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사만의 잘못 아니다"…헤리티지·라임 판결이 보여준 진짜 책임

방윤영 기자, 김나경 기자
2026.08.31 17:20

[[MT리포트]투자상품 사고, '책임의 시차' ②금감원 검사·제재에도 최종 책임은 수년 뒤 법정서 판가름

[편집자주] 투자상품 사고가 터지면 판매사가 먼저 배상하고 비판도 집중된다. 하지만 뒤따른 소송에선 운용사 등 다른 회사 책임이 뒤늦게 드러난다. 투자자는 빨리 구하되 책임도 빨리 가릴 수는 없을까. 배상과 책임 사이의 '시차'를 짚어본다.
금융투자상품 사고 관련 법원 판결 사례/그래픽=김현정

투자상품 사고가 발생하면 투자자와 직접 맞닿아 있는 판매사의 책임이 가장 먼저 부각된다. 하지만 투자자 피해가 구제된 뒤 금융회사 간 책임을 가리는 법정에서는 누가 상품을 팔았는지만으로 최종 책임이 결정되지 않는다. 상품 발굴·설계부터 정보 작성·검증·운용·판매까지 각 금융회사가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가 책임을 가르는 핵심 기준이 된다.

124억 돌려준 현대차증권…1심은 JB운용 책임 90%

3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독일 헤리티지 펀드 환매 중단과 관련해 투자자에게 약 124억원을 돌려준 판매사 현대차증권과 운용사 JB자산운용 간 손해배상 소송에서 1심 법원은 지난해 JB자산운용에 112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JB자산운용이 항소하면서 금융회사 간 책임을 둘러싼 다툼은 2심으로 이어졌다.

1심 재판부는 JB자산운용이 작성한 상품제안서에 독일 현지 시행사의 역량·재무건전성과 신용도, 펀드 수수료 구조, 투자금 회수를 위한 안전성 확보 장치 등이 잘못 기재됐다고 보고 위탁판매계약상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여러 사정을 고려해 JB자산운용의 책임을 90%로 제한했다.

투자자에게 상품을 판매하고 돈을 먼저 돌려준 금융회사와 사고의 최종 책임을 지는 금융회사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반대로 판매사가 상품 발굴이나 구조 설계 등에 관여했다면 판매 과정뿐 아니라 실제 관여한 행위까지 책임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라임 사태에서도 법원은 판매사 외에 운용사와 상품에 관여한 증권사의 책임을 인정했다. 서울남부지법은 지난 2월 하나은행이 라임자산운용과 신한투자증권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하나은행의 라임자산운용에 대한 파산채권을 약 389억원으로 확정했다. 법원은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과 신한투자증권, 임일우 전 신한투자증권 PBS사업본부장에게도 손해에 대한 공동 지급 책임을 인정했다.

하나은행은 라임 펀드 판매로 발생한 손해를 이유로 2022년 라임자산운용과 신한투자증권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신한투자증권은 라임 무역금융펀드에 총수익스와프(TRS) 자금을 제공하는 등 상품에 관여했다. 법원은 하나은행이 투자자 피해를 구제한 이후 제기한 소송에서 라임자산운용뿐 아니라 신한투자증권 측에도 책임을 인정했다.

헤리티지와 라임 사례는 투자상품 사고의 책임이 판매사·운용사라는 형식적인 지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상품 발굴·설계·정보 작성·검증·운용·판매 과정에서 각 회사가 실제로 어떤 행위를 했는지가 최종 책임을 가르는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된다.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금감원은 검사했는데…최종 책임은 다시 법정으로

문제는 각 금융회사의 책임이 투자자 피해구제 이후 장기간의 민사소송을 거쳐 가려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하나은행의 라임 소송도 2022년 제기된 뒤 올해 2월 1심 판단이 나왔다.

금감원은 투자상품 사고가 발생하면 판매사뿐 아니라 운용사 등 관련 금융회사를 검사해 위법·부당행위를 조사하고 제재한다. 분쟁조정을 통해 투자자 피해구제에도 나선다. 하지만 당국의 검사·제재는 각 금융회사의 법규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데 그치고, 사고에 관여한 회사들의 실제 역할과 잘못을 하나의 책임 구조로 종합해 조기에 규명하는 데까지 이어지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당국이 검사 과정에서 여러 참여회사의 행위와 잘못을 상당 부분 확인하고도 금융회사들은 투자자 피해구제 이후 다시 민사소송을 통해 상대방의 책임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헤리티지와 라임처럼 법원에서 판매사 외 다른 금융회사의 상당한 책임이 인정되는 데까지 수년이 걸리는 배경이다.

물론 금융회사 간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과 배상 비율을 결정하는 것은 금융당국의 권한이 아니다. 그러나 금감원이 사고 발생 이후 판매·운용·수탁 등 관련 회사를 각각 검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상품 발굴·설계·실사·정보 작성·검증·운용·수탁·판매 전 과정을 하나의 사건으로 들여다보고 각 회사가 실제로 어떤 역할을 했고 어디에서 잘못이 발생했는지를 보다 종합적으로 규명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투자자에게 판매한 금융회사가 판매 과정에서 잘못했다면 그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여러 금융회사가 상품에 관여했다면 각 회사가 실제로 어떤 역할을 했고 어디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까지 함께 확인돼야 책임을 제대로 가릴 수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이 민사상 책임 비율까지 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검사에서 확인한 사실관계를 금융회사 간 책임 규명에 보다 신속하게 연결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당국 검사와 법원의 최종 판단 사이에서 각 금융회사의 실제 책임을 조기에 정리할 수 있다면 투자자 피해구제 이후 다시 수년에 걸친 소송으로 책임을 가리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금감원은 금융회사 간 민사상 책임비율을 당국이 직접 정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금감원은 검사·제재를 통해 관련 금융회사의 위법·부당행위를 판단하고 분쟁조정을 통해 투자자 피해구제에 나서지만, 판매사와 운용사 등 금융회사 간 구상관계는 당사자 간 소송을 통해 가려져야 하고, 금감원의 검사 결과가 관련 민사소송에서 참고될 수는 있지만 법원의 판단을 구속하지도 않는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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