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 사태가 장기화된 가운데, 환자 중심의 보건의료 환경 조성이 시급하단 목소리가 나온다. 환자중심 보건의료체계를 구축, 투병 환자를 지원하고 혁신신약(First-in-class)의 국내 허가와 환자 접근성을 높이는 등 정부 차원의 정책 개선이 필요하단 요구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의 '보건의료혁신 세미나'의 기조발표에서 "의료법·약사법·간호법은 제정됐지만 환자 투병과 권익 증진을 위한 법은 국내에 없다"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환자기본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세미나에선 한·미 정부와 국회·산업계와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등 관련 주요 관계자 150여명이 참석, '한국 헬스케어 산업 미래를 위한 환자 중심 보건의료 생태계 구축·혁신 촉진 방안'을 주제로 전반적인 논의가 이뤄졌다.
발표자로 나선 안 대표는 "의학과 약학처럼 의대 교육 측면에서 환자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환자학'이 필요하다"며 "또 국내에 환자단체의 법적 정의가 없는데, 환자기본법을 통해 이를 정의하고 환자의 법정위원회 참여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환자단체는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과 소비자기본법에 기반한 비영리민간단체·소비자단체로 법정위원회에 참여 중이다. 법적 근거가 없어 실제 환자 목소리가 필요한 위원회에도 환자단체가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잖다.
정부는 관련 지원 강화를 검토 중이라는 입장이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이중규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국장은 "특히 약가결정 관련 환자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해달라는 요구를 인지하고 있다"며 "반영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구체적인 정책에 녹이기에는 현실적으로 쉽진 않은 상황이다. 다만 내부적으로 개선점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중증질환과 희귀난치질환·소아질환 등 관련 혁신신약의 적극적인 도입이 필요하단 의견이 나왔다. 이영신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부회장은 "(신약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아도 한국에 들어오지 않거나, 도입돼도 미허가 또는 급여 등재가 안 될 경우 신약의 의미가 없다"며 "글로벌 신약 100개가 상업화됐다고 가정했을 때, 시장에 나온 첫해 한국에 들어오는 신약이 5개라면 일본·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엔 30개 정도가 도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안기종 대표는 "생명과 직결된 신약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허가를 받더라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들은 급여 등재만 기다리다 사망하는 사례가 많다"고 비용 문제를 언급했다.
박한라 한국BMS제약 시장접근&정책(Market Access&Policy) 전무는 "치료가치를 이해하기 위해선 환자·가족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며 "이들은 질병에 대한 실제 경험 정보를 제공한다. 캐나다·영국·호주에선 신약 가치평가 중 환자 의견을 공식적으로 듣고 반영하는 과정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에선 전체 의약품비에서 차지하는 신약 비중이 60~70%이지만 한국은 13.5%에 불과한 상황"이라며 "혁신신약 가치 반영을 위한 지출 구조 개선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신약 진입 속도 개선에 대해 정부는 식약처 허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급여평가·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 협상을 동시 진행하는 '허가-평가-협상 병행' 2차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앞서 건보공단은 지난달 항암제 5개와 희귀질환치료제 5개, 총 10개 품목이 신청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국장은 "2차 시범사업 관련 이번 주 중 심의가 이뤄질 예정"이라며 "앞으로 허가·평가·약가협상 단계를 최대한 단축해 환자의 관점에서 필요한 방향으로 지원을 강화하겠다. 특히 약가협상 측면에서 (환자단체의) 여러 요구사항을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