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스피 지수가 사상 최초로 9000선을 돌파했다는 소식은 성실하게 일하는 많은 근로자들을 씁쓸하게 한다.
"남들이 주식이나 코인으로 '억 소리 나게' 벌 때, 나는 새벽부터 밤까지 기름때 묻혀가며 일했다. 그런데 돌아온 건 '벼락거지'라는 낙인과 지독한 자괴감뿐이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을 소리 없이 잠식하고 있는 '코스피 블루(KOSPI Blue)'의 민낯이다. 증시가 유례없는 대호황을 누리는 사이, 돈이 돈을 낳는 속도가 땀 흘려 버는 근로소득의 속도를 아득히 앞지르면서 성실함은 미덕이 아니라 '능력 부족'의 동의어가 되어버렸다. 자산 투자의 상승 속도를 근로소득이 따라잡지 못하며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우울감을 가리키는 신조어가 바로 '코스피 블루'다. "나만 빼고 모두 부자가 되고 있다"는 포모(FOMO) 증후군이 우울증으로 번지는 것이 특징이며, 2021년 코스피 3000 돌파 때도 비슷한 목소리가 있었지만 지수가 9000선을 찍은 지금은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현상으로 완전히 정착됐다.
그리고 이 감정은 머지않아 일터의 전압을 서서히 낮추는 '브라운아웃(Brownout)'이라는 새로운 증상으로 번져간다. 브라운아웃은 업무에 대한 열정과 목적의식을 잃고 기계적으로 일하는 '정신적 무기력 상태'를 뜻한다. 원래 전력 분야에서 전압이 낮아져 전등이 흐릿하게 깜빡이는 현상을 말하는 용어인데, 이를 직장인의 심리 상태에 비유한 것이다.
코스피 블루가 근로자들을 집단적 브라운아웃 상태로 몰아넣는 것이다. 에너지가 완전히 방전되어 아무것도 못 하는 번아웃(Burnout)과 달리, 브라운아웃 상태에 놓인 사람들은 겉으로는 회사를 잘 다니고 업무도 정상적으로 수행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극심한 무기력함과 냉소주의를 느끼며 일의 의미를 완전히 잃어버린 상태다. 전등이 완전히 꺼진 것이 아니라 전압이 낮아져 흐릿하게 깜빡이는 것처럼, 마지못해 '낮은 전압(Low) 상태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흘린 땀방울의 가치가 부정당하는 사회에서, 직장인들이 업무에 열정을 쏟을 리 만무하다. 이는 결국 일터에서 혁신을 고민하지 않고 최소한의 업무만 처리하는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의 확산으로 이어진다. 자본 시장은 9000선을 돌파하며 폭발하는데 실물 경제의 진짜 엔진인 근로자는 식어간다. 이 역설적 구조는, 장기적으로 기업의 펀더멘털 저하와 국가 생산성 추락이라는 부메랑이 될 뿐이다.
시장이 뜨거울수록 마음속에는 '나만 뒤처지는 것 아닐까' 하는 극심한 불안감이 독버섯처럼 피어난다. 문제는 이 불안이 건강한 투자 문화가 아닌, 파멸적인 투기성 '빚투'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최근 신용거래융자 잔고가 38조 5000억 원을 넘어서며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는 금융투자협회의 발표는 이 우울증이 얼마나 위험한 수위까지 올랐는지를 증명한다.
한국은행과 보건사회연구원의 지표를 보면 상황은 더욱 엄중하다. 자본소득 분배율은 나날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반면, 일터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근로빈곤층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자산 격차를 나타내는 지니계수와 소득 분배 지표는 역대 최악을 기록하며, '열심히 일해도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는 근로자들의 절망을 통계로 증명하고 있다. 국민 4명 중 1명이 주식 계좌를 가진 시대라지만, 자산 격차의 확대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은 역설적이게도 코스피 지수가 가장 높은 지금 가장 극대화된다.
우리는 과거의 기억을 너무 쉽게 망각한다. 멀리는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광풍부터 가까이는 2000년대 초반의 닷컴 버블까지, '대중의 광기'가 만든 꼭짓점 뒤에는 언제나 참혹한 대가가 따랐다. 지금의 코스피 9000선 역시 기업의 펀더멘털 개선보다 시장의 유동성과 과열된 심리가 만들어낸 '신기루'일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시장이 언제든 조정 국면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경고를 무시한 채, 빚을 내어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개미들의 모습은 안타깝다 못해 위태로워 보인다. 붕괴는 언제나 가장 뜨거울 때, 가장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찾아오기에, 눈앞의 숫자에 현혹되지 않고, 시장의 이면을 차분하게 응시하는 냉정한 이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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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가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의 미래는 사상누각(砂上樓閣)과 같다.
대한민국 경제를 지탱해 온 진짜 힘은 여의도 증권가의 모니터 안이 아니라, 새벽을 깨우는 환경미화원의 빗자루질, 공장의 프레스 기계 소리, 밤낮없이 일하는 소상공인들의 구슬땀, 연구실의 불 꺼지지 않는 조명 아래에 있다. 자본소득의 화려함에 눈이 멀어 근로의 가치를 천시할 때, 그 사회의 생산적 기반은 뿌리째 흔들리게 된다.
따라서 정부와 금융당국은 단순히 증시 부양책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시장의 과열을 제어하고 땀 흘려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특히 현재의 '밸류업 프로그램'이 단순히 주가를 띄우고 주주만 만족시키는 반쪽짜리 부양책에 그쳐서는 안 된다. 기업을 일구고 성장시키는 진짜 주역인 내부 구성원들에게 임금 인상, 성과급, 우리사주 등 성과의 과실이 합당하게 돌아가는 '노동가치 환원'으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노동의 가치를 함께 제고하는 것이야말로 기업의 내재가치를 다지는 진정한 의미의 밸류업이기 때문이다. 세제 개편을 통해 근로소득의 세 부담을 완화하고, 자산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실질적인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화려한 자본의 축제 뒤에서 '땀의 가치'가 끝내 파산한다면, 코스피 9000이라는 경이로운 숫자도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주가 지수의 추가 상승을 향한 조급함이 아니다. 흐릿하게 깜빡이며 간신히 버티고 있는 대부분의 근로자와 소상공인들의 마음에 다시금 '근로의 전압'을 채워 넣는 것, 그리하여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일상이 다시 환하게 불을 밝히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숫자 너머의 대한민국 경제를 지탱할 진짜 밸류업이다.