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학습시키기 위한 데이터 부족
데이터 근친교배로는 AI 모델 붕괴
제조·의료 데이터로 AI 경쟁력 키워야
인공지능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제 더 이상 이론의 여지가 없다. 세계 인구 여덟 명 중 한 명이 인공지능을 매일 쓰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을 '똑똑한 만능의 비서이자 동료'로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든다. 인공지능을 구현하기 위한 컴퓨터 장비를 갖추는 데에 비용이 필요하다. 이 고가의 장비를 운영하고 인공지능을 학습시키기 위해서 전기료, 컴퓨터 냉각비용 등 다시 막대한 비용이 발생한다. 또한, 인공지능이 똑똑해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텍스트와 사진, 동영상, 프로그램 코드 등을 학습해야 하며 여기에도 비용이 필요하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더 큰 문제는 인공지능을 학습시키기 위한 데이터가 늘 부족하단 점이다. 연구자들은 이 부족한 데이터들을 만들기 위해서 다시 인공지능을 이용하고 있다. 즉, 인공지능으로 학습 데이터를 만들고 이 데이터를 이용해서 다시 인공지능을 학습시키고 있다. 이런 현상을 '데이터 근친교배(data inbreeding)'라고 부른다.
세계사에는 한때 유럽을 호령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이야기가 있다. 16~17세기 무렵, 유럽의 대부분을 손에 넣었던 이 가문이 몰락한 이유는 거듭된 근친혼 때문이었다. 친척끼리의 결혼으로 태어난 합스부르크 왕가의 자녀들은 유전병으로 대부분 허약했고, 결국 가문은 몰락하고 말았다. 역사의 교훈이 말해주듯, 자신이 만들어낸 데이터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에게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인공지능이 기존의 오류와 편향, 표현의 획일성을 더 확대시키고 있는 것이다. 일본 이화학연구소 연구진은 인공지능이 생성한 이미지가 학습 데이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수록 결과물의 질이 떨어진다는 점을 확인했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연구진 역시 인공지능이 생성한 데이터로 반복 학습한 인공지능에서 생물의 근친교배와 유사한 '모델 붕괴(model collapse)'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런 결과물로는 인공지능이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인공지능 기업들은 이 점을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여러 인공지능 기업들은 언론, 출판, 온라인 커뮤니티, 연구기관과 데이터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전문가가 검증한 데이터와 과학 실험 데이터, 의료·제조·금융 등 산업 현장의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투자하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이 등장하기 이전 출간된 종이책과 오래된 문헌까지 다시 디지털화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 사람이 생산하고 검증한 원본 데이터의 가치가 되려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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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경쟁력은 더 이상 GPU의 개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아무리 뛰어난 GPU 기반 슈퍼컴퓨터와 거대 인공지능 모델이 있다 해도 이들을 학습시킬 데이터가 부족하거나 품질이 나쁘면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이야기다. 바꾸어 말하면,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데이터와 산업 데이터, 공공 데이터를 축적하고 공유할 수 있다면 같은 인공지능 모델로도 훨씬 높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개발 역량과 제조 현장, 의료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는 단순한 부산물이 아니라 미래 AI 경쟁력을 좌우할 전략 자산이다. 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품질을 관리하며 연구자와 산업계가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은 AI 모델을 개발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슈퍼컴퓨터가 엔진이라면 데이터는 그 엔진을 움직이는 연료다. AI 시대의 승부는 결국 얼마나 좋은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축적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그것이 AI 경쟁력의 새로운 원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