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분(兩分)'.
2023년 현재 우리나라 보건 의료계가 그야말로 둘로 쪼개졌다. '간호사', 그리고 간호사를 제외한 '비(非) 간호사'로 말이다.
26일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13개 보건의료단체들은 26일 서울 여의도공원 앞 여의대로에서 '간호법·의료인면허법 강행 처리 규탄 총궐기대회'를 개최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로 직회부된 '간호법 제정안'과 '의사면허 취소법'의 국회 통과를 막기 위한 투쟁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보건복지의료연대'란 이름으로 뭉친 13개 단체는 ▶대한의사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대한방사선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보건의료정보관리사협회 ▶대한응급구조사협회 ▶대한임상병리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한국노인복지중앙회 ▶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 ▶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 ▶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 ▶한국재가장기요양기관협회로, 회원 수만 합해도 약 400만 명에 달한다. 이들 가운데 주최 측 추산 5만 명, 경찰 추산 1만 명이 총궐기대회에 모였다. 과연 이들이 거리에까지 나서면서 관철하려는 주장은 뭘까.
첫째는 '간호법 제정 필사 반대'다. 이날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은 "국민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국회와 정치권이 오히려 간호법과 의료인 면허 취소 확대법을 본회의 직회부 표결로 강행 처리해 대한민국 보건의료체계의 붕괴를 앞당기고 있다는 점에서 분노와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 상황을 '아직 추운 겨울'에 빗대며 "빼앗긴 들에 봄을 기다리는 간절한 심정"이라고 표현했다. 이 협회장은 "모든 보건의료직역이 상생할 수 있는 법안을 얼마든지 제정할 수 있는데도 이를 외면하며 국민 건강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는 행태에 우리 400만 보건복지의료연대는 강력한 유감과 저항의 뜻을 표명한다"며 "간호법이 폐기될 때까지 총력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불거진 'PA간호사' 논란에 따르면 대형병원들은 전공의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간호사에게 전공의의 업무 일부를 맡기며 PA간호사의 존재를 쉬쉬해왔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간호법 제정의 취지 중 하나가 '간호사의 과다 업무를 막기 위한 것'이다. 간호사들은 과다 업무의 대표적인 예로 'PA간호사로서의 업무'를 꼽는다. 이때문인지 병원사에선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간호사의 편을 들지 않는 모습이다.
이날 윤동섭 대한병원협회장은 "간호법은 간호사를 제외한 모든 보건의료인이 반대한다"며 "직역 간 업무범위 침탈과 보건의료체계의 혼란·갈등을 조장하는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윤 협회장은 "'보건의료에서 간호를 별도로 떼어낼 수 있다'는 대한간호협회의 주장만을 반영한 간호법이 제정된다면 환자의 안전 측면에서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국회는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료기사'도 간호법 제정을 반대했다. 현재 의료기사엔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치과기공사 ▶치과위생사 등 6개 직종이 해당하며, 이들은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의 저촉을 받는다. 이날 장인호 대한임상병리사협회장은 "의료는 다양한 전문 직종들이 원팀이 돼 각자의 면허 범위에서 정해진 일을 수행하는 본연의 특성이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장 협회장은 이어 "기존 보건의료라는 통합 협업 체제에서 한 가지 직역만 분리해 따로 규정하는 게 과연 합리적이고 타당한 것인가"라며 "(간호법 제정으로) 직역 간 업무 영역의 경계가 무너지면 의료현장은 엄청난 혼란을 가져와 의료의 질 저하를 불러일으킬 것이며,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간호조무사도 간호법 제정 반대 물결에 올라탔다. 곽지연 대한간호조무사협회장은 "간호사에게만 온갖 특혜를 주는 간호사법은 지역사회에서 간호사에게 날개를 달아줘 수년간 이어온 의료의 기본 틀을 바꾸는 것으로, 자칫 의료체계의 대혼란과 붕괴를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간호법에 적힌 간호조무사의 응시 자격에 대해 언급했다. 곽 협회장은 "(간호법엔)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 자격을 고졸로 학력을 제한한 위헌적 요소가 그대로 남아 있다"며 "어찌해서 간호조무사를 비롯한 약소 직역에 대해서는 처우 개선과 존중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홍옥녀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명예회장도 이날 격려사와 함께 가두시위에 나섰다. 홍 명예회장은 "지금 간호법은 절차적 문제는 우선 내버려 두더라도 내용을 살펴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엉터리 법"이라고 꼬집었다. 간호조무사는 간호인력으로, 간호법 당사자에 해당하는 데도 간호법에는 간호조무사에 대한 차별과 불합리한 내용만 담겼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홍 명예회장은 "간호조무사는 왜 시험응시 자격을 특성화고와 간호학원으로 제한받아야 하는가"라며 "응시 자격에 대해 학력 상한 제한이 있는 직종은 간호조무사밖에 없다. 간호법에서 간호 인력 처우 개선을 논한다면서 간호조무사에 대한 차별을 유지하는 모순이 지금 간호법에 버젓이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에 대해 대한간호협회는 17일 성명을 내고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간호법안의 간호조무사 응시 자격 규정을 위헌이라고 주장했다"며 "그러나 이와 동일한 현행 의료법 조항에 대해 위헌을 주장하며 제기된 헌법소원심판이 2016년 '각하'로 결정된 사실조차 모르면서 어떻게 위헌을 함부로 운운할 수 있는지 법사위 위원으로서의 자질이 심히 의심된다"고 반박한 바 있다.
