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와 금융이 결합한 핀테크 시대가 열리면서 인터넷 전문은행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IT기업, 금융투자업체, 지방자치단체 등이 인터넷 전문은행 진출 여부를 두고 저울질하는 중이다. 정부는 오는 6월까지 인터넷 전문은행 도입방안을 마련해 이를 뒷받침한다는 입장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금산분리 원칙 아래 제한적으로 규제 보완을 추진하고 비대면 실명 확인을 허용하는 등 규제 완화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사실 인터넷 전문은행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2000년대 초반 몇몇 대기업과 벤처기업이 의기투합해 인터넷 전문은행 ‘브이뱅크’ 설립을 추진했다.
하지만 대면을 통한 본인 확인이 필수적인 금융실명제 아래에서는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 시도는 좌초될 수밖에 없었다. 2008년에는 법 개정을 통한 시도가 있었지만 국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번에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다음카카오·네이버, 인터넷 전문은행 뛰어드나
국내 인터넷 전문은행 시장규모는 38조 3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IBK투자증권은 미국과 일본의 인터넷 전문은행의 설립 시기와 전체 은행에서 차지하는 점유율 등을 반영해 국내 인터넷 전문은행 시장규모를 총자산 47조 1000억 원, 당기순이익 4000억 원 수준으로 추산했다.
박진형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인터넷 전문은행의 관전 포인트는 대형 은행의 발 빠른 대응, IT 등 비금융 산업자본과의 공동출자나 기술·고객 기반 공유 협약, 니치마켓 플레이어의 시장 선점”이라고 분석하며 “금융회사, 비금융회사, 플랫폼 회사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가장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경기도다.
경기도는 인터넷 전문은행 ‘아이뱅크(I-Bank)’ 설립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2월 경기 아이뱅크 설립을 위한 공개토론회 자리에서 “경기도는 1998년 경기은행 퇴출 이후 금융 산업이 퇴보하고 서민금융시장 확대 필요성이 커졌다”며 “최근 IT 발전에 따른 핀테크 산업과 인터넷 전문은행이 주목받고 있어 지금이 경기도가 인터넷 은행을 설립할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경기도는 시·군과 경기도상공회의소, 도내 기업, 도민, 제휴 핀테크 기업, 해외 제휴기업 등과 손잡고 1000억~2000억 원 규모의 재원을 마련, 내년 7월 출범을 목표로 삼고 있다. 경기도는 공공금융기관인 경기신보의 기존 영업망을 기반으로 도내 중소기업 데이터를 활용해 사회적 금융지원 토대를 마련한다는 복안이다.
업계에서는 국내 양대 포털 다음카카오와 네이버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다음카카오는 이미 ‘카카오페이’와 ‘뱅크월렛카카오’를 내세우며 핀테크 전초전을 치른 상태다.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상황이라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 이르지만, 핀테크 선두주자 이미지를 확실히 심었다는 평가다. 다음카카오는 간편결제 서비스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 인터넷 은행 설립을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사업성을 검토하고 있으며, 정관 변경을 통해 신규 사업목적에 전자금융을 추가함으로써 핀테크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동안 다음카카오는 ‘선불전자지급수단관리 및 전자지급결제대행업’을 근거로 핀테크 관련 서비스를 진행했다. 이번 정관 변경은 다음카카오가 선보일 새로운 핀테크 서비스를 위한 물밑 작업으로 보인다. 네이버는 아직 인터넷 전문은행에 대해선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인터넷 전문은행 진출이 네이버 이용자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지를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상태다. 금산분리법 등 제약이 많다보니 상황을 관망하겠다는 것이다.
대신 ‘네이버페이’ 출시에 주력하고 있다. 네이버페이는 지식쇼핑에서 쓸 수 있는 기존 간편결제 서비스 체크아웃, 네이버캐시, 마일리지를 통합한 서비스다. 기존 신용·체크카드 결제 시 필요한 SMS 및 공인인증 과정을 생략했다. 결제 보안을 위해 결제 비밀번호와 더불어 지문인식, 무인증 결제 등 다양한 방식을 도입할 방침이다. 네이버페이는 오는 6월 출시될 예정이다.
