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코스피지수가 8000 밑으로 떨어진 가운데 국민연금이 보유한 국내주식 평가액도 전 거래일 대비 수십조원 단위로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주식을 팔아 해외주식을 사는 리밸런싱(자산 재배분)에 나설 경우 원/달러 고환율 국면에 환율 추가 상승(원화가치 하락) 압력을 가할 수도 있어 사실상 진퇴양난 국면에 진입했는지 주목된다.
다만 국민연금은 환헤지(환 위험회피) 한도(해외투자에 대해 최대 20%)를 상당폭 남긴 상태로 알려졌다. 리밸런싱 과정에서 단기적 환율 상승 압력을 완화할 수 있는 배경으로 거론된다.
이날 장초반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8.8% 떨어진 7442.73까지 밀렸다. 국민연금이 발표한 3월 말 국내주식 평가액 320조9000억원에 코스피지수 변화를 단순 대입하면 5일 종가 기준 국내주식 평가액은 약 518조3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최근 도달한 것으로 알려진 기금 규모 1900조원을 대입하면 국내주식 비중은 약 27.3%였다. 그러나 8일 장중 저가를 대입하면 국내주식 평가액은 약 472조7000억원(비중 약 24.9%)으로 축소된다.
단 하루만에 국내주식 평가액이 45조6000억원 감소한 셈이다. 다만 국민연금은 국내주식 보유고를 비롯한 금융시장 내 포지션을 실시간으로 공개하지 않는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국내주식 보유 허용범위 상단을 비공개에 부치는 등 금융시장 안정 목적으로 전략적 모호성을 강화해 왔다. 그러나 국내주식 평가액이 줄어들면서 국민연금의 리밸런싱(자산 재배분)을 사실상 유보한 방침을 둘러싼 적정성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지난 주말 야간 외환시장 등에서 원/달러 환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560원을 상회하면서 해외 주식 등 해외 자산 매수는 불리한 여건에서 진행할 공산이 커졌다. 국민연금이 지난달 기금위원회 개최 전까지 유지해왔던 국내주식 비중(19.9%)으로 되돌리는 리밸런싱에 나서는 상황을 가정하면 8일 장중 저가 기준 약 94조6000억원 어치 국내 주식을 매도해야 한다. 원/달러 환율 1560원을 적용하면 달러 환산액은 약 606억달러에 달한다.
국민연금이 국내주식을 팔아 해외주식 등 해외자산을 사면 원화를 팔고 달러를 사는 거래가 뒤따른다. 국내주식 비중을 낮추는 리밸런싱이 외환시장에서는 달러 수요를 자극하는 구조인 셈이다. 금융시장에선 고환율 국면에서 대규모 해외자산 매수가 진행되면 원/달러 환율 상승 압력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다만 국민연금은 해외자산 투자 과정에서 일정 범위 안에서 환헤지를 활용할 수 있다. 환헤지를 병행하면 해외주식을 추가 매수하더라도 현물환 시장에서 달러 매수 압력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것을 줄일 수 있다.
외환당국과 국민연금은 해외투자 과정에서 생기는 달러 수요를 완화하기 위해 외환스와프도 운용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외환스와프를 활용하면 현물환 시장에서 달러를 직접 사들이는 수요를 줄이고 한국은행이 보유한 달러를 빌려 해외자산 매수에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스와프, 환헤지 모두 국민연금의 구조적인 달러 수요 자체를 없애는 건 아니다. 만기 때 달러 상환 등 달러 수요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269억9,000만 달러로 전월 말보다 8억8000만 달러 감소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외환보유액 감소는 국민연금과의 외환스와프 등 시장안정화 조치 영향을 받은 결과다.
국민연금은 지난 4월에 해외 투자 자산에 대한 기본 환헤지 비율을 10%에서 15%로 상향 조정하기로 결정했다. 전술적 환헤지 물량까지 포함하면 최대 20%까지 환헤지가 가능하다. 자본시장 관계자는"해외주식을 추가 매수하더라도 환헤지 한도가 올라가 있는 만큼 환헤지를 활용하면 환율 부담을 줄일 수 있다"라며 "기존 한도를 거의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 증시 재평가와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으로 위험 대비 기대수익률이 전년보다 올라간 것은 맞지만 국내주식 비중이 높아진 만큼 리밸런싱 필요성은 있다"며 "다만 방향은 리밸런싱으로 가되 속도는 시장 충격을 주지 않는 선에서 천천히 가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