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연구의 비결은 과학자의 자율성에 있습니다. 철저한 관리·감독이 아니라 호기심을 존중할 때 기초과학이 성공합니다."
2023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모운지 바웬디 미국 MIT(매사추세츠공대) 화학과 교수는 23일 경남 창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처럼 말했다. 바웬디 교수는 2025 대한화학회 추계 학술 발표회의 기조강연자로 초청받아 한국을 방문했다.
바웬디 교수는 양자점(퀀텀닷) 합성법을 개발한 공로로 2023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양자점은 입자의 크기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나노입자다. 양자점의 발견으로 인류는 자연의 색깔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게 됐다. TV, 모니터 등으로 흔히 접하는 QLED(양자점 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가 대표적이다.
1993년 바웬디 교수는 양자점 입자를 균일하고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합성법을 최초로 발표했다. 양자점의 원리는 알려졌었지만, 상용 수준의 입자를 생산할 방법이 없던 때였다. 바웬디 교수는 끓는 기름에 계면활성제를 섞어 양자점을 만드는 독창적 방법을 고안했다. 그는 "과학자로서의 자율성이 성과의 원천"이라고 했다.
바웬디 교수는 "기초과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호기심"이라며 "지금 우리가 쓰는 소자, 광섬유, 태양광, 전자레인지 같은 기술은 과학자가 호기심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한 연구실에서 나왔다"고 했다.
그는 10여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미국 뉴저지 벨연구소를 예로 들며 "연구소의 성공 비결은 따로 없다. 과학자가 연구 주제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연구 관리책임자 역시 (과학의 본질을 이해하는) 과학자였기 때문에 이같은 자율성이 보장될 수 있었다. 관리·감독과 지침을 제시하기보다 과학자의 호기심과 본능적인 추구를 허용할 때 기초과학이 더 크게 발전한다"고 했다.
정부나 기관이 과학자에게 연구 목표와 지침을 선제시하는 하향식(Top-down) R&D(연구·개발) 시스템에 대해서는 "유연성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과학은 선형적(lineal)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다양한 연구를 하던 중 생각지 못한 발견을 하고 다른 곳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며 "유연함이 없는 목표 지향성은 오히려 효율성을 떨어트린다. 동그라미라고 믿었던 게 사실 동그라미가 아닐 수 있는데, (목표 때문에) 그 틀에 맞추려고 한다면 실패한다"고 했다.
한편 바웬디 교수는 과학기술 연구에 AI(인공지능)를 접목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나도 연구실에서 AI를 활용하지만, 이를 과하게 이용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그는 "LLM(거대언어모델)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도 과학자의 교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연구에 활용될 수 없다"며 "AI는 연구를 위한 도구다. AI가 과학의 혁신과 발전을 대체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