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어린데 눈 나빠서 걱정…'화생방 해독제'로 치료한다고?

박정렬 기자
2025.03.20 10:14

소아청소년 근시 고치는 아트로핀 점안제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화생방 훈련을 받으며 한 번쯤 '아트로핀 주사'(K마크1) 사용법을 배웠을 테다. 독가스에 노출됐을 때 엉덩이나 허벅지 근육에 찔러넣는 신경작용제 해독제로 부교감신경을 차단해 '제독 효과'를 내는 주사다. 폭주하는 부교감신경을 다스려 일시적이나마 증상을 완화하고 각성 상태를 유지해준다.

의료계에서는 이런 아트로핀이 안과 분야에서 활발히 사용된다. 특히, 2000년 이후 아트로핀이 원천적으로 '근시 진행'을 억제한다는 점이 입증되면서 소아·청소년에서 사용이 증가하는 상황이다. 근시는 먼 거리가 흐릿하게 보이는 것으로 안구 길이가 길어지거나(축성 근시) 각막과 수정체의 굴절력이 과도하게 증가해(굴절 근시) 초점이 망막 앞쪽에 맺히는 상태다. 코로나19(COVID-19) 유행 기간 야외 활동량이 줄고 스마트폰, PC 사용 등이 증가하면서 소아·청소년을 중심으로 '근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란 신조어가 만들어질 만큼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아트로핀 점안액./사진=일산백병원

아트로핀 점안액은 기존에도 산동제(동공을 확장하는 약물)나 조절 마비제로 안과에서 사용됐었다. 여기에 근시 진행을 억제하는 효과가 밝혀지면서 최근에는 근시 치료제로도 주목받는다. 강민채 인제대 일산백병원 안과 교수는 "다양한 연구를 통해 아트로핀 점안액이 소아·청소년 근시 진행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음이 입증됐다"며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도 높은 치료 효과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근시 팬데믹' 시대, 아트로핀 주목

근시일 때는 일반 안경과 렌즈로 시력을 '교정'하는 데서 나아가서 어릴 때는 진행을 억제하는 방법도 있다. 저농도 아트로핀 점안액, 드림렌즈(각막 굴절교정 렌즈), 근시 진행 억제 안경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아트로핀 점안액은 효과가 좋고, 비용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어 최근 사용이 증가하는 추세다. 보통 취침 전 하루 한 번씩, 시간이나 장소와 무관하게 스스로 사용할 수 있어 편리하기도 하다.

아트로핀의 근시 억제 기전은 완전히 밝혀지진 않았다. 다만 주요 가설로 제기되는 것은 첫째, 안구 성장 억제다. 아트로핀이 안구 후방 부(망막 및 공막)에서 성장 관련 신호 전달을 차단해 안구 길이 증가를 막는다는 것이다. 둘째, 눈 뒤쪽에 존재하는 무스카린 수용체(M1~M5)를 차단해 근시 진행과 관련된 신호 경로를 억제한다는 가설이다. 마지막은 조절 마비 효과다. 고농도(1%)의 아트로핀은 눈의 조절작용을 일시적으로 마비시켜 근거리 작업으로 인한 눈의 피로를 줄이고, 결과적으로 근시 진행을 억제할 가능성이 있다.

강민채 인제대 일산백병원 안과 교수가 근시의 원인과 치료법을 설명하고 있다./사진=일산백병원

아트로핀의 소아 근시 억제 효과는 다양한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2006년 싱가포르에서 진행된 대규모 연구(ATOM 1)에 따르면, 1% 농도의 아트로핀을 점안한 그룹에서 근시 진행이 77% 억제되는 효과가 확인됐다. 다만, 고농도 아트로핀은 산둥(동공 확대)과 근거리 초점 장애 등 부작용이 있어 적합한 농도를 결정하기 위한 후속 연구(ATOM 2)가 이어 진행됐다. 여기서는 저농도 아트로핀(0.5%, 0.1%, 0.01%)의 효과를 조사했는데, 이를 통해 아트로핀 0.01%는 근시 진행 억제 효과를 유지하면서도 부작용이 거의 없고 더 높은 농도(0.1%, 0.5%)와 비교했을 때도 시각적 부작용이 적고 안전성이 높다는 점이 증명됐다.

나아가 2019년에는 홍콩에서 근시 치료를 위한 아트로핀 저농도인 0.01%, 0.025%, 0.05% 효과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다. 이에 따르면 0.05% 아트로핀이 0.01%보다 근시 억제 효과가 더 크며, 안전성이 유지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강민채 교수는 "대규모 연구를 통해 임상적으로 0.01~0.05% 농도의 아트로핀이 적합하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이런 저농도 아트로핀 점안액이 현재 근시 진행 억제 목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된다"고 말했다.

수년간 사용…안과 의사 상담 필수

저농도 아트로핀 점안액이 근시 진행 억제에 효과적이긴 하나 주의할 점도 분명히 있다. 우선 성장기는 눈이 자라며 근시가 진행되는 만큼 이를 지속해서 억제하려면 아트로핀 점안액도 수년간 꾸준히 사용해야 한다. 갑자기 치료를 중단하면 오히려 근시가 급격히 진행하는 '반동 효과'(Rebound Effect)가 나타날 수 있어 점진적으로 줄여나가야 한다.

아트로핀 점안액./사진=일산백병원

저농도 아트로핀 점안액을 써도 근시 교정을 위해 낮 동안에는 안경을 써야 한다. 아이에 따라 눈이 따갑게 느껴지는 등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례도 있는데 이를 고려해 자기 전에 눈에 넣거나, 인공눈물과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동공이 커지며 생기는 눈부심을 다스리려면 실외 활동 시 자외선 차단을 위해 선글라스를 착용하거나 안경에 색을 넣는 방법 등이 추천된다.

강민채 교수는 "아트로핀 점안액은 소아·청소년 근시 진행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치료제로 자리 잡고 있다"며 "다만, 장기적인 사용이 필요하며 개인별로 반응이 다를 수 있으므로 안과 전문의의 상담과 정기적인 검진을 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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