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슈퍼컴퓨터 6호기 '한강'이 4년여의 기다림 끝에 첫 모습을 드러냈다.
2일 대전 유성구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본원. 국내외 주요 산·학·연 관계자의 눈이 국가슈퍼컴퓨팅센터 건물 2층에 설치된 슈퍼컴 6호기로 쏠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직위를 막론하고 저마다 슈퍼컴 근처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그만큼 연구계가 기다려 온 순간이라는 뜻이다.
슈퍼컴 6호기 한강은 이날 공식 가동을 시작했다. 슈퍼컴은 대용량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분석·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계산 속도가 일반 컴퓨터에 비해 수백에서 수천 배 빠르다. 국내 연구자가 개별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대규모 계산과 데이터 분석을 지원하는 핵심 연구 인프라다.
지난 8년간 과학기술 R&D(연구·개발)의 기반이 돼 온 5호기 '누리온'의 뒤를 잇는 6호기에는 CPU(중앙처리장치) 9936개와 엔비디아 GPU(그래픽처리장치) 'GH200' 8496장이 실렸다. CPU가 거대 계산과학에 쓰인다면, GPU는 초거대 AI 연구에 최적화됐다. 복잡한 다물리계 연산, 정밀 시뮬레이션부터 AI 모델 개발까지 전방위로 수행할 첫 슈퍼컴인 셈이다.
성능 면에서도 전 세계 슈퍼컴 최상위 10위권에 거뜬히 들 것으로 예상된다. 6호기의 이론 성능은 614페타플롭스(PF·1PF는 1초당 1000조번 연산할 수 있는 컴퓨터 성능)다. 저장공간은 205페타바이트(PB·1PB는 1024테라바이트)에 이른다.
무엇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커넥션 네트워크(상호연결망)를 자랑한다. 상호연결망은 슈퍼컴을 구성하는 CPU와 GPU들을 서로 연결해 문제를 나눠 풀 수 있게 하는 '소통망'이다. 상호연결망이 부실하면 계산 결과를 주고받는 속도 자체가 느리기 때문에, 최신 GPU도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6호기는 400Gbps 이상의 초고속 네트워크 환경을 제공한다. KISTI에 따르면 세계 10위권 슈퍼컴 중 이 정도의 네트워크 대역폭을 채택한 슈퍼컴은 미국의 '이글'(Eagle) 1대뿐이다.
'AI 열풍'에 난관 겪은 슈퍼컴 6호기… 공식 개시는 언제?
이같은 고성능을 갖추고 가동하기까지 수많은 난관이 있었다. 6호기는 2022년 8월 총사업비 2929억원으로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지만 조달 과정에서 4차례 유찰됐다. 생성형 AI가 본격화하며 GPU 가격이 폭등해, 기존 사업비로 입찰하려는 기업이 없어서다. 결국 2024년 11월, 적정성 재검토를 거쳐 총사업비가 4482억원으로 변경됐다. 이에 HPE(휴렛 팩커드)가 입찰에 응했고, 2025년 5월 3825억원 규모로 최종 계약을 맺었다.
6호기는 12월부터 산·학·연에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용 자원의 55% 내외를 계산과학 및 AI, 데이터분석 연구자에게 제공하고, 30%를 국가전략 R&D 과제 선정 사업자에게 분배한다. 나머지 15%는 중견·중소기업의 제품, 공정 개발에 쓰인다. 공식 개시에 앞서 시범서비스를 64개 기관 189개 과제를 대상으로 이달 22일까지 제공한다.
이날 개소식에 참석한 하정우 국가AI전략위원회 부위원장은 "6호기는 첨단 바이오, 미래 에너지, 우주와 같은 국가의 미래가 걸린 난제를 AI로 푸는 'K-문샷 프로젝트'의 기반이 될 것"이라며 "전국의 학생과 연구자가 연산 자원을 부담 없이 쓸 수 있도록 살피겠다"고 말했다.
이식 KISTI 원장은 "국내 연구자의 도전적인 연구를 뒷받침하는 기반이 될 수 있도록 그간 슈퍼컴 운영 경험을 토대로 이용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