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PEF(사모펀드)들이 올해 국내 M&A(인수합병) 시장의 대형 거래를 독식하고 있다. 원/달러 고환율, 국회의 PEF 규제 입법 추진, 대형 출자자들의 PEF 신규 출자 중단이 겹친 결과로 풀이된다. 국내 자본시장 건전화를 목표로 내건 정치권의 입법 동향이 불리한 대외 경제 여건과 맞물리면서 외국계 자본의 국내 진출 기회만 키워주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는 관측도 존재한다.
13일 IB(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외국계 PEF를 비롯한 해외 자본이 올해 국내 M&A(인수합병) 시장에서 거래 규모 기준 상위권 거래를 사실상 독식한 상태로 평가된다. 미국계 PEF 운용사 TPG는 지난 11일 롯데로부터 1조3105억원 규모 롯데렌탈 경영권 지분을 사들이는 계약을 체결했다. 롯데렌탈은 국내 렌터카 시장 1위 사업자다. 인수 대상은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이 보유한 지분 61.2% 전량이다.
지난 6월에는 미국계 PEF 칼라일이 정수기 업체 청호나이스 등 청호그룹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IB업계는 거래 대금을 1조원 규모로 추정한다. 미국계 PEF인 KKR도 지난 3월 SK디스커버리와 한앤컴퍼니로부터 SK이터닉스 지분 43.5%를 3479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 미국계 PEF 베인캐피탈은 지난해 12월 31일 {에코마케팅} 최대주주 지분 43.66%를 주당 1만6000원, 총 2166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맺은 뒤 올해 들어 세 차례 공개매수와 장내매수를 거쳐 지난 5월 지분 95%를 확보했다. 전체 투입 금액은 약 5000억원 규모로 알려졌다.
고환율 여건은 해외 자금 조달에 기반해 인수전을 펼치는 외국계 PEF들에 유리한 조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외국계 PEF는 펀드 결성 때 출자자로부터 달러로 출자 약정을 받아두고 실제 인수 건이 생기면 캐피탈콜(출자 약정액의 납입 요청)을 통해 달러를 받아 원화로 환전해 인수대금을 치른다. 원/달러 환율이 오를수록 같은 달러로 투입 가능한 원화가 늘어나는 셈이다.
외국계 PEF가 국내 기업 인수전에서 두각을 드러낸 시기는 원/달러 환율이 치솟는 국면과 겹친다.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2025년 연말 종가가 1439.0원으로 원화 가치가 연간 2.3% 절상됐다. 하지만 올해 6월에는 중동전쟁과 달러 강세 등의 영향으로 2009년 3월 이후 최고치인 1561.50원까지 치솟았다. 2023년 원/달러 환율 종가는 1288원이었다.
국내 대형 기관투자자들이 지난해 홈플러스 사태 등을 계기로 바이아웃(경영권 인수)형 PEF 등에 대한 출자에 소극적인 것은 국내 PEF의 자금 여력을 낮추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국내 최대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은 지난해 홈플러스 사태 등을 계기로 바이아웃형 PEF 신규 출자를 중단한 상태다.
국내 PEF에 대한 규제 강화 움직임도 외국계 PEF와의 경쟁력 격차를 벌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국회에는 PEF 운용사 임직원 보수 공개, 차입 규제 강화, 준법감시인 선임과 내부통제 강화, 기업 경영권 인수 시 근로자대표 통지 등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들이 계류돼 있다. 원래 입법 논의는 기업 인수 뒤 과도한 차입과 단기 회수 등을 막는 방향으로 시작됐다가 PEF의 보고 의무를 포괄적으로 높이는 방향으로 확장됐다. IB업계에서는 규제가 자본시장법상 등록·감독 대상인 국내 운용사를 중심으로 적용될 경우 국내 PEF업계가 외국계보다 불리한 여건에 놓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대형 PEF 임원은 고환율 환경에 대해 "외국계들은 기본적으로 출자 약정 이후 인수 시에 캐피탈콜을 할 때 달러로 자금을 받아 환전을 해서 국내로 들어오는데 현 상황에서는 기본적으로 유리하다"고 말했다. 그는 "규제 부분도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업계가 위축된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