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이 '구조조정' 신호탄? 의사·간호사 '불안'

박정렬 기자
2024.12.03 16:23
주요 상급종합병원 일반병상 감축 현황/그래픽=김지영

우리나라 최상급 의료기관인 상급종합병원을 중증·응급·희귀질환 중심으로 재편하는 구조전환 사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의사·간호사 등 소속 의료진이 고용 불안과 업무 과중의 '이중고'를 우려하고 있다. 경증 진료 축소와 병상 수 감소로 인한 인력 조정의 '칼바람'이 예상되면서다. 전공의 복귀가 불투명한 상황에 강경파 일색의 대한의사협회(의협) 차기 회장 선거도 다가오고 있어 병원 내부의 혼란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3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형병원의 과중한 전공의 의존도를 낮추고 중증·응급·희귀 질환 중심으로 의료전달체계를 개편하는 내용의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에 전체 47곳 중 42곳(90%, 11월 19일 기준)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참여 의료기관은 중환자실, 특수병상, 소아·응급·고위험분만 등 유지·강화가 필요한 병상을 제외한 일반병상을 5~15% 감축해야 한다. 서울아산병원 336개, 서울대병원 187개, 서울성모병원 111개 등 총 3186개 병상이 사라질 전망이다. 반면 중증 진료 비중은 현재 50%에서 70% 이상까지 늘린다.

정경실 보건복지부 의료개혁추진단장은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료개혁 추진상황 브리핑을 열고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사업' 추진방안에 대해 설명했다. 정 단장은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의 목표는 먼저 중증·응급·희귀질환 중심으로 진료하는 '중환자 중심 병원'으로서 기능을 확립하는데 있다"며 "전공의의 과도한 근로에 의존하던 관행을 개선하고 밀도있는 수련을 제공해 임상과 수련을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고 밝혔다./그래픽=(서울=뉴스1) 김초희 디자이너

복지부는 상급종합병원이 안정적으로 구조전환을 할 수 있도록 향후 3년간 매년 3조3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중환자실, 입원실(2~4인실), 중증 수술, 24시간 진료 지원 등에 대한 수가를 인상할 방침이다. 병상 감축이 완료된 곳만 상향된 수가를 지원받을 수 있어 너나없이 '병상 줄이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수도권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병원이 클수록 줄이는 병상이 많고, 인력 재배치 등 조정 규모도 클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병원이 의료의 '양'(환자 수)만 볼 뿐 '질'(중증도)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이윤옥 세브란스병원 노조 고충처리부장은 지난주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주제의 토론회에서 "예를 들어 간호사 3명이 30개 병상을 보던 데서, 구조전환 사업으로 10~15% 줄어 26개 병상이 되면 2.6명의 간호사 배치돼야 하지만 병원은 2명만 준다"며 "이러면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는 늘고 중증·응급도는 (정부 계획대로) 올라 노동 강도는 높아진다"고 꼬집었다.

서울 시내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사진=(서울=뉴스1) 김도우 기자

직원 동의와 참여 없이 진행되는 '깜깜이' 인력 조정도 여전한 문제다. 전공의 집단 이탈 후 일손을 채우기 위해 PA(진료지원) 간호사를 무분별하게 지정·배치한 것과 유사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윤옥 부장은 "신촌, 강남 두 곳에서 총 370여개 병상이 축소되는 데 이는 종합병원 하나가 사라지는 수준"이라며 "당연히 인력과 업무 강도에 많은 영향을 미칠 텐데 직원들은 무엇이 어떻게 변하는지 전달이 안 돼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서울의 한 빅5 병원 간호사는 지난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게시글을 올려 "병원측과 상급자가 면담하더니 나이트(밤~새벽) 인력이 4명에서 3명으로 줄었다"며 "환자(병상) 줄었다고 눈에 불을 켜고 인력을 줄인다. 중환자들이 많은데 병원이 '숫자 놀이'를 한다"고 반발했다.

간호사뿐 아니라 의대 교수들도 구조전환의 영향권에 놓여있다. 중증도가 낮은 가정의학과,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등 일부 진료과는 상급종합병원에서 입지가 지금보다 좁아질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의사들이 대학병원을 떠나게 될 경우 전공의 교육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복지부는 "현행 중증환자 분류체계를 단순히 상병 기준이 아닌 연령, 기저질환 등 환자의 상태를 반영하는 새로운 분류 기준으로 전환할 것"이라며 "3년 지원사업 기간 중 의료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면서 지속 발전시켜 나갈 예정"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3일 오후 서울의 한 대학병원 게시판에 전공의 모집 포스터가 붙어 있다.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4일부터 수련병원별로 내년 상반기 레지던트 1년차 총 3천500여 명의 모집을 시작하고, 9일까지 원서를 접수한 후 필기와 면접을 거쳐 19일 합격자를 발표한다. 이른바 '빅5' 병원의 경우 서울대병원 105명, 세브란스병원 104명, 서울아산병원 110명, 삼성서울병원 96명, 서울성모병원 73명을 각각 모집한다./사진=(서울=뉴스1) 김진환 기자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과 의협 회장 선거, 2025년 상반기 전공의 모집 등이 맞물리며 병원 현장의 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후보자 모집이 마감된 차기 의협 회장 선거는 강희경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대위원장, 김택우 전국광역시도의사협의회장, 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 주수호 전 의협 회장, 최안나 의협 기획이사 겸 대변인(가나다 순) 등 5명이 등록했다. 강 교수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이 '강경파'로 분류되는 만큼 투쟁 기조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오는 4일부터 내년도 상반기 전공의 모집 전형이 시작되지만 복귀율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의료공백 상황이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필수의료 분야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정부가 추진하는 '전문의 중심 병원' 구축과 의료전달체계 개편을 위해서는 병원이 지원 예산을 유용하지 않게 해야 한다"며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 재배치에 따른 교육, 훈련과 보상 등이 충분히 이뤄지도록 정부가 일부 항목이라도 '기준'을 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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