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글로벌 증시에서 비중이 3% 안팎에 불과한 한국 증시에 전체 기금의 30%에 가까운 자금을 싣고 있는 것으로 4일 파악됐다. 학계에서는 노후재원의 안정적 운용을 위해 자산 배분을 다각화하고 의사결정 과정과 허용범위 상단 등은 투명화 노선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단기급등에 따라 변동성이 커지고 있는 보유 국내주식을 장기간에 걸쳐 조금씩 매도해 급격한 충격을 완화하는 이른 바 쿨링다운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아이셰어즈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전세계 주가지수(MSCI ACWI) ETF(상장지수펀드)에 따르면 글로벌 증시에서한국 시장비중은 지난 2일 기준 2.97%로 집계됐다. 이 ETF는 글로벌 주가지수인 MSCI ACWI를 추종하는 상품으로 글로벌 증시 내 각국 증시 비중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쓰인다.
반면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비중은 30%에 육박한 것으로 추산된다. 국민연금이 발표한 3월 말 국내주식 평가액은 320조9000억원이다. 여기에 3월 말 코스피지수(5052.46)과 4일 코스피 종가 8639.41을 산술적으로 대입하면 국내주식 평가액은 548조7000억원으로 추산된다. 3월 말 대비 지수가 71.0% 상승한 결과다. 현재 기금 규모가 1900조원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진 점을 감안하면 국내주식 비중은 28.9%에 달한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기금운용위원회를 이례적으로 두 차례 개최한 끝에 올해 국내주식 목표비중을 기존 14.9%에서 20.8%로 5.9%포인트 높였다. 동시에 국내주식을 담을 수 있는 한도를 정하는 전략적 자산배분(SAA·중장기 목표비중을 중심으로 둔 허용범위)을 한시적으로 넓혔다. 다만 넓힌 폭이 얼마인지는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차익실현성 매도를 했더라도 지수 급등에 따른 평가익이 매도 규모를 압도하면서 비중이 불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포함된 연기금 등은 지난해 이재명 대통령이 국내주식 비중 확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던 국무회의(12월16일 ) 이튿날부터 올해 6월4일까지 국내 증시에서 7조3427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하지만 코스피지수가 급등했고 지난 1월 리밸런싱 유예로 한도 초과분의 기계적 매도가 멈추면서 비중 확대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민연금은 자산 비중과 거래 내역을 실시간으로 공개하지 않는다.
연기금 집계엔 국민연금 뿐 아니라 사학연금 등 국내 각종 연기금 거래가 반영돼 있다. 3월 이후 국민연금의 매매 동향에 따라 실제 비중과 거래내역은 달라질 수 있다.
앞서 국민연금은 지난 1월 국내주식 비중 확대를 결정한 회의의 회의록도 2030년까지 비공개하기로 했다. 기금 수익성과 시장 안정을 위해 전략적 모호성을 키운 조치다.
다만 이같은 조치들은 모두 국내주식 비중을 줄이지 않는 한방향으로 귀결되는 전략이어서 늘어난 국내주식 비중 자체를 어떻게 관리할지의 문제가 남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최근 국내 증시는 하루에도 지수가 크게 출렁이는 변동성을 보여온 만큼, 일정 기간에 걸쳐 안정적으로 낮추는 쿨링다운(과열 완화)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국내주식 범위 비공개 등 시장 불확실성을 높인 조치도 결국은 해제 수순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조폐공사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위원을 역임한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부 명예교수는 "미국 뉴욕증시나 나스닥은 꾸준히 우상향하는데 거기에 비하면 (국내 주식의) 변동성이 너무 커진데다 국민연금까지 사실 (국내주식 비중 상향, 허용범위 비공개로 인해) 가세하고 있다"라며 "(국민연금은) 전세계 자산에 대한 투자배분 차원에서 국내 주식 쏠림 현상이 너무 심한데, 국내 주식 비중을 줄인다면 주도주를 팔아야 하고 그런 상황에 대한 정책, 정치적 입장을 (국민연금이) 너무 고려한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노후 자산의 안정적인 운영이 제일 중요하다"라며 "시장 충격을 완화하는 차원에서 일정 기간 (비중을 급격히 낮추지 않는 방식으로) 융통성은 가져야겠지만 쿨링다운이 필요하고 (의사결정 과정과 국내주식 비중 상단 등에 대해) 공개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통계청장 출신인 이인실 한반도 미래인구연구원 원장(한국경제학회 명예회장)은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비중 축소에 나서는 경우와 관련, "시장에 엄청난 매도 압력이 발생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때문에 (비중 상단 등을) 밝히지 않겠다란 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라며 "국민으로부터 수탁을 받은 자산이고 위험에 대해선 분산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국민연금이 금융시장 안정 등을 위해 국내주식 보유 허용범위 상단을 비공개한다는 입장에 대해서는 "시장의 안정성을 해치는 일은 수백 가지 수만 가지를 말로 (만들어) 할 수 있지만 깨끗하다면 오픈해야 되는 게 맞는다"라고 했다.
다만 한 대형 증권사 연구원은 "코스피지수가 8500까지 와도 PBR(주가순자산비율)은 2배로 글로벌 시장과 대비했을 때 비싸다고 보기는 어렵고 수익률을 위해서는 비중을 더 늘리는게 맞는다"라고 했다. 이 연구원은 "반도체 사이클(산업 성장주기)가 내년 후반 정도에 후기에 진입할 것으로 보여지는데 (그 시점에 다가갈수록) 줄여 나아가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이 연구원은 "(시장에 비중 범위를) 오픈하면 충격이 있으니까 공개하는 건 굳이 바람직하지 않아보인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