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민연금, '美 전쟁부 블랙리스트' 中 AI장비기업 IPO 투자

김지훈 기자
2026.08.12 05:30
국민연금 중지이노라이트 코너스톤 투자 개요/그래픽=이지혜

국민연금이 미국 전쟁부(옛 국방부) 조달사업 참여가 금지된 중국군사기업(CMC) 명단에 오른 중국 기업(중지이노라이트)의 홍콩증시 기업공개(IPO)에 투자한 것으로 11일 확인됐다. 국민연금이 CMC에 지정된 기업에 신규로 투자한 사례가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민연금이 신규 투자한 대상은 중국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장비업체 중지이노라이트다. 미국의 대중 규제가 강화되는 국면임에도 국민 노후자산이 지정학적·규제 위험이 있는 중국 기업에 신규 투자된 것이어서 배경이 주목된다.

국민연금, 지난달 홍콩 상장 중지이노라이트 사전 물량 배정받아

[베이징=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 시간) 중국 베이징 중난하이에서 일정을 마친 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배웅을 받으며 전용 차량으로 걸어가고 있다. 2026.05.15. /사진=민경찬

11일 연기금, IB(투자은행)업계 등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달 20일 블랙록 산하 펀드 등과 함께 중지이노라이트에 대해 총 2억5000만달러(약 3543억7500만원) 규모의 코너스톤 투자 계약을 맺었다. 코너스톤 투자는 기관투자자가 상장 전에 공모가로 일정 물량을 배정받기로 미리 약정하는 제도다.

중지이노라이트는 7월30일 홍콩 증시에 상장했으며 국민연금이 투자한 물량은 IPO 이후 오는 2027년 1월29일까지 매매할 수 없는 보호예수 대상에 속한다. 다만 국민연금의 개별 투자액은 알려지지 않았다.

중지이노라이트는 AI 데이터센터에 쓰이는 광트랜시버(전기신호와 광신호를 서로 변환하는 장치)를 생산하는 중국 광통신 장비업체다. 미국 매출 비중이 61.7%로 미국 시장에 대한 의존이 높은 기업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투자계약보다 42일 전 미국 전쟁부는 중지이노라이트를 CMC로 지정했다.

중국 인민해방군과 직간접 연계 기업에 지정…감시 대상 아닌 실효 제재 격상에도 투자

(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지역·필수·공공의료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7.22/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CMC 명단은 미국 국방수권법에 따라 전쟁부가 중국 인민해방군과 ·간접 연계가 있다고 판단한 기업을 매년 지정하는 제도다.

아울러 6월부터 전쟁부와 CMC 지정 기업 간 직접 계약이 금지된 상태다. 원래는 특별한 규제가 주어지지 않는 감시 대상 명단에 가까웠으나 실효적 규제가 발동한 것으로 미중 갈등 수위가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는 2027년 6월부터는 지정 기업의 상품·서비스가 포함된 간접 조달까지 금지가 확대된다.

CMC는 지난 6월 65개가 올해분으로 신규 지정되면서 전체 지정 대상이 188개로 확대됐다. 지정 대상이 확대됨에 따라 국민연금이 기존 보유한 종목도 지정됐을 개연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지정이 확정됐음에도 신규 투자에 나서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이는 지정학적 위기를 금융시장 변동성 진앙으로 지목했던 기존 국민연금 기조와 결이 다른 행보로 풀이된다. 앞서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4월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지난 3월부터 지속된 중동 전역의 지정학적 위험은 국내외 금융시장에 급격한 변동성을 초래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지정학적·규제 리스크 체계적으로 투자 판단 반영해야"
(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1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성평등가족부, 국민권익위원회 2차 업무보고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2026.7.16/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중지이노라이트는 미국 전쟁부에 공급하는 물량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달 들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중국산 광트랜시버 수입 제한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며 미중갈등발 규제 위험이 부각된 상태다. 국민연금은 머니투데이로부터 전쟁부 명단 등재 사실을 인지·검토했는지 등에 대한 질의를 받고 "개별 투자 내역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단순한 수익률뿐 아니라 지정학적·규제 리스크와 손실 가능성까지 판단 대상에 넣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본다.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는 중지이노라이트에 대한 미국 측 규제와 관련 "단순히 국민연금의 잘못된 투자라고만 볼 수는 없지만 이번 사례는 경제안보 시대에는 연기금도 재무적 수익률뿐 아니라 지정학적·규제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투자 판단에 반영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라고 했다. 박 교수는 "앞으로의 문제는 중국 기업에 투자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경제안보 리스크를 감안했을 때 어떤 기업이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고 어떤 기업이 공급망에서 전략적 가치를 갖는지를 투자기관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임채운 서강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중국뿐 아니라 러시아라도 포트폴리오의 다변화 차원에서 투자를 할 수 있다고 본다"며 "미국의 대중 규제에 따라서 여러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리스크이면서 감수해야 하는 리스크"라고 말했다. 다만 임 교수는 "애초부터 (리스크를) 우려해서 투자하지 않는 것은 맞지 않지만 최악의 경우 투자한 기업이 파산하는 것도 감안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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