둘째는 '금고형 이상을 선고받은 의사의 면허 취소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 반대'다. 의료법 개정안은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0년 9월 28일 대표로 발의한 법안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자'는 의료인이 될 수 없거나 의료인 면허를 취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 의료법에 근거해 의사 면허를 취소할 수 있는 사유는 ▶정신질환자 ▶마약중독자 ▶금치산자 ▶면허 대여 ▶허위진단서 작성 ▶진료비 부당 청구 등에 한했다.
이에 따르면 의사가 살인, 강간 등 성범죄 등 중범죄를 저질러도 의사 면허는 유지된다. 실제로 2011년 만삭의 아내를 살해한 전공의 A씨는 징역 20년 형을 받았지만 의사면허는 살아있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5~2019년 의사 범죄 현황 가운데 살인·강도·절도·폭력은 2867건, 성범죄는 613건이다. 또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2017~2020년 성폭력 범죄자 직업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문직 성폭력 범죄자 5569명 가운데 의사가 602명(10.8%)으로 가장 많았고 예술인 495명, 종교가 477명, 교수 171명, 언론인 82명, 변호사 50명 순이었다.
이날 윤동섭 대한병원협회장은 의료인 면허 취소법을 확대하는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윤 협회장은 "의료인도 평범한 인간이다. 실수도 할 수 있다. 교통사고를 냈다고 의료인이 환자의 곁을 떠나야 한다는 게 과연 합당한 것인가"라며 "의료 관련 범죄뿐만 아니라 교통사고 등 모든 범죄에 대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5년 이상 의료인 면허가 취소될 수 있는 의료법 개정안은 개인의 자유와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으로 부당하다"고 평가했다.
의료법 개정안의 '반대편 진영'엔 치과의사들도 합류했다. 박태근 대한치과의사협회장은 "의료인이 되기 위해 10년 이상 학업·수련하고 있고 온몸과 마음을 쏟아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며 "의료관계법을 위반한 것도 아닌 다른 이유로 왜 우리가 의료업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의료인 면허 취소법은 우리 의료인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악법(惡法)"이라며 "그런데 간호사는 이 법의 적용받지 않는다고 한다"고 말했다.
박 협회장은 "간호법이 통과되면 간호사는 면허·자격에 대해 '간호법이 우선'이라고 한다. 의료법의 적용받지 않는다고 한다"며 "그래서 간호법과 의료인 면허 취소법이 나란히 패스트트랙을 탈 수 있었나 보다"고 주장했다. 간호사는 현 의료법상 '의료인'이다. 의료인엔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간호사 ▶조산사가 해당한다.
이날 총궐기대회에선 보건복지의료연대 대표들의 투쟁사와 연대사, 결의문 낭독, 가두행진이 이어졌다. 장인호 대한임상병리사협회장, 강용수 대한응급구조사협회장, 최운창 전라남도의사회장, 조영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전지부 회장은 삭발 투혼을 보이며 향후 두 법안에 대한 강력한 투쟁 의지를 내비쳤다.
앞서 간호법 제정안의 '뿌리'는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간호사법'(열린우리당 김선미 의원 대표 발의) 제정안이 발의됐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2005년 8월 '간호법'(한나라당 박찬숙 의원 대표발의) 제정안과 2019년 4월 '간호법'(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 대표발의) 및 '간호·조산법'(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 대표발의) 제정안도 발의됐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이후 2021년 3월 '간호법'(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 대표발의, 공동발의 49인), 또 다른 '간호법'(국민의힘 서정숙 의원 대표발의, 공동발의 33인), '간호법·조산법'(국민의당 최연숙 의원 대표발의, 공동발의 33인)이 발의된 이후 그해 4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상정되면서 간호법 제정안은 속도를 냈다. 올해 2월 9일, 간호법 제정안은 의사면허 취소법과 함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로 직회부되면서 의료계 내부의 반발을 샀다.
한편 대한간호협회(이하, 간협)는 지난 10일 성명을 통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2월 9일 전체회의를 열고 간호법 등 민생법안 7건에 대해 국회 본회의 부의를 결정한 것을 적극적으로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 성명서에서 간협은 "간호법은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활동할 간호사 등 인력을 양성하고 지속해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국민의 건강과 환자 안전 증진에 기여하고자 것"이라며 "보건복지위 전체 회의에서 간호법의 국회 본회의 부의를 결정한 것은 초고령사회에 지속해서 늘어나는 간호 수요와 코로나19 팬데믹 등 주기적 공중보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숙련된 간호인력의 확보와 적정 배치, 지속 근무 등을 위한 간호법이 필요하다는 국민 여론에 부응하기 위함이라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간협은 "국회 본회의에서 간호법이 통과되면 앞으로 이를 토대로 우수한 숙련된 간호인력의 양성과 적정 배치, 그리고 처우 개선을 통해 간호인력이 계속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국민의 건강 증진과 환자 안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대한간호협회는 국민 건강과 환자 안전을 위한 간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날을 학수고대하며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해 간호법 수호 의지를 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