은행·증권사도 인터넷 전문은행 관심
은행, 증권사 등 금융투자업체들도 인터넷 전문은행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IBK기업은행이 대표적이다. IBK기업은행은 최근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면 인터넷 전문은행을 자회사 형식으로 설립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새로 선보이는 통합 플랫폼 ‘원(ONE)뱅크’가 그 핵심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근주 IBK기업은행 스마트금융부장은 “IBK기업은행은 온·오프라인을 통합한 플랫폼 옴니채널을 지향한다”며 “인터넷 전문은행 수준 금융서비스인 통합 플랫폼 원뱅크를 바탕으로 IT 신기술을 활용한 비대면 채널에 선제적 대응을 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기존 대면 채널에서의 고객 상담 데이터를 활용해 시장 요구에 언제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말 조직 개편을 통해 핀테크 사업부를 출범시켰다.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지난해 말 취임사를 통해 “핀테크 경쟁력을 강화해 온라인 지급결제 시장을 선도하고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을 추진해 금융 디지털 마켓의 선두주자가 되겠다”며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성공한 경험이 있는 키움증권 역시 인터넷 전문은행을 준비하고 있다.
키움증권은 지점 없는 증권사로 시작해 온라인 주식거래 점유율 1위로 최근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 관련 TF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권용원 키움증권 사장은 최근 범금융토론회에서 “금융회사는 핀테크 업체를 인수할 수 없고, IT회사는 금융업에 진출하는 길이 막혀있다”며 “결국 금산분리와 금융실명제 완화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키움증권 대주주는 다우기술로 금산분리 제한 때문에 인터넷 전문은행 추진이 쉽지 않은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키움증권이 온라인 증권사로서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금융지주회사로서 종합 포털 서비스를 하려면 은행이 필요하다”며 “모기업인 다우기술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준비하고 있지만 예산이 많이 필요해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테크’다
핀테크 시대에 인터넷 전문은행만이 정답은 아니란 지적도 나온다. ‘차별화된 테크’를 갖고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는데 정작 이는 뒷전이라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은행 중 핀테크를 제대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곳이 한 곳도 없다. ‘스마트금융’에서 별 차이 없는 서비스를 가지고 핀테크라고 해서는 안 된다. 이대로라면 아무도 성공 못할 것”이라고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인터넷 전문은행이 해외에서는 각광받았을지라도 국내 사정은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까다로운 규제가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의 발목을 잡고 있는데다 국내 은행산업 구조도 저성장, 저금리로 수익성이 약하다. 게다가 이미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뱅킹을 쓸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고 미국과 달리 오프라인 점포 접근성도 높다. 고객 성향도 편리성보다는 금융 사고에 민감해 인터넷 전문은행이 신뢰를 받기 쉽지 않다.
중견·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이 관련 시장에 뛰어들기에도 벽이 높다. 이근주 부장은 “은행업 인가를 위해서는 최소 자본금이 1000억 원 이상 필요하다. 대기업을 제외한 중소 규모 이하의 기업에서는 인터넷 전문은행 진입 제한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핀테크 시대의 핵심은 시스템 통합(SI)이 아니라 스스로 소프트웨어(SW)를 만드는 능력이라는 의견도 있다.
남이 만든 기술을 가져다 쓸 게 아니라 스스로 개발해야 한다는 얘기다. 문용준 SKC&C 부장은 “문제는 은행도 IT기업도 인터넷 전문은행을 비롯한 핀테크를 하기엔 기술 수준이 너무 낮다”며 “앞으로의 핀테크는 개인 맞춤형 서비스가 필요하다. 기존 개인 스마트뱅킹은 1단계다. 전혀 다르게 바뀌어야 한다. 금융기관 중심이 아니라 고객 중심의 관점에서 감성을 건드리는 분석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조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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