의 스위치블레이드는 바로 그 '비대칭의 무기'가 됐다. 병사 한 명이 배낭에서 꺼내 하늘로 던지면, 수백만 달러짜리 전차가 파괴된다. 스팅어 미사일이 하인드 헬기를 격추한 것과 똑같은 구도다.

미국에 정착한 나와비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학업에 정진해 메릴랜드대학교 전기공학 학사를 받고 졸업한다. 졸업 후 APC(American Power Conversion)라는 무정전 전원장치(UPS) 제조회사에 입사했다. APC에서 16년 근무하며 나와비는 다양한 실무경험을 쌓고 관리자로서 필요한 업무도 익히게 된다. 그가 근무하는 동안 APC의 매출은 5000만 달러에서 24억 달러로 48배 성장했다. 나와비는 글로벌 운영, 공급망 관리, M&A 통합 등 대기업 운영의 모든 것을 현장에서 배웠다.2011년 에어로바이런먼트(아바브)에 합류하고 2016년 CEO에 취임했다. 카불을 떠난 지 34년 만의 일이었다.

월가에서는 회사를 설립한 천재 엔지니어 폴 맥크레디가 회사의 토대를 만들고 나와비가 현재의 전투드론 전문 방산업체로 제2의 창업을 이끌었다고 평가한다. 나와비가 아바브를 이끌면서 회사의 체질과 투자원칙이 100% 뒤바뀌었다. 예전에는 '군대의 요구→기업의 제품설계 및 개발→수년간 테스트 검증→양산'의 순서였다. 때문에 한 아이템이 만들어지는데 최소 10년, 예산은 수십억 달러가 들고도 실패한 제품이 많았다. 그러나 아바브는 이 순서를 뒤집어 군대가 요구할 만한 아이템을 선별해 '선행 연구개발→빠른 시제품 제작→시연, 채택→양산'으로 변화시켰다.

그러다 보니 아바브가 만드는 방산아이템은 군대에서 빠르게 점유율을 올려갔다. 아바브의 전투용드론 스위치블레이드가 대표적이다. 아바는 군의 공식 요구가 나오기 전에 자체 투자로 배회탄을 개발했다. 배회탄은 말 그대로 하늘을 배회하다가 목표를 발견하면 스스로 돌진해 폭발하는 무기다. 쉽게 말하면 '드론+미사일'의 중간형태다. 보통 드론은 정찰하고 돌아오고, 미사일은 발사하면 바로 날아가 터지는데 배회탄은 이 둘의 기능을 섞었다.

천재 엔지니어가 설립한 에어로바이런먼트를 현재로 이끈 CEO
에어로바이런먼트의 LOCUST/사진=에어로바이런먼트 홈페이지

실전에서 효과가 입증되자 군이 대량 발주를 넣었다. 레이저 대드론 요격체계 LOCUST도 같은 방식이었다. 자체개발부터 시연, 미 육군 실전 배치(2026년 2월 엘패소)까지 전통방산의 절반도 안 되는 시간에 이뤄졌다. 실리콘밸리의 '린 스타트업' 방법론을 방산에 이식한 것이다.

나와비가 CEO에 취임한 2016년부터 2026년까지 10년간 아바브의 연 매출은 8배 성장했고 시가총액은 11배가 됐다. 정찰드론에 한정됐던 제품 라인업은 현재 정찰, 자폭, 레이저, 우주, 사이버 등으로 확장됐다. 해외납품은 물론 생산캐퍼도 몰라보게 커졌다. 지난해 블루헤일로 인수는 이 변환의 정점이었다.

나와비의 무기철학은 소련 헬기의 공포에 떨던 어렸을 적 경험이 녹아있다. 사람이 헬기를 떨어트리는 것처럼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야하고 불필요한 희생을 줄여야 한다는 무기철학이 있다. "우리 무기의 강점은 파괴력이 아니라 정밀성이다. 죽이지 않아도 될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 그것이 진짜 기술"이라는 게 나와비의 설명이다.

특히 그는 전통방산이 10년 걸리는 개발을 2~3년에 끝내는 개발속도를 강조한다.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병사에게 '10년 뒤에 납품하겠다'는 말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미 국방부는 레이건 국방포럼에서 다른 기업들이 따라야 할 롤 모델로 아바브를 언급했다.

월가에서는 우크라이나에 배치된 아바브의 전투드론이 러시아 전차를 격파했던 것처럼 이란전에서도 같은 구도가 반복될 가능성을 높게 본다. 이란전쟁 이후에는 스위치블레이드와 LOCUST 레이저무기 등이 메인이 될 것이라는 점에도 이견이 없는 상태다.

상금으로 빚을 갚기 위해 알루미늄과 비닐로 만든 비행기를 만든 아바브 창업자 맥크레디, 아프간 난민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방산업체 CEO가 된 와히드 나와비는 아바브의 본질이기도 하다. 2026년 이란전은 이들의 가치를 다시 한번 증명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