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 인터넷의 괴물 사냥꾼들①

테크앤비욘드 편집부
2015.02.23 06:00

MIT Technology Review 제휴

[편집자주] 인터넷에서는 증오가 일종의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 증오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지는 국가도 예외는 아니다. 지구 반대편 스웨덴에서 인터넷의 어두운 골목에서 인종차별, 집단적 공격, 괴롭힘을 저지르는 이들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언론인과 연구자들이 나섰다.
트롤 헌터 홍보 이미지 (제공: DRG TV STRIX)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증오를 퍼뜨리고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흔히 ‘트롤(Troll)’이라 부른다. 트롤들은 쏟아내는 말도 문제지만 ‘인간은 대체 어디까지 사악해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는 점에서 참으로 불쾌한 존재다. 2014년 가을 어느 날 오후, 스웨덴 언론인 로베르트 아스베리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스톡홀름 교외의 칙칙한 아파트 앞 공터에서 인터넷 트롤 한 명을 만났다.

아스베리 기자가 만난 트롤은 조용하고 마른 몸매의 30대 남성으로, 후드 티셔츠에 지저분한 야구모자를 쓰고 있었다. 아스베리 기자의 스마트한 정장, ‘포스’가 느껴지는 대머리, 방송 출연으로 다져진 중저음의 목소리와는 대조적이었다. 아스베리 기자의 취재팀은 날 때부터 작은 손이었던 10대 여성을 몇 달 동안 괴롭힌 장본인으로 이 남성을 지목했다.

이 남성은 인터넷에서 피해 여성을 알게 된 후 그녀의 인스타그램 페이지에 손에 대한 악성 댓글을 남기고, 페이스북에서 끝없이 메시지를 보내고, 욕설이 담긴 이메일까지 보내는 등 집요하게 그녀를 괴롭혔다. 아스베리 기자는 카메라를 든 취재팀을 대동하고 이 남성을 만나러 집까지 찾아왔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부인했다. 아스베리 기자는 “본인이 지금까지 한 행동을 후회하십니까?”라고 물으며 이 남성의 것으로 보이는 페이스북 계정에서 피해 여성에게 전송된 메시지들을 모은 자료를 건넸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저는 아무 것도 보낸 적 없어요. 그때는 프로필 사진도 없었어요. 계정이 해킹당한 겁니다.”

‘트롤 헌터(Trolljagarna)’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인터넷 트롤의 정체를 폭로하기 시작한 후, 아스베리 기자가 이처럼 모든 혐의를 완전히 부인하는 상대를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보통 아스베리 기자가 수십 년간의 탐사보도로 단련된 특유의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상대방을 노려보면 성범죄자, 스토커, 부패 정치인 등은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진실을 털어놓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대가 만만치 않았다. 10분 가량의 질문과 답변은 별 성과 없이 끝났고, 아스베리 기자는 조금은 지친 듯 이렇게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리서치그룹 멤버들(제공: 리서치그룹)

“많은 경험을 해본 입장에서 조언을 좀 드리겠습니다. 인터넷에서 이런 행동을 하기보다는 몸을 사리는 게 좋을 겁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은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저는 그런 짓을 한 적이 없는데요.”

인터뷰 후 차에 오른 아스베리 기자는 “거짓말이 거의 병적인 수준이었다”며 분을 삭혔다. 그렇지만 특별히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트롤 헌터’의 목적은 인터넷에서 트롤을 전부 없애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스베리 기자는 “인터넷상의 증오를 끄집어내서 사회적 토론을 촉발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라고 설명한다.

트롤 헌터 사무실에 도착하자 프로그램의 방향이 정리된 화이트보드가 제작진을 맞이했다. 다른 트롤들에 대한 자료도 두 줄로 쌓여 있었다. 인스타그램에서 같은 반 친구들을 익명으로 괴롭히는 고등학생 두 명, 인종차별주의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정치인, 젊은 여성의 계정을 도용해 인터넷에서 남성들에게 접근하는 법대 남학생에 관한 파일이었다. 최근 스웨덴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넷증오(nathat)’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넷증오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트롤 헌터는 이제 두 번째 시즌을 촬영하고 있다.

이제 공공연하게 여성이나 소수자에게 욕설을 하는 행위, 어떤 인간은 다른 인간보다 가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표출하는 행위, 취약집단에게 테러를 가하는 행위는 일반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해묵은 증오가 일종의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 증오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지는 국가도 예외는 아니다. 인터넷이 제공하는 익명성 덕에 사람들은 서로의 증오를 더욱 키우는 커뮤니티를 만들면서도 아무 불이익을 받지 않을 수 있다. 집단을 형성하고 테러를 가하기도 어렵지 않다. 트롤들은 수십 개의 가명 뒤에 숨어서 이러한 행위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게다가 인터넷상의 증오를 억제하고자 하는 시도는 언제나 인터넷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소수 의견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는 오래된 이상과 대척점에 선다.

