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닮는다'는 말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평소 가까이 지내는 친구, 동료, 이웃 간에 마이크로바이옴(장내미생물)이 전이돼, 신체를 구성하는 미생물까지 닮아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함께 살거나 가족 관계가 아니어도 유전적 유사성이 생길 수 있다.
니콜라스 크리스타키스 미국 예일대 네트워크사이언스연구소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외부로부터 고립된 마을에 거주하는 성인 1700여명의 장내미생물 데이터를 분석, 비(非) 가족 관계인 지인 사이에서도 장내미생물 교류가 일어날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20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연구를 이끈 크리스타키스 교수는 의사 출신 사회학자다.
장내미생물은 '제2의 유전체'라 불릴 정도로 신체의 면역체계와 신진대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인간의 몸속에는 수 만 종의 미생물이 사는데 유익균과 유해균의 균형이 각종 알레르기, 대사질환부터 우울증, 자폐 등 정신질환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장내미생물의 구성은 유전적, 환경적 요인에 모두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람마다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미생물 군집이 다를 수 있지만, 식습관·약물 복용·거주 환경 등 다양한 요소도 미생물의 구성을 크게 변화시킨다. 이 때문에 같은 유전체를 가진데다 대부분의 생활 습관을 공유하는 가족 간 장내미생물은 가족 외 구성원에 비해 유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함께 살지 않는 비(非) 가족 형태에서도 장내미생물 교류가 나타날 수 있음을 확인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라면 친구, 동료, 이웃 등 어떤 소속 집단이라도 장내미생물 구성이 점점 닮아간다. 심지어 접촉이 그리 잦지 않은 '친구의 아는 사람' 등 제3자와의 관계에서도 장내미생물이 공유될 수 있다.
연구팀은 2019년 온두라스의 18개 외딴 마을에 거주하는 성인 1787명을 대상으로 이들의 장내미생물 상세 데이터를 종합 분석했다. 총 2543종의 미생물과 30만 9137종에 이르는 서로 다른 균주가 나왔다. 이중에는 일부 사람에게서만 발견되는 특이한 유전적 변이체도 포함됐다.
이어 참가자 각각의 사회적 관계를 조사해 네트워크화한 뒤, 관계에 따른 장내미생물의 유사성을 확인했다. 그 결과, 가족이 아닌 사람들 간에도 지금까지 예상했던 것보다 높은 유사성이 도출됐다. 같은 장내미생물을 공유하는 비율은 같은 가구에 소속된 사람들 사이에서 13% 정도로 가장 높게 나타났지만, 같은 마을에 거주하는 이웃, 친구 등 비 가족 관계에서도 공유 비율이 7.8%에 이르렀다. 반면, 완전히 떨어진 다른 마을에 사는 사람의 경우 공유율이 2% 정도로 낮았다.
연구팀은 "사람들의 식사 방식과 인사 방법에 따라 장내 미생물의 공유 비율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뺨에 키스하는 인사 방식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경우 장내미생물이 전이될 확률이 12.9%로 가장 높았다. 또 함께 식사하면 동일한 음식을 같이 섭취할 확률이 높아, 이때도 유사한 장내 미생물 군집이 형성될 수 있다. 주변인과의 교류가 적은 사람의 경우 다른 집단에 비해 장내 미생물의 유사성이 낮게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여성 간 장내 미생물 공유 비율이 남성보다 높을 거란 예상과 달리, 성별 간 유의미한 차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1차 조사로부터 2년이 지난 2021년, 연구팀은 4개 마을에 거주하는 301명의 주민을 대상으로 또다시 장내미생물을 분석했다. 그 결과, 서로 친밀한 관계에 있던 사람들의 장내 미생물 유사도가 2년 전에 비해 더 높아졌다.
연구팀은 "사람들은 장내미생물이라는, 우리가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서로 연결돼 있을 수 있다"며 "장내 미생물은 (일반적으로 사회적 관계를 분류하는) 경제적 지위, 교육 수준, 종교 등의 사회적 지표를 넘어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를 예측하는 가장 강력한 변수"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