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초부터 주문형비디오(VOD) 공급 중단이 반복되고 실시간 방송 광고 블랙아웃 사태까지 벌어질 뻔했는데, 이는 정부가 안일하게 대응한 탓이 큽니다.”
서울의 한 대학교수는 지상파방송 3사와 케이블TV 업계의 VOD 분쟁과 관련해 기자에게 이같은 불만을 쏟아냈다. 지상파와 케이블TV업계가 시청자를 볼모로 ‘줄다리기’하는데도 방송통신위원회 등 정부가 팔짱만 끼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실제 디지털 케이블TV를 신청한 전국 760만 가구에서는 신년 초부터 ‘무한도전’ 등 지상파의 각종 인기 프로그램의 최신 VOD 콘텐츠는 보름 가까이 다시 볼 수 없었다. 이달 들어서도 한차례 중단됐다 5일 만에 재개됐다. 하지만 언제 또다시 끊길지 모르는 판국이다.
이 싸움판에서 정부의 존재감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케이블TV 업계가 VOD 중단한 지상파에 맞대응해 실시간 방송광고를 차단하겠다고 할 때서야 중재하는 수준이다. 파국만 피하고 보자는 식이다. 정부가 이처럼 소극적인데는 VOD를 ‘방송’이 아닌 ‘부가 서비스’로 보는 경향이 짙어서다. 굳이 VOD 협상까지 정부가 나서야 하느냐는 볼 멘 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 이번 VOD 분쟁의 밑바닥에는 지상파들과 유료방송 업계의 해묵은 재송신료 갈등(CPS)이 깔려 있다. VOD 공급가격에 대해 어느 정도 합의해 놓고도 협상이 지체되는 이유다. 매년 반복되는 재송신료 분쟁으로 진행 중인 법정 소송만 한두건이 아니다. 방송 산업내 반목은 극에 달해 있고, 소비자들은 번번이 시청권 침해 위협을 받고 있다. 정부가 방송 산업의 건전한 생태계 발전과 이용자 보호를 명분으로 각종 규제 정책을 내놓으면서도 정작 분쟁의 주된 불씨를 끄는 데는 소홀해왔다는 지적이다.
‘심판자’나 ‘중재자’로서의 정부 역할은 위촉즉발 상황에서 ‘싸우지 말라’고 떼어 놓는 일이 다는 아니다. 양측 모두 공정한 테이블에서 협상할 수 있도록 룰과 원칙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유료방송사들은 지상파 실시간 방송채널을 마음대로 옮기거나 뺄 수 없다. 이것만으로도 공평한 협상을 기대할 수 없다. 지상파들의 주장대로 가격협상을 민간 자율에 완전히 맡겨야 한다면, 수요자에게도 가격이 맞지 않을 경우 콘텐츠를 끊을 권리를 줘야 합당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