인터넷상의 증오에 맞선 싸움은 이처럼 시급하면서도 까다로운 문제이기에, 다니엘 시트론 교수는 최근 출판된 ‘사이버공간의 증오범죄(Hate Crimes in Cyberspace)’에서 인터넷을 ‘시민적 권리의 차세대 전장’이라고 부른다.

증오에 맞선 싸움이 시급한 나라 가운데 스웨덴이 포함된다는 사실은 놀랍다. 스웨덴은 자유주의와 여성주의가 굳건히 자리 잡은 국가로 명성을 쌓아 왔고, 긴 겨울밤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이 초고속인터넷으로 영화와 음악을 공유하는 ‘디지털 유토피아’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국제통신연합에 따르면 스웨덴의 인터넷 보급률은 세계 4위로, 95%에 달한다. 스포티파이(Spotify)와 마인크래프트(Minecraft) 등 IT업계의 아이콘을 배출한 것도 스웨덴이며, 스웨덴에서 시작된 해적당(Pirate Party) 운동은 인터넷이 평화와 번영을 이룰 힘을 가진 공간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스웨덴의 인터넷 공간에는 어둡고 취약한 부분도 존재한다. 2012년의 ‘인스타그램 사태’가 대표적인 예다. 당시 고텐베리의 한 고등학교 앞에 모여든 십대들은 인스타그램 페이지에서 다른 학생들을 성적으로 모욕하는 글과 사진을 올린 여학생을 끌어내라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2013년에는 인터넷에서 일상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여성들의 사례를 고발한 TV 프로그램 ‘여자를 넷증오한 남자들(Men Who Net Hate Women)’이 화제가 됐다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3부작 중 첫 작품인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살짝 비튼 제목이다).

인터넷상의 증오는 인터넷이 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모든 나라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스웨덴에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문화적·법적 보호로 인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는 것이 마르텐 슐트스 스톡홀름대 법학교수의 설명이다. 슐트스 교수는 트롤 헌터의 고정 게스트로 출연해 사건의 법적 측면을 설명하고 있다. 스웨덴에서 넷증오는 ‘원하는 것을 말할 자유에 따르는, 불쾌하지만 불가피한 부작용’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인터넷상의 괴롭힘을 억제하기 위한 법안은 표현의 자유와 인터넷의 권리를 옹호하는 시민단체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힌다.

게다가 스웨덴은 개방적인 정보공개법으로 인해 개인식별번호, 주소, 과세대상 소득내역 등의 개인정보에 접근하기 쉬운 국가다. 이로 인해 인터넷 괴롭힘은 개인의 영역 깊이 침투할 수 있다. 슐트스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스웨덴 정부는 다른 나라에서는 구할 수 없는 정보를 굉장히 많이 공개한다. 프라이버시 보호가 꽤 낮은 수준이다.”

그런데 인터넷 트롤에게 힘이 되는 풍부한 정보 생태계는 트롤의 정체를 밝혀내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매우 유리한 환경을 제공한다. 아스베리 기자와 별도로 리서치그룹(Researchgruppen)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이들은 트롤이 인터넷에 익명으로 남기는 데이터 조각을 추적해 정체를 밝혀내는 일종의 행동저널리즘을 개척하고 있다.

리서치그룹은 얼마 전 실시한 최대 규모의 ‘트롤 사냥’에서 우익 인터넷 언론 아브픽슬라트(Avpixlat)의 독자의견란을 조사해, 댓글과 이용자 정보를 모은 대규모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리서치그룹은 이 데이터를 실마리로 아브픽슬라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댓글 작성자 상당수의 정체를 밝혀내고 스웨덴의 양대 타블로이드 중 하나인 엑스프레센(Expressen)에 실명을 제공했다.

2013년 12월, 엑스프레센은 유명 인사 수십 명이 아브픽슬라트에 가명으로 인종차별·성차별, 기타 증오 발언을 게시했다는 사실을 1면 연속기사로 폭로했다. 실명이 공개된 인사 중에는 최근 세력을 키우고 있는 극우정당 스웨덴민주당(Sweden Democrats) 소속 정치인과 정부 관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해 최대의 특종이었다.

스웨덴의 네오나치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는 스웨덴민주당은 자신들이 인종차별주의에서 멀어졌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스웨덴 문화’를 보호하겠다는 온건한 표현을 사용하는 등 오랫동안 다양한 노력을 해온 바 있었다. 그런데 당원들이 유태인 대학살이 실제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거나 무슬림 이민자들을 ‘메뚜기’라고 비하하는 행위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 사건의 여파로 많은 정치인과 관료들이 사임했다. 엑스프레센은 아브픽슬라트에 글을 올린 사람들의 집까지 기자들이 직접 찾아가 증거 자료를 제시하는 등 트롤 헌터로 활동하는 모습을 담은 짧은 다큐멘터리도 공개했다.

글 에이드리언 첸

번역 이세현

[MIT] 인터넷의 괴물 사냥꾼들②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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