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약품 수급 안정화 등을 위해 처방약을 같은 성분의 다른 약으로 변경할 수 있는 대체조제 활성화를 추진한다. 국회에서도 대체조제 활성화와 함께 의약품 성분명 처방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의 약사법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다. 대체조제가 활성화되면 국민들의 의약품 접근도가 높아질 수 있고 상대적으로 비싼 오리지널약 대신 같은 성분이나 저렴한 복제약(제네릭) 처방이 가능해 건강보험 재정 절감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가 있다. 다만 의사단체가 환자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반발해 법 개정안 추진이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23일 정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최근 대체조제 사후통보 방식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업무포털 시스템을 추가하는 내용의 '약사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현재 약사법에 따르면 처방전 의약품과 성분, 함량, 제형이 같은 다른 의약품은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사전 동의 하에 대체조제를 허용하고 있다. 생물학적동등성이 인정된 품목 등 일부의약품은 사후통보 하에 대체조제가 허용된다. 이에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때 해열제 등 의약품 수급이 원활하지 않자 대체조제가 늘기도 했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19년 1537건이었던 대체조제 건수는 2022년 4104건으로 증가했다. 다만 전체 조제건수 대비 대체조제건수는 0.84%에 불과했다.
현행 대체조제 사후 통보방식은 전화, 팩스 등으로만 규정하고 있어 사실상 대체조제에 제약이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처방전에 팩스번호가 기재돼 있지 않거나 의사가 전화를 받지 않을 경우 약사는 처방된 약이 없어도 같은 성분의 다른 약으로 대체조제를 하기 어렵다. 때문에 환자가 약을 찾아 약국을 돌아다녀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복지부는 시행규칙 개정안에서 의료인들이 상시적으로 사용하는 심평원의 업무포털 시스템을 사용해 실시간 소통을 지원하고 대체조제가 원활해질 수 있도록 했다. 복지부는 "최근 의약품 수급 불안 등으로 국민들의 의약품 이용 불편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의사 또는 치과의사와 약사 간 원활한 소통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개정 취지를 설명했다.
국회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담은 약사법 개정안이 추진되고 있다. 서영석·이수진·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각각 발의한 약사법 개정안은 대체조제 명칭을 같은 성분 약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도록 '동일성분조제'으로 변경하고, 대체조제 사후통보 대상에 심평원을 추가하고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부가 수급불안정 의약품을 포함한 국가필수의약품 등의 경우 상품명이 아닌 '성분명'으로 처방할 수 있도록 해 약품 품절 등에 원활히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약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약사단체는 이를 긍정적으로 본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대체조제가 활성화되면 △의약품 수급 불안정이 해소되고 △환자가 약을 찾아 헤매는 일이 줄어들며 △환자의 약물 선택권이 확대되고 △약제비가 절감될 수 있어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들이 상대적으로 비싼 오리지널 의약품을 처방하는 경우가 많은데 해당 약품이 품절됐을 경우 같은 성분이나 저렴한 복제약으로 대체 처방이 가능해 환자의 경제적 부담이 절감되고 건강보험 재정 절감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논리다.
하지만 의사단체의 반발이 걸림돌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입장문을 내고 "성분명 처방과 대체조제 활성화는 부실한 약제 생동성 시험을 거쳐 나온 복제약을 약사가 무분별하게 처방 가능하도록 빗장을 여는 것으로 환자와 국민들에게 심각한 위협을 끼칠 악법"이라며 "해당 법안의 즉각적인 철회와 논의 중단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의협은 "동일 성분을 가진 의약품이라 할지라도 제품에 따라 임상 효과나 부작용이 다르며 환자에 따라서도 복약순응도에 차이가 발생한다"고도 주장했다.
다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복제약의 성분과 효능이 오리지널 의약품과 동일하다고 본다. 약사회 관계자는 "의사들이 이미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 결과에 따른 복제약을 처방하고 있어 약효가 다르다고 보기 어렵고 이미 수많은 종합병원들은 의약품 입찰 시 상품명이 아닌 성분명으로만 진행하고 있어 의협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일각에선 제약사의 리베이트가 줄어들 것을 우려해 의사단체가 대체조제 활성화와 성분명 처방에 반대하는 것 아니냐고 보기도 한다. 이와 관련 대한내과의사회는 지난 22일 성명서에서 "약계는 이전부터 의료계가 리베이트를 위해 (약품명 처방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여론을 호도했지만 리베이트는 이미 강력한 규제로 제어되고 있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