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여의정협의체에 발을 담근 대한의학회와 KAMC(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를 향해 "알리바이용 협의체에서 나오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대통령실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 대해서도 '허수아비 위원회'라고 비꼬며 "정부가 필수의료를 파탄내려 한다"면서도 의정 갈등에 대해서는 별다른 해법이나 투쟁 로드맵을 내놓지는 않았다. 비대위가 '내년도 의대 모집 중지'를 외친 만큼, 이 요구를 정부가 들어주지 않으면 차기 회장을 선출하는 내년 1월 초까지는 의정 대화 없이 대정부 메시지만 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8일 의협 비대위는 전날(27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저녁 7시30분부터 의료 정상화를 위한 2차 회의를 비공개로 열고, 이날 회의에서 의결한 내용을 28일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브리핑문에 따르면 의협 비대위는 '여의정 협의체'부터 저격했다. 의협은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는 2025년 정원 문제까지 의제로 올리겠다며 의료계의 참여를 요청했다"며 "이후 한 대표는 여의정협의체에 제대로 참석도 하지 않더니 지난 26일, 경북 국립의대 신설을 강력하게 지지한다고 말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지역의료 살리기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의사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게 병원을 지원하고 충실히 만드는 것이지 의과대학 신설이 아니"라며 "한동훈 대표의 발언은 여의정협의체가 '알리바이용 협의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진정성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알리바이용'으로 빗댄 건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의협과 보건복지부 양자 협의체인 의료현안협의체를 연상해서다. 의협은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대 정원 증원 규모에 대해 전혀 논의하지 않았는데도 정부가 '의협과 19차례나 협의했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한다. 당시 복지부는 협의체 회의록을 파기했다고 밝혀, 협의체에서 의협과 복지부가 의대 정원에 대해 논의했다는 내용은 물증으로 뒷받치지 못하게 됐다.
의협 비대위는 "정부는 이렇게 알리바이용 협의체를 만들어 여론조작의 도구로 악용했는데, 또다시 정부와 국민의 힘은 '여의정협의체'란 것으로 국민의 눈을 가리고 있다"며 "'협의체'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국민에게 착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들은 2차 회의에서 최근 대구가톨릭대병원에 대한 법원 판결을 인용하며 '필수의료 죽이기'라고 규탄했다. 해당 사건은 지난해 3월1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19 구급 대원이 대구가톨릭대병원에 전화해 '후두부 부종 환자 진료가 가능한지' 문의했는데, 병원 의사가 "신경외과 의사가 없어 머리쪽 진료는 안 되고 다른 응급실 진료는 가능하다"고 답했다. 이에 구급대원은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심정지가 발생해 사망했다.
같은 해 7월21일 복지부는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의료를 거부했다"며 시정명령 및 보조금 지급 중단 처분을 했고, 대구카톨릭대병원이 취소소송을 제기했는데, 결국 지난 9월26일 법원은 원고(병원) 패소 판결을 선고했다. 이를 두고 의협 비대위는 "앞으로 응급구조사가 전화로 후두부 손상 환자 진료가 가능하냐고 물어 오면 무조건 환자를 데리고 오라고 해야 하나? 무조건 환자를 받아 진료하다 문제가 생기면 거액의 배상 판결을 받고 경찰과 검찰에 불려 다녀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이런 판결이) 전공의들이 진료 현장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라며 "복지부는 이런 핵심적 문제는 외면하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사람들로 채운 대통령실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라는 '허수아비 위원회'를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다"고 토로했다.
비대위는 전날 2차 회의에서 의결한 내용으로 △대한의학회와 KAMC가 알리바이용 협의체에서 나올 것을 요청하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구성한 허수아비 위원회(의료개혁특별위원회)로 필수의료 파탄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정부가 모순된 의료정책을 해결하려는 진정성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필수의료는 갈수록 파탄 날 것임을 정부에 경고한다고 했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는 1차 회의(11월20일)에 이어 2차 회의에서도 경고성 메시지만 되풀이할 뿐 의정갈등의 풀기 위한 별다른 해법이나 투쟁 방식을 내놓지는 않았다. 1차 회의 후 의협 비대위는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입장을 적극 지지한다며 △의사집단 전 직역을 하나로 모아 정부의 의료 농단 저지를 위해 함께 싸울 것이고 △2025년 의대 모집을 중지할 것 등을 촉구한다는 메시지를 냈지만, 투쟁 방식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이에 대해 박형욱 의협 비대위원장은 "전공의·의대생은 물론 의대 교수, 개원의, 봉직의 등 의료계 전 직역이 투쟁 방식을 논의하고 의견을 모아 정부의 의료 농단 저지를 위해 함께 싸울 것"이라는 원론적인 대답만 내놨다.
한편 의협은 다음 달 2~3일 차기 회장 후보 등록 절차를 거쳐 내년 1월 초께 신임 회장을 선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