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경제안보 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국내외 사모펀드(PEF)에 이어 국민연금도 미중 갈등발 파장에 직면한 것으로 나타났다. PEF들은 각국의 경제안보 심사로 인수 거래에 제동이 걸리면서 LP(출자자)들에 경위를 설명했고 국내 LP 정점인 국민연금은 미국 전쟁부(옛 국방부)의 중국군사기업(CMC) 지정 기업에 투자하면서 국민의힘 지도부로부터 국정조사 요구를 받았다.
오는 2027년 중국 인민해방군 창설 100주년을 앞두고 중국의 대만 침공 현실화 가능성이 새삼 회자되는 가운데 자본도 사실상 지정학적 긴장과 관련한 노선 선택을 요구받았다는 의견이다.
16일 연기금과 IB(투자은행)업계 등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 7월 20일 블랙록 산하 펀드 등과 함께 총 2억5000만달러 규모의 코너스톤 투자(상장 전 물량을 확정 배정받는 투자) 계약을 맺고 중지이노라이트 홍콩 IPO에 참여했다.
이 계약은 중지이노라이트 상장 과정에서 체결된 전체 코너스톤 계약 가운데 하나로 국민연금의 개별 투자액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는 미국 전쟁부가 중지이노라이트를 지난 6월 전쟁부 사업 참여를 금지시키는 중국군사기업(CMC)에 지정한 뒤 이뤄진 투자다. CMC는 중국 인민해방군과 직간접으로 연계되어 있거나 군민융합에 기여한 기업이 명단에 오른다. 중지이노라이트는 AI 데이터센터에 쓰이는 광트랜시버(전기신호와 광신호를 서로 변환하는 장치)를 생산하는 중국 광통신 장비업체다. 국민연금이 CMC 지정 이후 기업 IPO에 투자한 것이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민연금이 중지이노라이트 투자로 배정받은 물량의 보호예수는 오는 2027년 1월29일까지 적용된다. 이른바 중국의 대만 침공설과 관련해 주된 국면이 될 것으로 거론돼 왔던 해다.
앞서 필립 데이비슨 전(前) 미군 인도태평양사령관이 2021년 미국 의회에서 중국이 6년 이내 대만을 침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대만 해협과 관련해 2027년 위기설이 회자돼 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인민해방군 창설 100주년인 2027년을 군 현대화 목표 달성에 있어 중요한 시점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것도 위기설의 배경으로 거론돼 왔다.
달리 보면 국민연금이 중지이노라이트처럼 홍콩 IPO에 코너스톤 투자를 올 하반기 실시했을 경우 미중 갈등과 관련한 경계심이 자칫 최고조로 향할 수 있는 시기에 보유 지분을 처분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홍콩 시장에서 코너스톤 투자는 통상 IPO 이후 6개월간 보호 예수가 걸린다.
미국은 주정부 차원에서 공적 연금의 중국 증시 철수를 법제화하는 등 대중 견제 강도를 높인 상태다. 실제 중지이노라이트의 전체 코너스톤 계약 명단에도 미국 공적연금은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이달 들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중국산 광트랜시버 수입 제한도 검토하면서 중지이노라이트는 지정학과 관련한 규제를 연타로 적용받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와 관련, 김민수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지난 13일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연금이 CMC(중국군사기업)에 투자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겼다"며 "최근 국제적으로 미국이 중국 CMC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와중에 대한민국은 국민연금 자금으로 중국군 연계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김 최고위원은 "(국민연금) 담당자들, CMC 기업인지 알았는가, 몰랐는가. CMC 기업에 투자하면 세계적으로 규제 대상이 되는 거 알고 있는가, 모르는가"라며 "국민연금이 어떻게 투자되고 있는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국정조사부터 특검이 필요한 때"라고 했다.
다만 중국 증시도 노후자산 운용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시각도 있다. 각국 증시에 폭넓게 투자하는 것은 포트폴리오 다변화와 수익률 확보 차원에서 필요한 활동이란 것이다. 중국의 대만 침공설 역시 주변국 모두 당사국은 물론 인도태평양 역내 전체에 중대한 타격이 예상되는 만큼 현실화할지 미지수란 시각도 많다. 미국 정보당국도 중국이 대만을 확보하기 위한 무력 침공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지만 고정된 시간표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평가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이 지정학적 위험도 투자 판단에서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각국 경제안보 규제가 투자 성과와 자금 회수에 실질 영향을 주는 변수로 부상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수탁자책임 활동 지침 또는 책임투자 기준상 지정학적 위험에 대응한 별도 검토 절차가 있는지 질의를 받고 "개별 투자 건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한편 PEF들이 각국에서 경제 안보 이슈로 인해 인수합병이 중단된 것도 미중 갈등의 일환이란 관측도 존재한다.MBK파트너스는 일본 공작기계업체 마키노밀링머신 인수를 추진하다 지난 4월 일본 정부의 중단 권고를 받고 철회했다. 마키노 제품이 일본 방산업체에서 폭넓게 쓰인다는 이유였다. 일본은 인수합병에서 자국 안보관련 심사를 강화했는데 중국의 군사 대국화 등에 따른 대응이란 해석이 존재해 왔다.
앞서 2021년에는 중국계 사모펀드 와이즈로드의 뉴욕증시 상장 한국계 반도체기업 매그나칩 인수가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의 승인을 얻지 못해 무산됐다. 반도체 기술 유출을 경제안보 이슈로 받아들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PEF들은 인수가 무산될 경우 주요 LP들에 대해 무산 경위를 설명하고 추가적 인수 후보군을 저울질하는 방향으로 선회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